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전기념 시설물 소개」 ② 워커 장군 추모비
6월은 국가보훈처에서 지정한 호국보훈의 달이다. 코로나19로 현충원 등 널리 알려진 추모 장소는 사람들이 몰려 감염의 위험성으로 추모를 위한 방문이 고민되는 사람들이 있어 비교적 사람들에게 덜 알려진 수도권 추모 장소 중 한 곳을 소개하고자 한다.
경기도 구리시와 인접한 서울 광진구 광장동에 위치한 워커힐 호텔 내에는 윌턴 해리스 워커 사령관의 추모비가 있다. 워커힐 호텔은 6.25전쟁 때 초대 주한 미8군 사령관 워커 장군을 기념하기 위해 워커힐이라는 명칭으로 지어져 SK네트웍스에서 운영하는 호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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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텍사스주 벨턴 출생인 월턴 해리스 워커 장군은 제1차 세계대전, 제2차 세계대전을 거쳐 한국 전쟁에도 참여했다. 1950년 7월 13일 미 극동군사령관 더글러스 맥아더 원수에 의해 한반도로 파견된 워커 사령관(당시 중장)은 ‘낙동강 방어 전투’에서 활약했다. 8월에서 9월 사이 낙동강 부근 방어선에서 북한군의 기습공격으로 인한 전투력 열세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국군과 UN군이 맞서 싸운 결과, 대한민국의 최대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고, 더 나아가 인천상륙작전의 성공 기틀을 마련했다. 당시 낙동강 방어선은 최후의 보루였다. 만약 낙동강 방어선이 뚫리면 한국 정부는 제주도로 쫓겨나거나 혹은 해외에 망명정부를 수립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이 어려운 상황 속에서 전투를 지휘한 사람은 바로 워커 사령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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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더 이상 물러설 수도 없고, 더 이상 물러설 곳도 없다. 무슨 일이 있어도 결코 후퇴란 없다”, “내가 여기서 죽더라도 끝까지 한국을 지키겠다” 등 전투에 굳은 의지를 내비쳤던 그가 내린 작전 명령은 “사수 아니면 죽음(stand or die)”이였다. 그는 내선 작전(內線作戰)을 펼쳤는데, 이는 외부에서 포위, 협공 따위의 형태로 공격하는 둘 이상의 적에 대하여 중앙에 위치해 상대하는 작전을 뜻한다. 그는 직접 현장을 발빠르게 뛰어다니며 내린 상황판단을 근거로 필요한 지시를 내렸다. 또, 공중 우세권 및 제해권을 장악하고 병력 물자를 신속히 증원했으며 전투경찰을 활용해 치안확보에 주력했다. 이를 통해 낙동강 방어선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었고, 맥아더 원수가 구상하던 인천상륙작전도 무사히 성공적으로 끝마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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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낙동강 방어선 전투가 있던 그해 12월 23일 성탄절을 앞두고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그의 아들 샘 워커 대위는 한국전 최전방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승리했고, 이 공로로 은성무공훈장을 받게 됐었다. 워커 사령관은 이를 축하하기 위해 지프차를 타고 미 제9군단 예하 24사단 전투지휘소를 향해 이동하던 중 지금의 서울 도봉동 596-5번지에서 트럭과 크게 충돌했다. 한국군 제6사단 2연대 수송부 정비대 민간 수리공과 박경례(무면허)의 트럭 시험주행 중 교통사고로 인해 사망한 것이다. 워커 사령관은 앞 유리창 밖으로 튀어나가 즉사했고, 운전자는 과실치사로 3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절체절명의 위기상황 속 한국을 구한 월턴 해리스 워커 장군은 그가 세운 공로에 비해 널리 알려져 있지 않았다. 6월,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워커힐에 위치한 추모비와 도봉역 2번 출구 맞은편 아파트 대로변에 위치한 워커 장군 전사지 표지석을 방문해 잠시라도 묵념하도록 하자. 그가 있었기에 현재의 대한민국이, 현재의 우리가 있는 것이다.(konas)
향군 대학생 인턴기자 이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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