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자원 병역이행 병사 체험 수기⑫] 자랑스러운 우리나라
본 내용은 병무청이 주관한 「2017 자원 병역이행 병사 군생활 수기」 ‘영주권’ 부문 입선글이며, 자원입대한 병사들의 계급은 체험수기 응모 당시의 계급임(편집자 주)
저는 제 생애의 대부분이라 할 수 있는 20년이라는 세월을 멀고도 가까운 나라, 일본에서 지냈습니다. 외국에서 지내다 왔지만, 단 한 번도 제가 일본인이라는 생각을 가진 적은 없습니다. 부모님께서는 제가 어릴 적부터 한국문화에 대해 알려주셨고, 초등학교 때부터는 일본에서 유일하게 민족교육을 가르치고 있는 동경한국학교에 입학시켜 주셨습니다.
그 덕에 일본에 있으면서도 한국 친구들과 어울릴 수 있었고, 월드컵 등의 한국이 출전하는 경기가 있으면 힘껏 한국을 응원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저는 어릴 적부터 제 뿌리는 한국이라는 생각을 가지며 자라왔습니다. 그렇기에 저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국방의 의무를 다해야함이 마땅하다고 생각하여 다니던 대학을 휴학하고 2016년 4월 18일에 대한민국 육군으로 입대를 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입대를 결정했을 때 지인들은 이해 못한다는 표정으로 저를 보며, 일본에서 살다온 시간이 아깝다는 말을 많이 했습니다. 심한 사람들은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니야?’, ‘영주권이 있으면 자기개발을 하면서 본인을 위해 살아도 괜찮잖아?’ 등의 반응을 보였습니다.
그렇지만 그 반응이 절 조국의 부름에 응하게 하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런 장애가 될 수 없었습니다. 비록 외국에서 자랐어도 제 국적은 한국이며 부모님도, 제 친척도, 친구들마저도 저와 같이 한국의 피가 흐르는 사람입니다. 그런 제가 한국인으로서 국방의 의무를 다하는 것은 지극히 정상이며,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생각을 해왔습니다.
물론 지인이 저에게 말했듯이 해외영주권이 있는 인원들은 입대를 희망하지 않으면 35세까지 외국에서 살다오는 대신에 군 입대를 면제받을 수 있다는 법을 얼핏 들은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건 반대로 생각해보면 35세까지 조국의 땅도 못 밟고 지내야 된다고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 라는 말이 있듯이 35세까지 외국에서 살다보면 그곳에 직장, 지인들 더 나아가 가정까지도 생길 가능성이 있는데, 그렇게 되면 아무리 제 마음이 항상 한국을 향해 끓고 있다 하더라도 제 자신이 국가를 위해 봉사하였다는 흔적이 남지 않으면 제 조국에게도 제 자신에게도 매우 실망스러울 것만 같았습니다. 그렇기에 저는 당당하게 입대를 지원했다고 자부할 수 있습니다.
4월 중순, 꽃 피는 계절에 제 안에서 끓는 자신감을 바탕으로 당당하게 훈련소에 입소한 저는, ‘단순한 조국을 향한 열정과 자신감, 그리고 당당함만으로는 군복무를 견뎌내기 힘들 것이다.’ 라는 생각이 뇌리를 스쳐지나갔습니다. 익숙하지 않은 장소와 그 날 처음 본 사람들과의 생활은 지금 생각해보면 추억이지만 그 당시의 저한테는 시련의 연속이었습니다.
입소하고 3일간은 입영심사대라는 곳에서 행여나 몸이 안 좋거나 하는 이유 등으로 신병교육대에 가지 못할 인원들을 가려내는 데에 시간을 모두 투자합니다. 이 때문에 힘든 훈련은 없었으나, 저는 흔히 말하는 향수병에 시달려 고생했습니다. 입소 첫 날밤에는 눈물로 베개를 적셔버리기도 했습니다. 입영심사대에서 조금이라도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사회에서 잘 지내고 계실 부모님, 그리고 8년이라는 오랜 시간동안 저랑 사귀어준 여자친구 생각이 났습니다.
아버지께서는 남자라면 한 번은 갔다와야하는 곳이라며 웃으면서 군 입대를 지켜봐주셨지만, 마음이 여려 결국엔 울음을 터뜨려버린 제 어머니와 여자친구 생각을 하니 정말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래도 하루하루만 바라보며 버티다보니 3개월 같은 3일이 지나 드디어 신병교육대에서 본격적인 훈련을 받게 되었습니다.
훈련소에서는 총 5주 동안 군인이 되기 위한 기본적인 요소들을 배웠습니다. 먼저 훈련소에 들어가 배운 것은 정신교육이었습니다. 1주일의 정신교육동안 주로 한국의 대단함과 북한의 악행들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인상 깊었던 것은 한국이 북한의 기습적 남침으로 인해 큰 타격을 입어 세계 각국에서 지원을 받는 나라였는데, 고도의 경제성장으로 인해 지금은 다른 나라를 지원해주는 나라가 되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또한 우리나라가 지원을 받던 나라에서 지원을 하는 나라로 바뀐 유일한 나라라는 것을 듣고 나니 제가 한국인이라는 것이 다시 한 번 자랑스러워졌습니다. 우리 민족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끝없이 무너져도 이겨내려는 노력과 단순한 시련으로는 꺾을 수 없는 근성을 몸에 다시금 새길 수 있는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정신교육을 거치고 나니 이 나라를 위해서라면 위국헌신군인본분의 자세 즉, 이 한 몸 불살라 조국을 위한 기둥이 될 수 있겠구나 하는 마음가짐으로 임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입대 전에 정신교육 시간이 제일 따분하고 시간이 안 간다는 말을 들었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설명을 해주시는 간부님들도 간략하고 재밌게 설명해주실 뿐더러, 도중에 영상을 삽입하는 등 병사들이 교육받는데 있어서 지루하지 않게 생각되어져 있었습니다.
만약 제가 사전에 국가에서 자료로 배부하여 준 이토록 유익하고도 이해하기 쉬운 정신교육을 듣지 못하고 훈련소를 수료한 후 자대에 가게 되었으면, 아마 초기의 제 조국을 향한 열정은 바쁜 내무생활로 인해 점차 식어갔을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정신교육의 중요성에 대해 크게 감회되었습니다.
또한 열의를 확충하자는 의미로 실시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소위 발표라던가 교육을 되짚어 볼 수 있는 문제 등으로 능동적인 교육을 함으로써 저희 정신교육시간은 항상 활기와 생동감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문제를 맞히는 이에게는 훈련소에서 사회에 있는 지인들과 연락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인 전화를 포상으로 주었는데 저는 이에 더욱 자극을 받아 정신교육시간 내내 상시 정신을 곧추세우면 집중력의 끈을 놓지 않았고, 그에 대한 노력의 결과였을지 모르지만 문제를 여러 번 맞히고 나니 입소 1주차부터 포상을 낚아챌 수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일말의 고민도 없이 이날의 저를 있게 해주신 부모님에게 바로 연락을 드렸습니다. 수화기너머로 울먹이시면서 저의 안부를 묻는 부모님의 목소리를 들으니 저 또한 순간 마음이 동요하였습니다. 당장 박차고 나가 부모님의 품에 안기고 싶은 열망이 마구 솟구쳐 올랐습니다. 그러나 지금 저의 입장은 군인. ‘나라를 지키는 것이 곧 부모님의 안위와도 직결된다.’ 라는 사실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가자 마음을 단단히 먹을 수 있었습니다.
그 다음으로는 혈육관계에 놓인 지인들을 전부 제외하고 저와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 공유하여온 저의 배우자가 될 여자친구에게 전화하였습니다. 훈련소에서 온 첫 전화인지 매우 동요하며 어쩔 줄 몰라 하였지만 서로의 목소리와 마음을 나누고 나니 다시금 연결되어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항상 저의 뒤에서 국가의 부름의 무게를 등에 진 저를 아껴주고 지원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느끼자 다시 한 번 마음을 굳게 먹을 수 있었습니다.
정신교육 주가 끝나고 그 다음 주부터는 직접 몸으로 행하고 배우는 실습 위주의 훈련을 받게 되었습니다. 처음 배운 훈련과목은 경계였습니다. 경계는 말 그대로 주변의 적을 경계하며, 상황발생 시의 행동요령이나 보고요령을 배우는 시간이었습니다. 제가 지금 근무하고 있는 중대도 경비중대라고 하는 위병소 근무를 도맡아하는 중대인데 위병소를 포함한 초소 근무까지 나가고 있습니다.
자대에 와서도 다시 한 번 느낀 점이지만 항상 주위를 경계하는 초병으로써의 임무는 매우 막중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모든 일에 항상 최선을 다하라.’ 라는 말을 항상 몸에 새기고 다니는 저로서는 언제 내가 어떤 부대를 어떤 보직으로 가게 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모든 분야를 확실하게 섭렵해야 어디서든 잘 해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전우들이 다소 등외시하였지만 전시상황에서 가장 중요할 수 있는 경계를 누구보다도 확실하게 몸에 익혔습니다.
다음 훈련으로 접하게 된 것은 수류탄이었습니다. 수류탄은 뭉쳐있는 적을 사살하기 위한 투척용 무기로, 개인당 두 번씩 던지게 되었습니다. 최근 사건사고가 잦은 탓인지 국방부의 명시 하에 육군훈련소장님은 병사들을 배려하여 항상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기 위해 파란색의 연습용 수류탄을 던지게끔 하셨습니다. 연습용 수류탄이라 전시상황에서 실제 세열수류탄을 사용할 때 문제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으나 무게와 구조는 똑같아 충분히 실전에도 사용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 다음 배운 것은 그 유명한 사격술예비훈련, 소위 PRI라고 불리는 각개전투 주 돌입 전 훈련병들에게 가장 큰 벽으로 다가오는 훈련이었습니다. 군대 입대 전에도 피나고 알 배기고 이 갈리는 훈련이라는 것을 들은 저였기에, 훈련을 받기 전 두려움을 가졌었습니다. 하지만 2주간의 훈련으로 우정이 쌓인 전우들과 함께하니 그 두려움은 반감되었습니다.
물론 PRI는 생각만큼 힘들었습니다. 군인이 당연히 해야 할 사격자세를 배우는 시간이니만큼 그 자세가 굳혀지도록 수도 없이 반복을 했습니다. 실제로 무릎도 까지고 근육도 찢어지는 고통을 수반하였지만 제 옆에 전우들과 같이 만감을 교류하고 고통을 분담하다보니 견뎌낼 수 있었습니다.
전우의 존재는 정말 기쁨은 두 배가 되고 슬픔, 고통은 반감시킨다는 말이 사실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쉬는 시간이나 주말에 전우들과 함께 재밌게 보내고, 훈련 때는 같이 버티며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니, 어떤 훈련도 버틸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우려하던 PRI를 무사히 마친 저는 훈련소의 꽃인 각개전투 훈련을 받게 되었습니다. 각개전투는 한 분대가 분대장과 부분대장 조로 나뉘어, 실제 전투처럼 각종 포복들을 이용해 전진하여 적에게 접근 후 공격하는 기술을 배우는 훈련이었습니다.
내리쬐는 뜨거운 태양과 멀기만 한 도착지점, 그리고 계속해서 넘어지는 제 자신과 전우들을 보니 매순간 매순간이 너무나도 고되고 견디기 힘들었습니다. 그렇지만 지금까지의 훈련소생활에서 배워온 기술들을 응용하고 제 자신에게 믿음을 가지게 되니까 해낼 수 있다는 마음이 점차 제 안으로부터 흘러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마음은 하나였을 때보다 여럿의 마음이 모였을 때 비로소 빛을 발하기 시작했습니다. 모두들 같은 생각을 가지고 같은 목표, 그리고 무엇보다 서로를 믿고 등에 지고 갈 각오가 되어있던 것이었습니다.
전우애! 그보다 더 적절한 단어는 세상 그 어디에도 없는 것 같습니다. 서로를 다독여가면서 힘들 땐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어주다보니 어느새 목표에 닿아있는 ‘우리’를 보게 되었습니다. 내 생에 이런 순간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말과 글 같은 것으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복잡하고도 상쾌한 감정이 제 온몸을 휘감았습니다.
이렇게 길고도 짧은 아쉬운 5주가 지나자 벌써 정든 훈련소를 떠나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어느새 내 삶의 일부가 되어버린 제 전우들을 떠나 보내야한다는 마음에 적적해지려는 찰나, 제 옆자리에서 항상 제 팔이 되어와 준 조윤성 상병이 저에게 이런 말을 해줬습니다.
‘나는 이 훈련소에서 쌓아왔던 인연들을 아주 소중히 생각한다. 그렇지만 이별의 슬픔을 두려워하지는 말아줬으면 해. 전우란 떨어져 있어도 항상 힘이 되어주는 그런 존재이고 모든 군인이 너의 전우야.’ 그 말을 듣고 저는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전우란 단순하게 훈련소나 자대에서 친해진 사람들을 뜻하는 게 아닌 항상 곁에서 내 존재를 다시 확인할 수 있게 해주는 그런 존재가 바로 전우였던 것입니다. 그렇게 저는 마음을 굳게 먹고 아쉬운 마음을 숨기며 언젠가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며 항공작전사령부로 향하는 기찻길에 몸을 실었습니다.
자대에 온 저는 솔직한 감정으로 실망감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흔히 아버지 대로부터나 듣던 악․폐습 및 부조리를 엿볼 수 있었습니다. 선임병 위주로 돌아가는 하향식 막사분위기에, 선진병영의 면모는 찾아보기 힘들었습니다. 그렇게 자대생활에 지쳐가는 도중 새로운 중대장님이 부임하게 되었습니다.
새로운 중대장님께서는 병사에 대한 관심이 굉장히 높으셨습니다. 그리고 마침 시기가 선진병영을 모토로 내세우며 온화한 막사 분위기를 추구하는 국방부의 추세에 맞추어 더더욱 박차를 가하여 선진병영을 자기 뜻처럼 좇아 모든 악․폐습 및 부조리를 완화시키려고 노력하셨습니다.
그 후 눈에 띄게 부조리와 악습이 줄어들었으며 그 중대의 문란함의 척도라고 볼 수 있는 마음의 편지의 빈도수도 점차 줄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제가 복무하는 1년 동안에 일어난 일입니다. 이 짧은 시간에 간부와 정부의 각고의 노력으로 인해 이토록 많은 긍정적인 변화가 있었으니, 대한민국 육군은 앞으로 더욱 강인하고 건실한 모습으로 고착화되어갈 것임에 의심의 여지를 둘 바가 없습니다.
21세기가 되었고 점차 국가안보에 대한 관심이 떨어져가는 요즘, 입대를 단순하게 시간을 때우거나 아무 의미와 생각 없이 복무하려는 인원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는 추세인 것 같습니다. 또한 자유와 개인의 권리를 보장해주는 이런 사회 분위기 속에서 기회가 되면 본인의 이득을 챙기기 위해 공동체의식을 버리는 인원들이 많아졌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입대하지 않아도 되는 국내 거주자들이 ‘군대는 가기 꺼린 곳이다.’ 라는 두려움을 가지고 기피하거나, 굳이 나라를 위해 해외 영주권자가 자진 입대를 희망하는 것의 옳고 그름을 판가름할 수 없는 것은 맞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지금 입대하여 충실히 병역의 의무를 수행하고 있고, 그 사실에 대해 일말의 후회도 하지 않습니다. 입대하지 않아도 되는 입장에 처하여 있는데 굳이 약 2년의 시간동안 나라를 위해 봉사하는 것이 개인의 발전에 반하는 것이 두려운 사람들이 또한 많은 것 같습니다. 저는 이에 대하여 당당하게 외칠 수 있습니다.
‘두려워 할 수는 있으나 그 두려움을 행동으로서 극복하라. 시도조차 하지 않으면 본인의 가능성을 알 수가 없다.’ 본인의 책임과 위업을 이룰 수 있을 때에 비로소 우리나라의 자랑스러운 국민이자 장병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오늘도 우리나라, 이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을 지킬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하여 자부심을 가지고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는 중입니다.
대한민국에 거주하는 국민 여러분들과 해외에 거주하는 재외국민 여러분들 및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고 있는 현역병들과 이미 국방의 의무를 마치고 전역한 예비역 군인 여러분들! 나라는 곧 우리이고 우리는 곧 나라입니다. 개개인의 힘이 모여서 국가안보의 안위를 결정하는 큰 요소가 됩니다. 조금 힘들고 고될지라도 모두가 노력한다면 긍정적인 방향의 결과를 도출할 수 있을 것입니다. 모두가 서로 돕고 의지할 수 있는 그런 평화로운 우리나라를 만들어가고 싶습니다.
(항공작전사령부 본부대 경비1중대 상병 김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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