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자원 병역이행 병사 체험 수기⑦] 초심을 잃지 않겠습니다
본 내용은 병무청이 주관한 「2017 자원 병역이행 병사 군생활 수기」 ‘영주권’ 부문 장려글이며, 자원입대한 병사들의 계급은 체험수기 응모 당시의 계급임(편집자 주)
단결! 안녕하십니까? 작년 3월 영주권자 입영제도 전형으로 육군훈련소에 입대에서 현재 5사단 35연대 2대대 본부중대 소속으로 군 복무중인 상병 임동수입니다.
친구가 생일편지를 보냈다 해서 기대하고 있던 와중에 제 앞으로 편지가 왔다가는 소식을 듣고 한 걸음에 행정반으로 달려가 편지를 받았습니다. 보내는 사람의 이름을 확인해보니 제 친구의 이름이 아니라 병무청이라는 이름으로 편지가 와서 이렇게 좋은 공모에 저의 병영체험담을 국민과 함께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서 매우 기쁘게 생각합니다.
저는 2002년 한일월드컵으로 한창 온 국민이 들떠있을 때 아버지의 사업으로 온 가족이 다 같이 중국으로 갔습니다. 유치원을 포함한 고등학교까지 12년 의무교육을 모두 마치고 아버지와 했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조국에서의 대학교 진학을 위해 한국으로 돌아와 입대하기 전까지 누나와 자취를 하다 온 평범한 대학생입니다.
지금은 한국에 생활한 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다 보니 어느덧 한국어가 편해졌지만 한때는 잠꼬대를 중국어로 할 정도로 중국어로 말하는 것이 더 편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중국에 오래 살다보니 한국에 와서 중국인이라는 오해와 놀림도 많이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대학교 남자 동기나 선배들에게 군대에 가지 않아도 되냐는 질문을 굉장히 많이 받았습니다. 하지만 미국처럼 중국은 인구가 너무 많은 이유로 영주권, 시민권 등을 외국인에게 발급해 주지 않고, 혹여 발급을 해 준다 해도 많은 시간과 돈이 필요 한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런 이유를 주변에 매번 설명하면서 저 역시 군대에 가야한다고 늘 말해왔습니다, 어려서부터 아버지의 “남자는 군대를 갔다와야 진짜 남자가 된다” 고 하시는 말씀을 늘 들어오면서 자라온 이유 때문인지는 몰라도 군대를 꼭 가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살아 왔습니다.
물론 지금까지 군 생활을 하면서 힘이 들때도 있었지만 그때마다 주변 전우들의 많은 도움을 받으면서 버텨나가는 중입니다. 입대하기 전 주변 지인들을 통해서 군대에 대한 것들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가장 인상 깊었던 말은 전역한지 1년도 되지 않은 동아리 형이 해준 말이었습니다. “그래도 사람 사는 곳이다” 이 말은 그당시 보다 군 생활을 어느 정도 한 지금이 더 와 닿지만 당시에도 충분히 공감이 가는 말이었습니다.
그리고 요즘 군대는 옛날처럼 건물이 노후하지 않고 대부분 학교건물처럼 신형건물입니다. TV에서나 SNS에서 본 생활관 모습과는 거리가 멀고 동기 생활관에 침상이 아닌 침대에서 취침하는 등 이런 면에 있어서는 제가 걱정할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겁니다. 그렇게 저는 입대를 해서 수료를 하고 보충중대까지 거쳐서 제가 지금 생활하고 있는 우리 평화로운 철권대대는 시설이 꽤나 안 좋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제가 상상하던 동기 생활관과 침대는 둘째치고 당시에는 식당 공사를 하던 시기여서 11월 초까지는 밥을 막사 앞 24인용 천막에서 더울때는 엄청 덥고 추울때는 너무나도 추운 곳에서 밥을 먹었습니다. 건물은 생활관, 지휘통제실 등 주요 시설물들을 제외하고 컨테이너 박스로 이루어져있는 대대를 봤을 때 이제 앞으로 여기서 어떻게 지낼지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자대배치를 받을 때의 저로 돌아가서 다른 동기들이 내린 시설 좋은 부대로 뛰어 내리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래도 이렇게 시설이 좋지 많은 않은 곳에서 있을 것은 다 있다는 것을 느끼고, 지금의 부대시설에도 굉장히 만족하면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작년 8월 중순부터 10월 중순 정도 까지 군단 탄약고에 파견을 가서 시설좋은 생활관에서 지내보니 침대보다는 침상이 좋고 8명 정도가 한방을 쓰는 생활관보다는 20명이 넘는 인원들이 기차처럼 쭉 누워서 취침전 웃고 떠드는 소대 생활관이 더 재미있다는 것을 느끼고 왔습니다.
처음 대대에 왔을 때와는 다른 생각을 갖고 군 생활을 하다보니 밖에서는 당연하다고 생각되는 일들이 통제가 되니 사소한 것 하나에도 감사하게 생활하면서 지내게 되었고 시간이 지나면서 중대와 대대에서의 생활도 익숙해져 갔습니다.
저는 성격이 소심하고 먼저 다가가는 편이 아니어서 같이 전입 온 동기보다 소대에 적응하는 것이 조금 느렸습니다. 그래서 활달한 성격을 가진 동기가 처음에는 많이 부럽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먼저 다가와주는 선임들과 동기들 덕분에 저도 중대에 무사히 적응을 잘할 수 있었습니다. 또 제가 좋아하는 축구를 많이 하게 되면서 전우들과 더 가까워 졌고 재밌게 지낼 수 있었습니다.
나이가 어려서 인지 저는 그 후로 다른 선임들이나 동기들한테 미안할 정도로 중대 선임들의 예쁨을 한 몸에 받았습니다. 그럴수록 저는 동기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 모든 일을 더 열심히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열심히 하려다 보니 혼나는 일도 잦았습니다. 일․이등병 일때는 선임들에게 정말 하루도 빠짐없이 혼났습니다.
혼나는 이유도 다양합니다. 간부들의 질문에 대답을 안해서 혼나고, 총기 현황판을 최신화 안해서 저에게 현황판을 던지면서 혼내던 선임도 있었고, 음료수를 마시다가 사래가 들려서 선임 얼굴에 뱉어서 혼나고, 동원훈련 때 예비군이 나중에 훈련할 때 주먹밥 나오면 먹으려고 주었던 맛다시를 전투조끼에 넣어두고 잊어먹어 탄약고 근무때 들켜 사수한테 온갖 욕을 먹고 “내가 이렇게 욕을 먹어가면서 군 생활을 해야하나..”라는 생각에 그 자리에서 펑펑 울었던 기억도 있습니다.
그중엔 진짜 잘못한 일도 있고 억울하게 혼난 것도 있지만 혼날 때 그 즉시 하고 싶은 말을 하면 대드는 것으로 인지해 버리는 선임들 앞에서 표정관리하기가 힘들었습니다. 혼난 것으로 한 페이지를 채우라면 채울 수 있을 정도로 정말 많이 혼났습니다. “표정관리는 스택이다” 라는 명언을 알려준 제 첫 중대장의 말을 마음에 새기면서 참고 또 참아왔습니다.
그렇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그때 그렇게 혼나지 않았더라면 아직도 내가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후임들이 제가 하던 것을 따라 똑같은 실수를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제 어느 정도 제가 저를 혼내던 선임들의 위치가 되어가다 보니 그때는 원망스러웠던 선임들의 마음이 조금이나마 이해가 되는 것 같습니다.
그때는 왜 몰랐을까 라는 생각도 들고 한편으로는 그때 혼나던 제 모습을 돌이켜보니 웃기기도 합니다. 5월에 처음 자대배치 받을 때 저는 본부중대가 아닌 전투중대 소속이었습니다. 후에 대대 작전병으로 뽑혀서 본부중대로 소속을 옮기게 되었습니다. 저는 전투중대, 본부중대, 두 중대에서 모두 생활해 보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 보다는 느낀 것도 많고 배운 것도 또한 많다고 생각합니다.
전투중대에 있을 때는 정말로 여기가 군대인지 아닌지 생각을 많이 했을 정도로 하는 일이 별로 없었습니다. 무엇을 하든 선임들 눈치를 가장 먼저 보고 따라하고 또 혼나고 그렇게 지내왔던 것 같습니다. 훈련을 제외하면 일과에는 작업이나 청소를 하는 시간이 대부분이고 개인정비 시간에는 노래방이나, 사이버지식정보방, PX 등을 이용합니다.
제가 입대하고 나서 처음으로 “내가 정말로 군인이구나”하고 느꼈을 때가 5분전투대기부대 임무를 수행했을 때입니다. 물론 훈련 상황이었지만 야간에 신고접수를 받고 사회에서나 보던 각종 네온사인이 반짝이는 각종 상점들 사이에서 어두운 밤을 헤치고 랜턴을 이용해 유기물이나 다른 특이사항이 있는지 장구류와 총을 메고 도로를 누비는 제 모습이 처음으로 멋져보였습니다.
그 후 훈련이 끝나자마자 개인정비 시간을 이용해서 부모님과 사회에 있는 친구들에게 자랑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총기, 탄 등이 군인에게는 굉장히 민감하다는 것을 모두 알고 있을 것입니다. 제 첫 훈련 때 SNS 상에서나 들어봤을 법한 일이 저에게도 벌어졌습니다. 바로 훈련 중 대검을 산속에서 잃어버린 것입니다.
훈련 상황은 종료가 되었고 장비검사를 하면서 숙영지로 복귀하던 중 제 대검이 없어진 것을 알아챔과 동시에 온몸에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고 머릿속은 하얀 백지상태로 되어 갔습니다. 당시 저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경악 그 자체였고 왜 많고 많은 사람들 중에 나에게 이런 고된 시련이 찾아오는지 내가 무엇을 그렇게 잘못 했는지 나름 착하게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짧은 시간이었지만 주마등처럼 온갖 생각이 지나갔습니다.
같이 있던 부소대장에게 보고를 해야 할지 아니면 그냥 복귀할지 고민을 하다 결국 옆에 있던 선임에게 사실대로 말한 뒤 부소대장과 같이 다시 내려왔던 산을 되돌아 올라가 한시간 정도 헤매다 대검을 찾게 되었습니다.
당시는 이등병 시절이라 몰랐을 때였고 얼마나 중요한 것을 잃어버렸는지도 모르는 때였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대검을 찾아서 영창을 안 간 것이 다행이다 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습니다. 그 후로 저는 훈련중이거나 어디를 갈 때마다 정비를 수도 없이 만지는 버릇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선임들은 당시 괜찮다고 위로해 주었지만 분명 그들도 본인이 그 상황에 처했다면 절대로 그런 위로의 말이 나올 수 없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후임이 생길 때마다 이 흥미진진한 경험담을 말해주면서 특이사항이 생기면 바로 보고를 해야 한다는 말을 함께 건네곤 합니다. 작년 12월, 저는 군 생활동안 더 많은 것을 경험하고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운좋게 얻어서 대대 작전병이라는 직책으로 보직을 이동하고 본부중대로 전입을 오게 되었습니다.
약 8개월 동안 정이 많이 들었던 인원들과 헤어지고 새로운 환경에서 다시 적응을 해야 하고 이제는 병사뿐 아니라 높은 계급의 간부들과도 얼굴을 맞대고 생활한다는 점은 내성적인 성격을 갖고 있는 저로써는 좋은 기회이지만 많은 고민이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저는 그때 후회하더라도 하고 나서 후회하자 라는 생각으로 본부중대로 오게 되었고 여기서는 선임들의 예쁨 뿐만아니라 후임들의 사랑도 받으면서 열심히 군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작전병의 특성상 업무 대부분이 컴퓨터를 이용한 업무이고 근무 또한 지휘통제실에서 상황을 보는 근무를 서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짧은 시간 안에 컴퓨터를 잘 사용할 줄 모르는 제가 사수가 놀랄 정도로 많은 발전을 하는 중이며 새로운 환경에서의 적응을 해 나가는 중이고 저희 분대의 차기 분대장으로서 많은 것을 배워나가는 중입니다. 군대에 있으면서 많은 것을 느끼고 배웁니다.
하지만 가장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바로 책임감을 갖는 것 같습니다. 처음 이등병 때부터 아직은 상병이지만 병장까지 계급이 올라갈수록 후임이 많아질수록 책임감은 더욱 커져 갑니다. 사회에서 직장에서와 같이 나이, 성별 상관없이 우리나라는 계급사회이기 때문에 군대에서의 생활은 계급 사회를 축소시켜 놓은 것과 같습니다.
그런 계급사회를 군 생활동안 낮은 계급에서부터 높은 계급까지 2년이 안되는 기간 동안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은 행운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입대를 앞둔 많은 청년들은 대부분 생각없이 2년이라는 시간을 군대에서 버리는구나 라는 생각의 부정적인 마인드로 입대를 할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저 역시도 그랬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 시간들을 낭비한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지만 이 시간들을 버리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긍정적인 생각으로 군 생활을 하면서 많은 것을 배우고 느끼고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고 또 그 시간을 활용하면 현재 우리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것들을 충분히 이룰 수 있기 때문에 너무 슬퍼하지도 억울해 하지도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저는 중국에 살면서 인종차별도 당해보고 아무 이유없이 그저 한국인 이라는 이유로 길을 가다가 돌도 맞아봤습니다. 하지만 저는 부정적인 생각을 갖지 않으려 노력하고 적응을 못하면 나중이어도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라는 생각으로 버티고 버텼습니다. 군 생활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여기서 이겨내지 못하는 사람은 앞으로 사회에 나가서도 적응을 하지 못하고 그저 자신의 인생을 원망하는 그런 사람이 될 것입니다.
아직 약 230일 정도의 군 생활이 남아 있습니다. 휴가 때 부모님이 계시는 중국에 가려고 했지만 요즘 화재인 사드 때문에 중국에 가는 것이 통제되어서 부모님을 뵙는 것이 어려워지고 그나마 있던 친구들도 이제 군 입대를 앞두고 있어서 의지할 곳이 점점 없어지고 있지만 군 복무를 하면서 중국에서 느끼지 못한 우리나라의 문화와 언어를 습득할 수 있었고 유학생활에서 가장 힘들었던 어디에서도 소속감을 갖지 못했었지만 저를 반겨주는 전우들 사이에서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끝으로 상병 임동수의 부족한 병역체험담을 읽어주신 분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이상으로 남은 복무동안 초심을 잃지 않고 열심히 하겠습니다. 단결!!
(5사단 35연대 2대대 본부중대 상병 임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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