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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사자 유해 152번째 신원확인

故 민영승 하사, 1951년 8월 노전평전투에서 전사
Written by. 최경선   입력 : 2020-10-05 오전 10:4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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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018년 6월 25일 강원도 인제군 서화리 일대에서 발굴한 유해의 신원이 고(故) 민영승 하사(현 계급 상병)로 확인됐다. 故 민영승 하사의 신원확인은 2000년 4월 유해발굴을 위한 첫 삽을 뜬 후 152번째다.

 故 민영승 하사의 신원확인은 아들인 민장수(72세)씨가 2009년에 유전자 시료를 채취하고 11년을 기다려오던 중, 2018년에 발굴된 유해와 민장수씨의 유전자를 비교 분석한 결과를 통해서 부자관계를 확인할 수 있었다.

 故 민영승 하사는 국군 제 8사단 소속으로 6․25전쟁에 참전하였으며 1951년 8월9일 ~ 9월 18일에 강원도 인제 서화리 일대에서 발생한 노전평 전투에서 8월 21일 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1951년 7월 10일 개성에서 제1차 휴전회담이 열렸으나 유엔군사령부와 공산군(북한·중국군)은 회담을 유리한 방향으로 이끌기 위해 노전평 일대에서 치열한 전투(‘1951.8.9∼9.18.)를 벌였다. 이 지역은 강원 인제 서화리 축선과 인접한 고지군을 점령하기 위한 요충지로 전형적인 고지쟁탈전 양상의 전투였다.

 최초 제8사단은 제16연대와 제10연대를 투입, 고지쟁탈전을 반복함으로써 445고지∼1010고지로 이어지는 고지군을 점령하면서 북한군을 공격했으나 당시 방어에 유리한 지형지물이 없었기 때문에 공방전은 계속되어 제 2차 노전평전투까지 이어지게 되었다.

 ▲ 故 민영승 하사 발굴, 수습현장(국방부 사진 제공)ⓒkonas.net


 치열한 전장에서 마지막까지 싸우다 전사한 故 민영승 하사는 안타깝게도 정강이, 팔 부분의 유해 2점만 67년이 지나서야 후배 전우들에게 발견되었으며 단서가 될 수 있는 유품은 한 점도 발견되지 않았다.

 故 민영승 하사는 1918년 6월 2일 경기도 고양시 관산동에서 4남 1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으며 고인의 형제들은 모두 어린 나이에 홍역 등 병으로 작고했다. 고인은 6·25 전쟁 전까지 종로 소재의 유명한 호텔에서 주방장 생활을 하며 살다 25살이 되던 1943년에 아내 김민순씨를 만나 결혼했다. 당시 1남 1녀의 가장이었던 고인은 1951년 1월 33살의 늦은 나이에 국가를 위해 입대해서 참전했다. 아내 김민순씨는 평생 남편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다가 이번 신원확인이 되기 불과 9개월 전인 작년 12월에 세상을 떠났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은 유가족들과 협의를 통해 귀환행사와 안장식을 치르고 유해를 국립현충원에 안장할 예정이다.(konas)

코나스 최경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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