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자원 병역이행 병사 체험 수기④] 검은 머리 외국인이자 대한의 건아
본 내용은 병무청이 주관한 「2017 자원 병역이행 병사 군생활 수기」 ‘영주권’ 부문 장려글이며, 자원입대한 병사들의 계급은 체험수기 응모 당시의 계급임(편집자 주)
"Sorry, bro(미안, 친구야)". 논산 육군훈련소에서 훈련병 신분으로 신병 교육을 받고 있던 나를 혼내러 온 훈육 분대장의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읽고서 조금이라도 덜 혼나보려고 건네었었던 말이다. 생활관은 일순간에 조용해졌다. 무언가 잘못됐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그랬던 내가 지금은 백골부대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한 육군 3사단의 22연대 1대대에 저격반에 배치되었고, 군 생활에 완벽하게 적응하여 1년 2개월째 복무하면서 김도연 상병으로 불리고 있다.
나의 또 다른 이름은 대니얼 킴(Daniel Kim)이다. 사실 이 이름이 나에게 조금 더 익숙한 이름이다. 나는 대한민국에서 지낸 기간이 2년 남짓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사업을 하시는 아버지를 따라 어린 시절부터 인도네시아, 중국, 홍콩 등지에서 성장해왔기 때문에 한국어 보다 영어가 더 익숙한, 요즘 흔한 말로 소위 ‘검은 머리 외국인’이 바로 나를 부르는 말이다.
그러나 아무리 검은 머리 외국인이라 하더라도 해외에 거주하고 있는 한국인이라면 조국의 존재를 잊고 사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당장 내 앞에 주어진 삶을 살고 있으면서도 마음 한 구석에는 늘 의식하고 생각하는 것이 바로 조국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렇게 조국을 수호하는 군인이 어렸을 때부터 정말 멋있다고 생각했고 나도 어른이 되면 대한민국을 지키는 군인이 되고 싶다 생각했다. 그래서 중․고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육군사관학교에 가서 누구보다 멋진 군인이 되고 싶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나는 대한민국 육군 장교라는 꿈을 접어야 했다.
일단 신체적으로 주상골 불유합이라는 손목의 뼈가 잘 안 붙는 질병이 있어서, 애초에 현역으로 군 입대가 가능할지 잘 모르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육군사관학교에 지원을 하게 되면 주상골 불유합 수술을 받고 재활하기까지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릴 뿐만 아니라 재활을 한다 해도 성공적으로 재활이 되어 내가 남들보다 앞장서서 행동하는, 모범이 되는 장교가 될 수 있을까? 라는 확신이 없었다.
또 다른 이유는 한국에선 그렇게 널리 알려지진 않았지만, QS(세계 대학 순위) 랭킹 44위인 홍콩 중문대학교에 붙은 것을 부모님이 너무 기뻐하셨다는 것이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장교의 꿈은 현실적으로 접고 군인의 꿈을 이루기 위해 현역입대를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그 이후 손목 수술을 받고, 2년 가까이 재활치료를 받아 가까스로 3급 현역으로 입대할 수 있었다.
내가 군대를 간다하니 주변에선 굳이 군대를 가고 싶으면 카투사, 통역병, 군악병 등 소위 말하는 남들보다 편하게 군 생활을 할 수 있는 길이 있는데 왜 징집으로 가느냐고 말들이 많았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는 누구보다 멋진 군인은 단지 내 한 몸이 편한 길만 찾아 다니는 군인이 아니다. 멋진 군인은 조국을 지키는데 내 한 몸 희생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그러한 생각을 누구보다 앞장서서 직접 실천 하는 군인이다. 나는 이러한 군인이 되기 위해서 현역병으로 자원입대를 하게 되었다.
훈련소 수료식 날 자대 배치를 문자로 통보 받았다. 부모님께선 내가 원하던 대로 ‘정말 군대다운 곳’으로 가게 되었다고 걱정 반 웃음 반으로 이야기하셨다. 또한, 아버지께서는 늘 군대를 가게 되면 정말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많은 것을 배우고 느끼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렇게 나는 군 생활에 두려움과 설렘을 안고 자대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처음 자대로 왔을 땐 훈련소와 비슷하게 내가 그동안 겪어보지 못했던 문화들을 접하게 되면서 많은 실수도 하고 적응도 잘 하지 못했다. 상급자랑 실수로라도 부딪히면 습관적으로 바로 'sorry'라는 단어가 나오기도 하였고, 다른 전우들과는 달리 행동이 너무나 자유로워서 병사들 및 간부님들이 당황스러워 할 때도 있었다.
그러나 선임들과 간부님들 그리고 주위의 많은 전우들이 나의 사정을 알고 아직 이런 문화에 어색해 하는 나를 굉장히 잘 챙겨주고 많은 것을 알려주며 가끔씩 한국 정서에는 맞지 않는 행동을 하면 친절하게 가르쳐주었다.
나는 군 생활을 시작하며 다른 전우들과 쉽게 친해지지 못할까 봐 걱정을 하였다. 왜냐하면 나만 특별하게 외국에서 왔고 다른 전우들과는 달리 대한민국에서 살지도 않았기 때문에 다 똑같아 보이는 전우들 사이에서 그들과 친해질 자신이 없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곧 터무니없는 생각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모든 병사들이 다 같은 대한민국 국민이어도 전국 곳곳에서 왔기 때문에 모두 다양하고 특색도 달랐다.
그렇기 때문에 나와 다른 삶을 살아온 병사들을 많이 만나게 되었고, 그들과 이야기하면서 겉보기에는 다 같아 보이는 전우들이지만 실제로는 다 각자만의 개성을 가지고 있으며 똑같은 사람이 단 한명도 없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또 전우들과 나는 모두 나라를 지키는 군인이라는 점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친해질 수 있었다.
나는 나뿐만 아니라 다른 전우들 모두 대학생일 것이라 생각했다. 외국이든 한국이든 요즘은 다 대학교를 가야하고 대학교를 안다니는 전우들은 학창시절 방황을 많이 했거나 학업을 충실히 수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대학을 가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내 생각과는 달리 대학교를 다니지 않는 전우들이 많았다.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들은 학창시절 방황한 것이 아니라 각자 자기만의 사정 때문에, 또는 일찍이 자기 자신의 꿈을 찾아 대학에 가는 대신 자신이 하고 싶은 일들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들을 보며 아버지께서 하신 말씀이 생각났다. 군대에는 내가 살아왔던 삶과 다른 삶을 산 사람들이 많을 것이고 또 고정관념을 깰 일들이 많을 것이라 하셨는데 바로 이 대학문제가 나의 고정관념에 대해 다시 돌아보게 된 계기가 되었다. 그래서 내가 여태 대학으로 사람들을 판단했던 것에 대해 깊은 반성을 하고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자신을 되돌아보면서 나는 나의 부족한 점들을 보완해 가고 싶었다. 많은 사람들이 군대에서의 시간은 다 버리는 거라고 말을 하지만 나는 군대에서의 시간을 나의 부족한 점들을 보완하고 미래를 위한 발판을 만들기로 다짐했다.
우리 부대에선 3030운동이라는 운동이 있다. 30분 동안 30쪽의 책을 읽는 운동으로 이 운동 덕분에 한국책에 흥미를 가지게 되었고 굉장히 많은 양의 책을 읽게 되었다. 그렇게 한국어 실력도 단기간에 많이 늘게 되었다. 또 공부연등이라는 시간이 있어 추가적으로 독서를 원하거나 공부를 하고 싶은 인원들에게 22시부터 24시까지 공부할 여건을 보장해준다.
군대에 와서 영어 대신 한국어를 사용하다보니 스스로 영어에 대한 자신감이 없어져 걱정이 되었는데 이런 연등시간을 이용하여 영어 복습을 하는 등 자기계발에 노력을 기울이니 국방홍보원에서 주최하는 IPSOS Korea 라는 마케팅 리서치 업계의 회사에서 교육을 받고 일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만약 군대에 오지 않았더라면 IPSOS Korea 국방TV 출연의 엄청난 경쟁률에 겁부터 먹고 부정적으로 생각했겠지만 자기계발을 하면서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생기고 군생활을 하며 난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자신감을 가지고 지원을 하게 되었고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 이 경험을 통해 나는 전역을 하고 나서 이 회사에 인턴으로 일하는 것이 또 다른 새로운 목표가 되었고 지금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해 더욱 열심히 자기 개발에 몰두하고 있다.
자기계발시간 뿐 아니라 훈련을 통해서도 자기 개발을 할 수 있었다. 유격때는 처음으로 물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고 전우애를 느낄 수 있었다. 나의 잘못된 행동을 자주 꾸짖으시는 선임이 유격 훈련도중에 간이 PX를 가서 40분 이상을 줄을 서 음료수랑 아이스크림을 사다주었을 때, 그 당시엔 PX줄이 너무 길고 현금으로만 결재가 되어 살 수가 없었는데 선임이 현금을 들고 와 우리가 목마르고 더위먹을까봐 항상 챙겨주었다. 이때 이것이 전우애라는 걸 느낄 수 있게 되었다.
혹한기 때에는 세상이 이렇게 추워질 수가 있나 이러다가 발가락 다 잘려 나가는 게 아닌가 걱정을 많이 했다. 숙영을 하고나서 아침에 일어나면 전투화가 얼어있고 수통도 얼어있고 텐트를 칠 때 지주핀을 박아놓은 땅도 얼어있고 세상 모든 게 다 얼 수 있다는 걸 처음으로 느꼈다. 새삼 막사가 그렇게까지 그리워질 거라곤 상상도 못했다. 이로서, 보온의 소중함과 막사의 소중함을 깨달았다. 익숙함에 소중함을 잊지 말자 라고 내 자신에게 말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백골데이 및 전술훈련은 완전군장과 함께 저격총, 저격장비들을 챙겨 끝없는 산타기를 하는데 정말 이 순간 때만큼은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 가장 크다고 느꼈다. 긴 거리를 행군을 한 후에 산을 올라갈 때, ‘정말 여기서 포기해야하나, 너무 힘들다, 그만 가고 싶다, 조금만이라도 쉬어가면 안되나’등 별 생각이 다 들지만, 내가 뒤처지면 뒤에 있는 다른 소대들도 속도에 맞춰서 느려지고, 저격의 거점 점령을 하는데 시간이 지체되기 때문에 이 악물고 올라 가는게 정말 많이 힘들었다. 이 산을 올라가면서 'grit' 를 넘어설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이런 훈련들을 통해 나는 생각의 차이가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누군가는 이런 훈련을 하면서 그냥 시간이 흐르기만을 기다리지만 훈련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사람들은 이런 훈련을 통해 또 다른 형태의 자기계발 다시 말하자면 어떤 일에도 포기하지 않는 마음을 기를 수 있다.
나는 자원입대를 한 결정을 절대 후회하지 않는다. 이제 곧 입대할 나이가 될 내 후배들에게 자원입대를 하라고 적극적으로 추천을 할거다. 이제 군 생활이 얼마 안남은 이 시점에서, 나는 앞으로 나에게 닥칠 어려움들을 두려워 하지 않고, 군 생활동안 배운 의지를 토대로 남은 군생활에 최선을 다할 것이다.
논산훈련소에서 처음 'Sorry bro'를 말하던 내가, 3사단 저격 집체교육 용사 1등을 하기까지 크고 작은 일들이 있었지만, 최종적으로 1등을 해낸 내 자신에게 성취감이라는 큰 선물을 줄 수 있게 되어 너무 고맙다. 이게 다 나를 잘 챙겨주는 병사들과 저격 간부님들 덕이고, 모든 일에 솔선수범하시고 grit 이라는 단어를 알려주신 멋진 대대장님 아래 군 생활을 하게 되서 그런 것이라고 생각한다. 군대는 절대로 시간을 낭비하는 곳이 아닌, 좀 더 넓은 생각을 가지고, 전우애 와 소속감을 느끼고, 그 속에서 나란 사람이 누구인지 확신 할 수 있는 곳이다.
‘내가 정말 내 자신을 한국인이라고 칭해도 되는 걸까?’ 라는 정체성의 혼란을 내 나라를 자랑스러운 백골부대에서 지키면서 내 자신에게 이젠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다. “나는 검은 머리 외국인이자 대한의 건아이다.” 백골!
(3사단 22연대 1대대 상병 김도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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