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자원 병역이행 병사 체험 수기⑤] 나에게 군대란
본 내용은 병무청이 주관한 「2017 자원 병역이행 병사 군생활 수기」 ‘영주권’ 부문 장려글이며, 자원입대한 병사들의 계급은 체험수기 응모 당시의 계급임(편집자 주)
저는 한국인이지만 미국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태어나자마자 이중국적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미국에서 태어나서 미국국적을 가지게 되었고, 부모님이 한국인이었기 때문에 한국 국적도 가지게 되었습니다. 유학생이던 부모님을 대신해 할아버지가 한국에서 출생신고를 해 주셨습니다.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저는 아버지의 일로 인해 미국에서 한국이 아닌 일본으로 가게 되었고, 거기서 15년을 살았습니다. 이런 저를 한국인 지인들은 부러워합니다. 한국 사람을 만나면 군대 안 갈 수 있지 않느냐, 한국국적 포기하고 안 갈 거지? 등과 같은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제가 ‘아닙니다, 갈 생각입니다’ 라고 하면 감탄하며 칭찬해 주기도하고, 그래도 가는 건 좀 손해를 보는 것 같다고도 말하였습니다. 저는 이런 반응이 싫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부모님께서는 저를 한국인으로 키웠습니다. 올림픽, 월드컵 때마다 대한민국을 응원했습니다. 군대도 당연히 가는 걸로 알고 있었습니다. 대학 또한 한국에서 공부하고 싶다는 소망을 이루기 위해 한국어 공부를 열심히 하였습니다. 군대에 가기 위한 목적이기도 했습니다. 일본 같은 경우에는 군 휴학이 없기 때문에 휴학비를 지불해야 합니다.
이러한 것도 고려해 저는 한국 대학에 입학하였습니다. 어릴 때부터 한국인으로 자랐던 저는 외국 국적을 가진 한국인이 군대를 가지 않는다는 것이 당연시 되는게 싫었습니다. 제가 군대를 갈 거라고 말하면, 믿지 못하겠다는 듯한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물론 그들이 나쁜 의도로 한 것은 아니지만 저에게는 그것이 불편하게 느껴졌습니다. 외국국적을 가진 한국인도 군대를 간다는 것을 그들에게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2016년 3월 14일 저는 군에 입대하였습니다.
공군 기본군사훈련단(줄여서 기훈단이라고 하겠습니다.)에 들어간 날이 아직도 기억납니다. 드넓은 연병장에서 부모님께 인사를 드리고 기훈단에 들어간 날을. 그 날부터 제 군 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군 생활은 생각보다 힘들지 않았습니다. 그건 아마도 항상 제 곁을 지켜주던 동기들이 있어서 그랬던것 같습니다. 사실 입대하기 전에는 외국에서 왔다는 이유로 차별받지 않을까하는 불안감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저를 차별하지 않고 마치 오랫동안 만난 사이처럼 친하게 대해주었습니다. 조교들한테 혼나고 벌을 받아도 그것이 딱히 힘들다고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조교들 또한 시간이 지날수록 친근하게 대해주고 마지막에는 조교들과 함께 야자시간을 가지면서 지난 6주간 있었던 일들로 밤이 깊어질 때까지 담소를 나누었습니다. 그렇게 기훈단을 마치고 저는 서산에 있는 20전투 비행단에 헌병으로 배치 받게 되었습니다.
헌병을 원해서 지원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기훈단에서는 특기와 지역을 받기위한 시험을 치룹니다. 그 시험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받는 특기도 달라집니다. 저는 시험에서 좋은 점수를 받지는 못했습니다. 서산은 2지망으로 가서 불만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헌병은 아니었습니다.
군대에 갔다 온 형들의 말을 들어보면 헌병은 그다지 가고 싶은 특기가 아니었습니다. 군기를 엄청 잡고 악․폐습 또한 존재하는 곳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몸으로 하는 일이 대부분이기에 육체적으로 많이 피곤하다고 했습니다. 그다지 반가운 소식은 아니었습니다.
만약 일도 힘든데 선임들까지 험악하면 정말로 힘들 것입니다. 심지어 간부들마저 소통이 되지 않고 새로운 동기들과도 친해지지 못하면... 그런 생각을 하니 머리가 멍해졌습니다. 자기계발을 할 수 있는 공군에서 근무스트레스, 힘든 인간관계, 간부들의 무관심으로 인해 아무것도 못하게 되면 어쩌지 하는 생각도 하였습니다. 제가 그렇게 걱정한 이유는 지금까지 보도매체가 보여준 군대의 단점들 때문이었습니다.
군내 악․폐습, 성희롱, 폭력과 같은 것들이 이에 해당되는 것들입니다. 군대에 갔다 온 형들은 괜찮다며 저라면 잘 적응해서 지금까지 잘해왔던 것처럼 잘 할 수 있을 거라며 휴가 나오면 술을 사주겠다며 응원해 주었습니다. 대학 친구들도 휴가 나오면 꼭 연락하라며 군 생활 아무것도 아니라면서 위로해 주었습니다.
정작 군대를 안 간 남자 친구들과 여자 친구들이 그렇게 말하니까 지금 생각해도 웃음이 나옵니다. 그래도 헌병이 되어 걱정하던 저에게 많은 위로가 되었습니다. 2016년 5월 10일, 저는 서산 제 20전투비행단 헌병대대 경비병으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헌병대대에 들어가서 처음으로 놀랐던 것은 사람들의 친절함이었습니다. 모르는 일이 있으면 항상 도와주고 실수해도 뭐라 하지 않고 다시 처음부터 친절하게 알려주는 선임들이 있었습니다. 일본에서 왔다는 얘기를 듣고 그들은 힘든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오라며 힘이 되어주겠다며 부드러운 말로 저를 환영해주었습니다.
또한 외국에서 온 선임들도 있어서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동기들 또한 저와 공감대가 많아서 금세 친해졌습니다. 서로 위로하면서 같은 방에서 농담도 얘기하면서 저는 즐거웠습니다. 생각해보면 기훈단 때부터 지금까지 저는 항상 동기들이 많이 챙겨주고 도와주었던 것 같습니다.
제가 일본에서 왔다고 하자 그들은 놀라지 않고 웃으면서 힘들더라도 서로 의지하며 같이 고생하자고 말해 주었습니다. 저에게는 그게 가장 위로가 되었습니다. 동기들에게 고마웠습니다. 만약에 동기들 또한 놀라면서 왜 왔느냐와 같은 질문을 무자비하게 저에게 투척했더라면 저는 기쁘기는 커녕 그들을 부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았을 것입니다.
간부님들도 저에게 힘든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도와주겠다며 공군 헌병에 온 걸 환영한다며 제가 온 것을 기뻐해 주셨습니다. 이러한 편안한 생활 속에서 저는 자기계발에 힘 쓸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간부님들과 선임들도 자기계발을 하는 저를 응원해주고 동기들도 같이 하면서 재미있게 의미 있게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공군은 그것 말고도 저에게 자아성찰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기회를 주었습니다. 상병을 달고 나서의 일입니다.
상병을 달면 상병 진급캠프(줄여서 상캠)를 가게 됩니다. 상캠에서는 앞으로 군생활을 더욱 좋게 보낼 수 있도록 하는 교육을 시켜줍니다. 저는 그 상캠을 가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안보 교육, 성폭력에 관한 교육과 같은 신병 때부터 계속 들었던 교육들을 들었습니다. 많이 들었던 교육이라서 그런지 살짝 지루하게 느껴졌습니다. 그 전날에 근무를 뛰어서 인지 초반에는 졸았습니다.
단장님과의 대화도 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그의 카리스마 때문인지 내용이 귀에 잘 들어왔습니다. 단장님이 열심히 우리들에게 강의를 하시는 중에 그는 자기계발은 꼭 잊지 말라고 하시면서 자기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정확히 짚어가는 것 또한 중요하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후자의 말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저는 미술을 공부하고 있었지만 나중에 그 미술로 무엇을 하고 싶은지 정확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또 이 길이 과연 나에게 맞는지에 대한 고민도 하고 있었던 시기였습니다. 오후 수업은 창의력에 관한 강의였습니다. 이 수업을 맡은 사람은 여성 민간인이었습니다. 그분은 저희에게 종이를 나누어주면서 장점 10개와 단점 10개를 쓰라고 했습니다. 뭔가 살짝 귀찮았지만 그래도 받은 건데 쓰지 않으면 예의에 어긋난다고 생각하여 썼습니다. 장점-그림을 좀 그린다, 3개 국어를 할 수 있다, 착하다 등등. 단점- 집중을 못한다, 피곤하면 게을러진다, 살이 찌고 있다... 등등.
그 다음에는 자기가 하고 싶은 것, 미래 자기가 되고 싶은 사람, 꿈에 관해서 써보라고 강의자가 말했습니다. 하고 싶은 것- 전역, 그림 연습, 여행, 원나잇 푸드트립, 운동하기, Adobe 프로그램 연습... 등등. 꿈 -부자, 영화감독, 애니메이션 감독, 화가... 등등. 그래도 그림은 하고 싶은가 보다, 쓰면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다 썼다 싶었을 때 강의자는 이제 자기가 썼던 품목들 중 두 세 개만 빼고 다 지워보라고 했습니다. 진짜로 하고 싶은 것들 빼고 다 지우라고 그래서 지워보았습니다.
하고 싶은 것-전역, 그림 연습, 여행, 원나잇 푸드트립, 운동하기, Adobe 프로그램 연습, 영화 감상, 독서하기, 오랫동안 잠자기, 전역은 하고 싶나 봅니다.
꿈-부자, 영화감독, 애니메이션 감독, 화가, 여유를 즐기는 사람(백수X), 땅 부자, 광고 디자이너.
문득 다 지우고 생각해 보았는데 전 진짜 그림을 그리고 싶은가 봅니다. 그 때 알았습니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처럼 되고 싶었습니다. 숨 막힐 정도의 깊은 무언가를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다, 감동적인 스토리를 연출해 나가면서 나만의 이야기를 펼치고 싶다, 이런 생각을 하였습니다. 강사는 말했습니다. “어떠세요?” 많은 걸 느꼈습니다. 뭔가 잊어버린 오랫동안 감춰두고 있던 꿈을 다시 발굴한 느낌이었습니다. 그리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어졌습니다.
이 일 이후로 저는 그림 연습을 나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시간이 생길 때마다 그리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군대가 시간만 버리는 곳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군대는 휴식기입니다. 그 휴식 기간 동안 자신이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하느냐에 따라 군대의 가치라는 것은 변한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어쩌면 지금 제 군 생활을 같이 하고 있는 동기들, 간부님들, 선후임들이 이러한 긍정적인 사고를 할 수 있게 도와준 것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밖에서 항상 응원해주는 가족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고 이 소중함 또한 군대에 있었기 때문에 다시금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저희 부모님은 두 분 다 일본에 계셔서 저는 휴가를 나갈 때마다 할아버지 댁에 갑니다. 처음 휴가 나가는 날, 부모님이 잠깐 동안 할아버지 댁에 머무는 시기여서 대가족이 한 자리에 모여 저녁식사를 같이 하였습니다. 제 가족과 함께 안 한지 6주가 되갈 무렵이어서인지 말 한마디가 낯설면서도 따뜻하게 느껴져서 놀랐습니다.
가족과의 오랜만의 대화가 이렇게 좋은 것인지 그 날 알았습니다. 예전에는 집에 오면 항상 부모님이 계셔서 어떤 날은 그들과의 대화가 귀찮을 때가 있었습니다. 친구들과 있고 싶을 때가 있었습니다. 그런 생각을 했었다는 것이 너무나도 부끄러웠습니다.
그리고 가장 울컥 했던 것이 할아버지가 서랍장에서 조심스럽게 꺼내서 주신 돈 봉투였습니다. 십만 원, 할아버지에게는 큰 돈이었습니다. 돈을 받아서 울컥한 것이 아닙니다. 그저 그 돈 봉투에 얼마나 많은 할아버지의 감정들이 들어 있었는지 그때서야 안 것 같아서 너무 죄송스럽고 고마웠습니다. 제가 돌아온다는 소식에 좋아하시던 할아버지, 행여 군 생활이 힘들지 않을까 걱정하시면서 잠도 설치셨다고 들었습니다.
할아버지께서는 어린 시절을 가난하게 보냈다고 합니다. 그래서 군 생활도 힘들었다고 합니다. 그 가난했던 시절을 저에게 경험하게 하고 싶지 않으시다면서 제가 올 때마다 돈 봉투를 주셨습니다. 예전부터 일본에서 한국으로 놀러왔을 때 그리고, 대학 방학이 시작되어서 잠시 할아버지 댁에 들렀을 때 할아버지는 항상 돈 봉투를 주셨습니다. 맛있는 거 사먹으라고 웃으시면서 돈 봉투를 주셨습니다.
그때도 감사하게 생각하고 받았었지만 그 봉투에 깃든 저에 대한 할아버지의 사랑을 깊게 생각해보지 못했습니다. 그 날 밤 저는 할아버지와 함께 막걸리를 사서 같이 마셨습니다. 할아버지께서는 군 생활 힘들지 않으냐고 물으시면서 술을 주셨습니다. 저는 괜찮다면서 막걸리 한 잔을 마셨습니다.
할아버지는 군 생활이 힘들던 시절, 가난하던 시절을 견딘 분입니다. 그런 분들 덕분에 지금 우리는 편안한 생활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니, 군대에 오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할아버지 같은 분들 덕분에 우리가 이렇게 잘 지낸다는 것도 보여드릴 수 있고, 그 분들이 지킨 나라를 나도 지키고 있다는 자부심도 들었습니다.
부모님은 술을 안 드셔서 그 날 밤 할아버지와의 담소가 끝나고 나서 안방에서 오랫동안 군 생활에 대해 말했습니다. 항상 고맙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솔직하게 말했습니다. 가족들과 이렇게 오랫동안 대화해 본 것도 오랜만이었던 것 같습니다. 가족의 소중함을 다시금 생각하게 된 첫 휴가였습니다. 요즘에는 휴가를 나갈 때마다 하루 이틀은 꼭 가족들과 함께합니다.
일본에 계신 부모님에게는 항상 전화를 드리고 그들의 일과도 물어봅니다. 그렇게 대화를 나누다보면 서로 웃고 기분 좋게 하루를 시작합니다. 올해 1월에는 군대에서 일본으로 휴가를 보내주어서 부모님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가족들에게 소홀해지는 일은 이제 하지 않을 겁니다.
제가 군 생활을 잘 하고 있는 것은 좋은 동기와 선임, 간부들을 만났기 때문이지만, 군 생활은 자신이 어떻게 하는지에 따라서도 달라지는 것 같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휴가만 바라보는 병사들이 있는가 하면 자기가 원하는 일을 찾아서 그 일에 매진해서 성취해나가는 이들도 있습니다.
어떤 병사들은 좋은 인간관계를 맺으며 보람 있는 군 생활을 보내거나 가족의 중요성을 깨우쳐 효도를 할 것입니다. 저에게 있어서 군대는 잠시 사회에서 나와 자기만의 생각을 할 수 있게 해주는 곳입니다. 새로운 걸 알아가고 잊었던 일들을 다시 깨우쳐 주는 그런 곳입니다. 여러분의 군 생활은 어떻습니까?
(20전투비행단 헌병대대 경비중대 상병 박창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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