국민은 강한 군대 强軍을 요구한다
“군대는 군대다워야 한다.” 對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케케묵은 꼰대 같은 소리냐?”가 상충한다.
창군에서 6․25, 5․16과 10․26, 5․18을 겪은 군 생활을 오래 전 겪은 연세 지긋한 부모세대나 갓 전역한 예비역, 또 입대를 바로 눈앞에 둔 청년들에 이르기까지 군대는 사회 현상과 더불어 영원히 잊혀 지지 않을 마음의 고향이자 향수이기도 하지만 두려움과 발길이 쉬 떨어지지 않는 경외의 대상이기도 하다.
그러면서 또 얘기한다. “군대는 한번은 반드시 거쳐야 할 남자들만의(?) 세상으로 군대를 다녀와야 진정한 남자가 된다”는 훈계식 얘기가 이어지는가 하면 이와 반대로 “어차피 피하지 못하고 갖다 와야 한다면 후방의 가장 편한 보직을 받아 국방부시계만 기다리면 된다”는 의식도 젊은이들 사이에 잠재한다.
그런데 오래지 않은 언제부터인가 우리 군에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군만의 문제가 아닌 사회 전반의 문제이기도 하다. 자녀 출산이 OECD 최하위 국으로 떨어지면서 인구수가 급감하고 한집안 1〜2명의 자녀에 불과한데다 외아들인 경우도 허다하다보니 병역자원 수급에도 비상일 뿐 아니라 이로 인해 여타 관련 문제가 크게 파생될 수밖에 없다.
오죽하면 입대 장병 부모들의 등살에 ‘자식보기’ 개혁 방안의 하나로 병사 수신용 휴대전화를 설치하고, 부대별 인터넷 카페를 개설해야 했을까?
지난해 1월 복무 중인 병사들의 소통을 위해 군 생활관에 설치한 수신전용 휴대전화사용이 같은 해 10월말 기준, 2억4천37만분이었다고 한다. 통화 건수는 2천 600만 건에 달했다. 이는 병영 생활의 고립감 해소와 원활한 소통을 위한 명분아래 국방부가 추진한 사업으로 LG유플러스가 '1원' 입찰서를 내고 기기 4만5천여 대를 제공하면서 이뤄졌다. 병사 1명이 한달 평균 6.5회, 일주일 평균 1.5회 휴대전화를 이용한다는 의미다.
물론 긍정적인 측면도 클 것이다. 군대에 자식을 보내놓고 비가와도, 눈이 와도, 햇볕이 쨍쨍 내리쬐어도, 맛있는 것을 먹어도, 가까운 친인척이나 지인이 집을 방문해도, 기쁘거나 슬프거나 힘든 일이 생겨도, 훈련받고 있을 아들을 떠올리면 부모 입장에서 무시로 생각나고 목소리라도 듣고 싶은 게 한결같은 부모의 마음일 것이다.
그러기에 충남 논산 육군훈련소 입소 장정들이 바뀔 때마다 근처 민박집은 훈련병의 교육주기에 맞춰 6주단위로 새얼굴의 아주머니들로 바뀌는 웃지못할 일이 발생되고 있다지 않는가. 입소 훈련병들의 어머니로, 이들은 자식의 훈련일정까지 꿰어가며 야외로 훈련 나가거나 복귀할 때면 주변을 배회하며 아들의 얼굴 모습을 찾아 손을 흔들며 응원(?)해 주고 있다하니 가히 엄마의 맹위이자 맹모삼천지교에 버금이라고 해야 할까?
그러다 보니 “군대 참 좋아졌다. 우리 땐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인데”하는 긍정적 목소리나 “그렇게 해가지고 제대로 부대통제며 지휘가 이루어지겠느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상시 공존한다. 시대가 변화하면 변화의 속도에 맞춰 군대도 변해야 함은 의당 당연한 주장이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변해서는 안 되는 게 있다. 국가의 영속과 그 국가를 떠받치는 군대의 존재 가치다. 더불어 군의 임무와 지휘관과 병사가 수행해야할 직무의 범위다. 그리고 거기에 순응하고 수긍하며 격려와 칭찬, 응원으로 힘을 북돋워 주어야 하는 부모의 역할이다.
그런데 내무반에 설치된 수신용 휴대전화나 인터넷 카페 등을 통해 일부 극성 부모들이 각종 민원을 제기하고 있어 임무 수행이 불가능할 정도란 하소연이 현지 부대 간부들의 입에서 나온다면 심각해도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내 자식은’ ‘내 아들만은’ 하는 소아적이고 개인주의 사고는 부대 운영 근간을 흔들 수 있는 사안이 될 수 있는 중대한 문제가 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지휘관들이 강한부대, 싸워서 이기는 부대, 전천후 전투원 육성이라는 대 명제에 앞서 ‘어떻게 하면 내 재임기간 병사들을 안전하게 모시다(?) 부모 곁으로 돌려보낼까’에 집착해 안전위주로만 나갈 우려가 농후할 수 있다는 점이다. 안전이야 그 어떤 것에 우선해야 함은 당연하다.
또한 군에서 비전투손실은 부대 전체의 손실이자 사기저하와 직결될 수 있다. 모든 교육훈련이나 부대활동을 함에 있어 비전투손실 방지가 우선되어야 함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그렇게 해야 최선의 교육훈련과 작전시행으로 부대가 추구하는 최상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것이며, 유사시 적과 싸워 반드시 승리하는 부대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국방당국과 군, 지휘관에게 국가와 국민이 부여한 책무이다. 그런데 얼마 전 수도권 한 육군 공병부대 지휘관이 전방지역 지뢰제거작전 투입에 앞서 장병 부모의 동의서를 요구한 것으로 알려져 ‘군 기강 해이’란 지적과 함께 ‘이런 군대가 무슨 필요 있나?’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재론되는 얘기지만 “자식 군대 보내는데 동의해 주실 겁니까” 라고 묻고, 북한 침략 시 “전장 터에 보내려는데 보내도 되겠습니까?”하고 동의를 받아야 한다면, 그런 군대, 그런 지휘관은 일찌감치 필요 없는 것 아닌가?
더 이상 ‘한심한 군대’ ‘눈치 보기에 급급한 군인’, 물 군인 물 군대란 말이 나오지 않았으면 한다.
4일 육군참모장이 육군의 장성급 전 지휘관을 대상으로 자신감을 갖고 과감하게 지휘할 것을 지시했다. 체질개선에도 착수했다고 한다. 장준규 참모총장도 지휘관들과의 화상회의를 열어 “부모에게 동의를 구하며 작전에 투입하는 일은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되며, 병사 부모들이 부대 운영과 훈련에 간섭해서도 안 된다”고 강조했다. 더 이상 군이 이끌림을 당해선 안 된다는 강한 의식이 투영된 것이라 믿고 싶다. 국민은 더 이상 이 문제로 왈가왈부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오직 믿음직스럽고 듬직한 군인을 보고 싶어한다.
군대는 강해야 한다. 강한 군대만이 살아남고 승리를 보장한다. 강한 군대만이 나 자신의 생존성 보장과 더불어 내 가족과 우리 이웃을 지켜낼 수 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강군(强軍)은 말로서만 이뤄지는 게 아니다. 개개인 병사 한사람 한사람의 강한 훈련과 조직의 효율적 운영을 통해서만 달성되어질 수 있는 법이다. 이번 ‘부모동의서’ 사건을 계기로 육군의 체질개선 다짐을 보면서 국민은 군(軍)이 어떻게 변화 발전해 가는지 분명하게 지켜볼 것이다.
삼국이 통일된 후에도 웅진도독부와 안동도호부를 세우고 이 땅을 지배하려던 당나라 군대에 맞서 흰 눈이 펄펄 날리는 한겨울에도 병사들과 함께 흰수염 날리며 노구(老軀)를 마다하지 않고 손수 수레를 밀며 상하동체의 지휘력을 발휘했던 김유신 장군처럼 삼위일체 되는 강한 군대, 강한 군인을 기대한다.(konas)
이현오 / 코나스 편집장. 수필가(holeekv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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