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지구전투 영웅, 학도병 48위 추념식
6‧25전쟁 중이던 1950년 8월 11일, 3사단에 배속되어 포항지구전투에 참전했던 71명의 학도병 중 꽃다운 청춘을 조국의 제단에 바친 김춘식 학도병 등 48명을 추모하는 추념식이 21일 서울 흑석동 효사정 공원 내 학도의용병 현충비 광장에서 거행됐다.
대한민국학도의용군회(회장 경서호)가 주관한 이날 행사는 폭염에도 불구하고 전우들의 위국헌신 정신을 추모하기 위해 100여명의 학도병 출신 참전용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헌화ㆍ분향 등의 순으로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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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서호 대한민국학도의용군회 회장은 추념사에서 “70여 년 전 총탄이 난무하는 전선에서 싸우다가 유명을 달리한 전우들을 기리기 위해 이 자리를 마련했다”며 “채 피워보지도 못하고 조국의 수호신이 된 동지들이 있었기에 이 나라의 오늘이 존재할 수 있었다는 것을 자손만대에 알리고자 한다”고 밝혔다.
이어 “그대들이 목숨 바쳐 지켜낸 대한민국이 부국강대한 나라로 우뚝 섰다”며 “동지들의 올곧은 애국정신을 후세에 반드시 물려주고자 남은 힘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학도의용병 현충비는 김춘식 등 48명의 학도병을 기리기 위해 1955년 6월25일 건립했으며, 당시 전투에 참가했던 학도의용병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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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지구 전투에 참전한 71명의 학도병>
1950년 8월 10일, 71명의 학도병들은 북한군에 의한 점령 위기에 처해있는 포항의 제 3사단에 배속된다. 당시 제3사단 후방사령부 지휘책임자인 김재규 소령은 병력을 이끌고 포항을 지키기 위하여 시내 쪽으로 들어가고 포항여중을 지키고 있는 학도병들에게 사령부의 방어를 명령한다.
새벽 4시경, 포항여중 위에 정체 모를 녹색 신호탄이 터지고 학교 정문 100m 전방에 소속 불명의 병력이 나타난다. 병력이 북한군임을 간파한 학도병들은 일제 사격으로 첨병대를 제압한다.
이후 해가 밝아오는 새벽 6시, 북한군은 포항여중으로 일제히 공격을 재개했다. 그러나 학도병들의 불굴의 의지에 실패하고 만다.
이후 학도병들은 후방의 지원이 끊긴 채 대규모 북한군의 파상 공세를 약 네 차례에 걸쳐 맨몸으로 막아 내었고 이 과정에서 48명의 학도병들이 전사했다
이 포항지구 전투에 참전한 학도병들의 이야기는 ‘포화 속으로’ 제목으로 영화화되었다.(konas)
코나스 황은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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