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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전기념 시설물 소개」 ㉓ 의료지원단참전기념비

Written by. 대학생 인턴기자 신서연   입력 : 2021-11-02 오전 9:3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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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0년 6월 25일 우리의 아픔인 6.25전쟁이 발발하였다. 수도가 함락되고 후퇴하는 상황이 지속되면서 한국군 및 유엔군의 막대한 전사상자 발생과 함께 민간인의 피해가 급증하자 유엔안전보장이사회는 1950년 7월 31일 '한국 민간인에 대한 구호'를 결의했다. 이후 군사지원을 했던 미국, 프랑스 등 16개국에 대해서는 널리 알려져 있지만 ‘의료지원단’의 활동에 대해서는 딱히 관심을 갖기 전에는 자세히 알지 못하고 있다. 6.25전쟁 당시 의료지원단이 있었기 때문에 유엔군과 한국군뿐만 아니라 민간인들도 치료할 수 있었다. 의료지원단의 참전역사를 살펴보고 그들의 헌신을 기억하기 위해 태종대에 있는 의료지원단참전기념비에 다녀왔다.

 ▲ 부산시 동삼동에 위치한 의료지원단참전기념비. ⓒkonas.net


 6.25전쟁 때 의료지원부대를 파견한 덴마크등 5개국은 적십자 병원선, 앰뷸런스대대,이동외과병원 등을 파견하여 유엔군의 전사상자 치료 및 후송활동 등의 임무를 수행하였다. 당시 우리에게 의료진을 보낸 5개 국가의 적십자 정신과 희생정신을 기리기 위해 1976년 9월 20일 국방부 주관으로 태종대 공원에 기념비를 건립했다. 폭 2m에 이르는 기단부 가운데에 높이 20m의 탑신이 있다. 기단부 정면에는 탑신을 중심으로 좌우에 평화의 상징물이 양각으로 새겨져 있고, 기단부 양쪽 끝에는 받침대 위에 부상병을 후송하는 모습의 조각상이 각각 세워져 있다. 이 모습은 6.25전쟁의 잔혹함을 보여주며 의료지원단의 노고가 보이는 듯했다. 총을 들고 쓰러져가는 병사와 그를 후송하는 의료지원단을 상징하는 것처럼 보인다. 다른 한쪽의 동상은 함께 서서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 이는 병사와 의료지원단 모두 동일한 목표인 ‘자유’를 희망하는 것은 아닐까. 탑 전체가 흰색으로 되어 있어  ‘백의의 천사’를 연상케 한다. 기념비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한국 전쟁 시 유엔의 결의와 적십자 정신에 의거, 의료지원단을 파견하여 유엔군과 한국군의 전상자 치료 및 난민 구호에 공헌한 덴마크, 인도, 이탈리아, 노르웨이, 스웨덴 다섯 나라의 숭고한 업적을 찬양하고 길이 기념하기 위하여 여기에 이 비를 세운다.”  

 ▲ 기념비 뒷면에는 의료지원국별 참전사가 새겨진 동판이 부착되어 있다.(위), 의료지원국의 6.25전쟁당시 야전병원 주둔지(아래). ⓒkonas.net

 

 의료지원단참전기념비 뒷면에는 6개의 의료 지원단의 지원 약사가 기록되어 있다. 파견날짜, 활동, 귀국 날짜를 참전 국가 언어, 한국어, 영어 순으로 명시되어 있다. 6.25전쟁 중 첫 의료지원국이며 가장 오랫동안 활동했던 나라는 스웨덴이었다. 1950년 7월 14일 스웨덴은 유엔에 가장 먼저 야전병원단의 파견 의사를 통보했다. 1950년 9월 28일 부산항에 도착한 스웨덴 적십자병원은 1957년 4월 철수할때까지 6년 6개월동안 참전하여 6.25전쟁에 파견된 의료지원부대 중 가장 오랫동안 한국에서 활동하였다. 덴마크는 1950년 6월 27일 유엔이 한국 군사원조를 결의하자 자국의 적십자사로 하여금 뉴욕을 왕복하던 상선 유틀란디아 호를 병원선으로 개조하여 한국에 파견했다. 8,500톤 규모의 병원선인 유틀란디아호는 부산에 정박한 후 356개 병상을 갖추고 문을 열었다. 이후 인천항에서도 전상자를 치료하고 대민의료 활동을 하다가 정전협정이 조인되자 귀국에 앞서 보유하고 있던 약품과 의료기재들을 유엔한국재건단을 통해 여러 민간병원에 기증하였다. 덴마크 의료진은 정전 이후에도 노르웨이, 스웨덴과 긴밀히 협조하여 우리나라 국립의료원의 설립에 참여해 우리나라 보건분야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이탈리아에는 1950년 8월 국제 적십자가 한국의 의료지원을 요청했다. 이탈리아의 제68적십자병원은 1950년 12월 6일 영등포구 신길동 우신초등학교에 병원을 열었으며 1955년 1월까지 189명의 이탈리아 의료진이 활동했다. 인도는 1950년 11월부터 1954년 2월까지 의료지원국 가운데 가장 많은 의료진을 한국에 파견하였다. 제60야전병원은 전쟁기간 중 외래수술 약 2,300여건을 실시했으며 민간인을 포함해 입원환자 약2만여명을 치료했다. 노르웨이 이동외과병원(NORMASH)은 1951년 7월 19일부터 1954년 11월 10일까지 전선 바로 후방인 의정부와 동두천에서 매일 400명 이상의 환자를 치료했다. 노르웨이 정부는 1954년 10월 18일 의료진이 한국에서 철수한 이후에도 스웨덴, 덴마크 정부와 협조하여 1958년 9월 국립의료원 설립과 운영에 참여해 한국 의료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1953년 3월에는 독일 의회가 한국에 병원 운영을 결정했다. 1954년 5월 17일 부산에 서독적십자병원을 개원하고 1959년 3월까지 운영했던 이 병원은 내과, 외과, 산부인과, 치과, 방사선과, 약국을 갖추었고 최신식 의료기기를 구비한 종합병원 규모였다. 병원이 운영된 5년간 입원, 외래, 수술 환자치료는 물론 간호학교를 무료로 운영해 간호인력을 양성하고 한국인 의사에게 의술을 전수해 전후 한국의 의료발전에 큰 도움을 주었다.

 ▲ 의료지원단참전기념비에 새긴 덴마크, 인도, 이탈리아, 노르웨이, 스웨덴, 독일 국기. ⓒkonas.net

 

 초기 의료지원단 참전기념비에 있는 국가는 스웨덴, 덴마크, 이탈리아, 인도, 노르웨이로 5개뿐이었다. 독일은 정전협정(1953년 7월) 이후인  1954년 1월에 의료지원단이 파견되었다는 이유로 그동안 의료지원국에 포함되지 않았다. 이에 국방부는 지난 2018년 ‘독일 6.25전쟁 의료지원활동 재조명 세미나’를 개최하는 등 학계의 의견을 수렴하여 6.25전쟁 68주년을 계기로 독일을 6.25전쟁 의료지원국에 포함하기로 했다. 독일을 6.25전쟁 의료지원국에 포함한다는 내용을 2018 국방백서에 수록했고 의료지원단참전기념비에도 독일의 국기를 새롭게 추가했다. 이러한 변화는 우리가 역사 공부를 해야 할 방향을 제시해준다고 생각한다. 역사를 잊지 않고 우리를 위해 헌신한 그들을 기억하며 그들의 고귀한 정신을 기려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귀한 사례라고 생각한다.  

 ▲ 의료지원단참전기념비의 비문과 조형물. ⓒkonas.net

 

 우리는 6.25전쟁 당시 수많은 국가의 지원을 통해 극한의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었다. 우리는 ‘함께’였기에 더욱 가능했다. 많은 학생들이 의료지원단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의료지원단이 있었기에 전투에 더욱 집중할 수 있었고 사상자를 줄일 수 있었다는 것을 생각해 봐야한다. 그들은 전상자를 치료하고 사람을 살리겠다는 그 마음가짐 하나로 낯선 땅 한국에 와서 총탄이 빗발치는 그 전장 속에서 수많은 사람을 치료하고 구했다. 그뿐만 아니라 병원시설이나 한국인 의료 인력에 대한 지원으로도 대한민국을 도왔다. 이들의 헌신과 희생으로 인해 우리는 전쟁 피해를 더 줄일 수 있었고 의료체계도 발전할 수 있었다. 코로나19로 제한된 일상을 보낼 수밖에 없는 현재, 6.25전쟁 당시의 의료지원단을 기억하고 그들의 숭고한 정신을 기릴 수 있다는 것이 새삼 뜻깊게 다가왔다.(konas)

향군 대학생 인턴기자 신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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