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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자원 병역이행 병사 체험 수기⑪] 어느 한 자리도 소홀한 자리는 없습니다.

Written by. 김현우   입력 : 2017-09-09 오후 1:3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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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내용은 병무청이 주관한 「2017 자원 병역이행 병사 군생활 수기」 ‘영주권’ 부문 입선글이며, 자원입대한 병사들의 계급은 체험수기 응모 당시의 계급임(편집자 주)

 여느 때와 별 다름없던 한 5월의 아침, 세면세족을 마치고 처부추장을 하러가기 전, 잠시 동안이나마 생활관에 누워서 빈둥거리고 있던 저는 문이 열리는 소리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에이, 동기거나 몇 달 차이나지 않는 선임이겠지?’ 하고 엎어져있던 저는 생도 이발병 동기인 윤석이가 “충성!” 이라고 하는 소리에 깜짝 놀라 몸을 일으켜 세웠습니다. 제 소대장님인 3소대장님이 들어와 서 있었던 것이였습니다. 원래 아침식사 후 일과 준비 시간에는 침대에 누워있으면 안되는게 중대 규칙이라 저는 두려움 반 놀람 반 섞인 목소리로 “수고하십니다!” 라고 소대장님께 인사를 드렸습니다.

 그러자 소대장님은 “현우? 너가 외국에서 살다온 애 맞지?” 라고 말하셨습니다. 맞다고 대답한 저는 곧이어 왜 입대했냐는 소대장님의 질문에 살짝 당황했습니다. ‘음, 뭐지...? 혹시 나 뭐 잘못한 거 있나?' 하며 조마조마하던 저는 평소에 이 질문을 들으면 항상 하는 답변을 했습니다. “아무리 제가 외국에 살아도 한국인이라면 한국과 관련된 일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보니 태국에서도 군필이 중요하게 여겨져서 입대했습니다.”

 물론 제가 군대에 온 이유가 순수하게 이것만은 아니지만, 소대장님은 ‘그럴 수 있지’ 라는 듯한 눈치로 알겠다고 했습니다. 잠시후 소대장실로 오라는 말씀에 저는 다시 한 번 살짝 놀랐지만, 다행이도 이 공모전에 제가 나갈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려고 그러셨던 거라서 다행이었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한국사회에서 남자들은 아주 특별한 이유가 없는 이상 모두 2년가량 군복무를 해야 합니다. 그리고 면제이거나 아직 입대하지 않은 남자들은 군필자들과 비교해 보면 사회의 수많은 방면에서 구별을 당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회사에서의 채용은 말도 할 것 없고 심지어 요즘에는 아르바이트 일용직을 뽑을 때에도 군필이냐 미필이냐를 따집니다.

 군대 간 사이 대학에서 하지 못한 공부를 대신해 가산점까지 주는 우리나라에서 군대라는 곳은 크나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그런데 아까 소대장님의 말이 암시했듯이 전 엄밀히 말해서 군대를 올 필요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태국, 즉 싸와디캅과 똠얌꿍의 나라 타일랜드에서 9살 때부터 입대하기 전까지 쭈욱 살았기 때문입니다.

 외국으로 이주해서 여행 목적이 아니라 장기간동안 체류하면 누구나 한국 대사관에 찾아가 재외국민으로 등록할 수 있는데, 재외국민들은 뭐 어차피 이미 외국에 있는지라 국외여행허가 등을 받을 필요 없이 37살까지 우리나라로 돌아가지 않고 버티면 군복무 면제가 됩니다.

 이게 군대를 안 가려는 편법처럼 보이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굳이 갈 필요 없겠네!’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겁니다. 저에게는 대한민국에 거의 안가고 악착같이 군복무를 회피하려는 걸로 보였기에 입대한 것도 없지 않아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아예 한국에 못 오는 건 아닙니다. 24살 이후부터는 1년에 최대 60일까지 한국에 올 수 있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 아버지가 하시던 사업이 태국으로 이전되면서 온가족이 태국으로 이민을 가게 되었습니다.

 고등학교까지는 한인학교를 다녔고 태국에 있는 국제대학교에서 2학년 과정까지 마친 후 저는 작년 6월 2일에 한국에 약 13년 만에 돌아와 닷새 후인 6월 7일에 논산에 있는 육군훈련소로 입대했습니다. (물론 그 전에도 몇 번 한국에 왔었습니다. 수학여행 때 강원도 그리고 졸업여행 때 제주도로 갔기 때문에.)

 안 그래도 익숙하지 않은 한국인데 사회로부터 뚜렷하게 분리된 군대라는 곳은 저에게 낯설기 그지없었습니다. 훈련소에서는 분대장들이 말할 때 잘 알아듣지 못해서 일명 ‘얼을 타는’ 경우도 많았고, 제 또래의 한국인들 즉 제 동기들과 함께 훈련소에서 있으면서 태국에서는 접하기 힘든 모습과 문화를 새로이 경험해보는 때이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저는 인터넷이나 TV에서 보고 들어보기만 했던 한국 군대에 막상 와보니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입대하기 전 몇 달간, 아니 몇 년 사이 병영문화가 개선되었기에 그렇다고 할 수도 있지만, 어렸을 때부터 살짝 두려움을 안겨준 군대의 구타나 가혹행위 등은 거의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자대배치도 육군사관학교로 받았을 때에는 그래도 서울에 있는 부대에 간다는 생각이 들면서 자원 입대자를 배려해 준다는 느낌까지 들었습니다.

 처음 육군사관학교에 발걸음을 내딛은 작년 7월 15일에 저는 학교본부 인사행정처에서 저와 같은 날 육군사관학교로 전입온 약 10명의 동기들과 같이 둥그렇게 앉아서 희망하는 보직을 종이에 쓰게 되었습니다.

 특기없이 미분류로 온 저는 결론을 얘기하자면 밤낮으로 정문에서 초병근무를 하는 교육지원중대 경비소대에 들어가거나 아니면 본부중대의 P.X용사가 되느냐 또는 생도들 머리를 잘라주는 이발병이 되느냐 셋 중 한 가지를 골라야 했습니다.

 이발병은 매 분기마다 휴가도 나오지만 ‘손재주도 별로 없는데 이발병은 힘들겠지? 이발을 잘 못하면 혼나겠지?’ 하는 생각에 일단 포기를 했고, 반기에 4박5일 위로휴가가 나오지만 개인정비 시간이 부족해 힘들다는 P.X병을 하려는 동기가 아무도 없자 저는 잠깐 주춤거리다가 “이병 김현우! P.X병 관심 있습니다.” 하고 손을 번쩍 들었습니다. 그때 내린 결정이 현명한 선택 이였는지는 오늘까지도 확실하지 않지만, 아무쪼록 저는 전역하는 내년 3월초까지 육군사관학교에서 P.X 업무를 맡게 되었습니다.

 그 후로 중대에 처음 들어섰을 때, 많은 것들이 저에게 놀라움을 선사해 주었습니다. 우선은 생활관이 동기 생활관이었습니다. 그리고 침상이 아닌 침대가 있었습니다. 훈련소에서는 한방에 12명이 넘게 지냈는데 육군사관학교는 6명이 널찍하게 쓸 수 있는 방에 심지어 에어컨까지 빵빵하게 나온다는게 정말 좋았습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 신기했던 것은 선임들 중 저와 비슷한 국외거주자들이 많았습니다. 재외국민은 없는듯 했지만 영주권자가 중대에 100명중 15명은 되는 것 같았습니다. 처음 입대 신청을 할 때 국외거주자가 자원해서 입대하면 군 생활 내 세 번 비행기 표와 휴가가 추가로 5일씩 (총 15일) 그리고 전역할 때 편도 표까지 나온다는 것을 들었는데 여기는 저 같은 사람이 많다보니 그것마저 어려움 없이 받을 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에 안도의 숨을 쉬었습니다.

 실제로도 작년 11월말 저는 입대하고 반 년 만에 집에 수월하게 다녀 올 수 있었습니다. 본부근무대 지원과에서 일하는 제 선임 그리고 재정과에서 일하는 중대 선임이 없었다면 전 아마 집에 갔다 오지도 못 했을 겁니다. 덕분에 이번 7월 달에도 열흘간 무사히 집에 다녀올 수 있을 겁니다.

 이렇게 여건도 좋은 환경에서 군생활을 하는 저를 보면 최전방에서 매일 산을 오르내리며 근무를 서는 사람들은 제가 너무 편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군대에 있는 동안만큼은 개개인 나름대로 쉬울 수만은 없고 힘든 점들도 당연히 있기 마련입니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충성마트 관리병들은 평일에나 주말에나 남들은 일과를 마치고 쉬는 시간에 P.X에서 계속 일해야 합니다. 주말에도 오전에는 쉬지만 1년에 두 번 설날과 추석을 제외하고 하루도 빠짐없이 14시부터 마트 문을 열어야 합니다.

 그래도 저는 항상 충성마트에서 근무함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육군의 일원으로서 어느 정도 자긍심을 갖고 제 임무에 임합니다. 철책 근무를 서는 최전방 전우들도 국방의 의무를 다하는 것이고, 저와 같이 여기 육군사관학교 근무지원단에서 사관생도의 뒷바라지를 하는 것도 나라를 위해 충성하는 방법 중 한가지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지난번 출타 때에는 지하철에서 어느 할아버지께서 나라 지키느라 고생이 많다고 사탕을 손에 쥐어 주셨는데 그 때 느낀 점이 있었습니다. 우리나라는 아무리 요즘 사람들이 먹고 살기 힘들고 사회가 뒤숭숭하다고 해도 국군이 있기에 어느 노래의 가사처럼 우리 장병들이 부모형제가 단잠을 이루리라고 느꼈습니다.
 
 처음 이 공모전에 대해 들었을 때 참가 대상자가 육군에 약 300명 정도 된다는 사실을 듣고 살짝 아쉬웠습니다. 저처럼 외국에서 사는 젊은이들이 상당히 많은데 그 수에 비하면 너무 적은 수의 남자들이 군대에 오는 게 아닌가 했습니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 혹은 여러분의 자녀분들은 제 경우를 보고 국방의 의무를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더불어 저는 유사시 언제든지 나라를 지킬 준비가 되어있다고 다시 한 번 다짐을 해봅니다. 전역하는 그 날까지 최선을 다해 제 의무를 다하겠습니다. 충성!

(육군사관학교 근무지원단 본부중대 근무3소대 상병 김현우)

안보가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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