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칼럼] ‘유엔군 참전의 날’을 함께 기억하며
두 번 다시 참혹한 전쟁이 없기를 바라는 유엔
대한민국 정부는 2013년, 7월 27일을 법정기념일인 '유엔군 참전의 날'로 정했다. 이 날은 1953년 7월 27일 체결된 6.25전쟁의 정전협정을 기념하며, 6.25전쟁 당시 자유와 평화를 위해 함께 싸운 유엔군 참전용사들의 헌신과 희생을 기리는 날이다. 2013년 국가보훈처는 한국이 경제발전과 민주화 성취의 토대를 마련해 준 유엔참전국과 참전용사의 희생과 공헌을 기리고 전후세대들에게 동맹국에 대한 올바른 역사인식을 재정립하는 계기를 마련하기 위해 동 기념일을 제정하였다고 발표했다. 이로써 매년 대한민국 정부는 유엔군 참전의 뜻을 기념하는 행사를 거행하게 되었다.
1945년 8월 일본제국주의의 연합군에 대한 항복으로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국제사회는 두 번의 참혹한 전쟁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항구적인 세계 평화를 정착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1945년 10월 24일 범세계적인 안보협력체로 51개국이 참여하는 국제연합(The United Nations, UN)을 창설했다. 유엔의 핵심 가치는 국제 평화와 안전의 유지, 국가 간 우호 관계의 증진, 인도주의 분야에서의 국제협력, 인권과 기본적 자유의 존중을 위해 전쟁의 재발 방지와 세계 평화를 위한 구심점 역할에 치중하였다. 유엔의 세계 평화 보존 임무는 특히 미국과 소련 간의 냉전 대치 상황 속에서 더욱더 부각되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유엔은 미국과 소련 두 양 강대국 사이에서 이해관계를 조절하고, 위험한 국제 위기 상황으로부터 세계 평화를 책임지는 국제기구로서의 역할을 확대해 나갔다.
세계 평화를 위한 첫 시험대가 된 유엔군 파병
이러한 상황에서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불법 기습 남침은 유엔의 창립 취지와 역할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긴급하고도 중대한 사안이었다. 이에 유엔은 안전보장이사회를 긴급 소집하여 ‘대한민국에서의 적대행위 중지 권고(제82호)’를 통해 북한의 침략 행위를 규탄하고 유엔 회원국들에게 대한민국에 대한 지원을 요청했다. 당시 유엔 상임이사국이었던 소련이 총회에 불참하고, 제2세계인 중화인민공화국이 아닌, 중화민국이 상임이사국 지위에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곧이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6월 27일에는 ‘대한민국에 대한 군사지원(제83호)’를 통해 미국에게 한반도에서의 유엔군 최고 지휘권을 위임하는 결의를 채택했고, 이에 따라 미국을 중심으로 16개국의 유엔군이 한국에 파병되었다. 또한 스웨덴 등 6개국은 의료지원단을 파견하고, 38개국이 유엔을 통해 각종 물자를 지원했는데, 이로써 당시 전 세계 독립국가 93개국 중 64%가 대한민국을 지원했다.
미국은 가장 먼저 병력을 파병하였고 유엔군을 통합 지휘하게 되었다. 미국의 총 참전 인원은 약 179만 명에 달하며, 전사자는 3만 6천여 명, 부상자는 9만 2천여 명이 발생하는 큰 희생을 치렀다. 전쟁기념관의 추모비에는 미국의 각 주별로 희생자의 이름을 새겨놓을 정도이며, 미국과 함께 싸운 경험은 1953년 10월 1일,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을 통해 혈맹의 원동력이 되었다. 이 외에도 유럽의 영국, 네덜란드, 프랑스, 벨기에, 룩셈부르크, 그리스, 튀르키예 등과 아프리카의 에티오피아, 남아프리카공화국, 남미의 콜롬비아, 북미의 캐나다, 아시아의 호주, 뉴질랜드, 태국, 필리핀 등 16개 국가가 전투부대를 파병했다. 이들은 대한민국을 알지도 못했고, 대한민국 국민을 본 적도 없었으며, 국가도 언어도 인종도 달랐지만 오로지 세계 평화를 위해 유엔의 깃발 아래 대한민국의 자유와 평화를 수호한다는 사명감 아래 용맹하게 싸웠다.
대한민국 현대사에 새겨진 유엔군의 공헌과 보답
6.25전쟁은 유엔이 창설 이래 처음으로 집단 안보 체제를 적용한 사례이다. 유엔 회원국들이 공동으로 침략 전쟁의 위협에 대응함으로써 국제 평화를 유지하는 데 중요한 선례를 남겼다. 유엔은 6.25전쟁을 통해 국제 평화와 안보를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특히, 미국을 중심으로 한 자유민주주의 진영은 소련을 중심으로 한 공산사회주의 세력의 확산을 막고 대한민국을 지키는 데 기여했다. 그 뿐만 아니라, 전쟁 이후에도 유엔은 대한민국의 전후 복구와 경제 발전을 위한 많은 원조를 제공했다.
이들의 도움으로 대한민국은 자유를 수호했고, 전쟁의 폐허에서 경제를 일으켰으며, 과거 도움을 받던 나라에서 이제는 도움을 주는 나라로 탈바꿈했다. 이를 기억하고자 대한민국 정부는 유엔이 창설된 날인 10월 24일을 ‘국제연합의 날’, 정전협정이 체결된 날인 7월 27일을 ‘유엔군 참전의 날’, 11월 11일은 ‘유엔 참전용사 국제추모의 날’로 지정하게 되었다. 또한 유엔군의 업적과 희생을 기억하기 위해 참전 기념비를 건립하고, 참전용사들을 초청하여 발전된 대한민국을 보여주는 등 국제보훈 사업을 다양하게 시행하고 있다.
대한민국은 해외파병을 통해 유엔군 파병의 헌신에 보답하고 있다. 1964년부터 약 8년에 걸쳐 30여만 명의 국군을 공산주의인 북베트남의 침략을 받은 자유 남베트남의 평화와 안전을 위해 파병하였다. 또한 1991년 유엔의 정식 회원국이 된 이후 한국은 유엔평화유지군(PKO)의 일원으로 소말리아에 상록수부대 파병을 시작으로 지난 30여 년 동안 약 6만여 명의 국군을 분쟁지역을 비롯한 세계 각지에 파병하여 국군의 우수성과 국가의 위상을 드높였다.
2020년대 유엔의 위상과 향후 대한민국과의 관계
2020년대 유엔의 위상은 국제사회의 다양한 도전 과제 속에서 변화와 도전을 겪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기후 변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 복합적인 위기에 직면하면서 유엔의 역할과 중요성이 더욱 부각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대국 간 갈등 심화, 다자주의 퇴조 등 다수의 위협 요인도 존재하여 유엔의 위상 변화에 대한 다양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특히 상임이사국인 러시아가 인접의 약소국가인 우크라이나를 2022년 2월 24일 침공하여 북한군이 러시아에 군을 파병하였고, 미국을 비롯한 30여개 국가의 나토 회원국이 우크라이나를 지원하고 있는 상황에서 전쟁이 3년 이상 장기화되면서 유엔의 역할과 권리에 대해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엔은 이러한 복합적인 도전 과제들을 극복하고 국제 사회의 평화와 번영을 위한 역할을 강화해야 할 것이다.
대한민국의 입장에서는 1948년 12월 12일, 유엔 총회 결의 제195호에 의해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로 인정받은 바 있으며, 1991년 9월 17일에는 남북한이 동시에 유엔의 정식 회원국이 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 이후, 남북한의 휴전상태를 감시하는 중립국감독위원회와 군사정전위원회를 설치하여 전면적인 무력대결을 억제하고 한반도 정세의 안정에 기여해 왔다.
뿐만 아니라, 장차 분단 체제의 극복을 통한 남북한 통합과 통일의 과정에서도 유엔과 유엔사는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한반도의 분단과 6.25전쟁은 당사자인 남북한의 문제가 아닌 국제적인 역학에서 비롯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한 해결 또한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국들과 세계 평화와 안정을 위한 범세계적 기구인 유엔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게 작용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konas)
박동순 : 대한민국재향군인회 안보교수, 한성대 국방과학대학원 안보정책학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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