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전기념 시설물 소개」 ㉗ 한강방어 백골부대전적비
“살아도 백골, 죽어도 백골“
서울 여의나루역 2번 출구에서 나와 여의도 한강공원을 걷다보면 이 문구가 새겨진 전적비를 볼 수 있다. 바로 6.25 전쟁 초기에 있었던 ‘한강 방어선 전투’에서 7일간 북한군의 공격을 저지한 제18보병연대(백골부대)의 희생과 공헌을 기리고자 세워진 전적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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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방어선 전투는 6월 28일부터 7월 4일까지 국군 3개 사단이 한강에 방어선을 구축하여 북한군의 공격을 저지한 전투다. 이 전투에서 유일하게 마지막까지 전선을 사수한 부대가 바로 ‘백골부대’인 것이다.
1950년 6월 28일, 북한군이 남침하자 서울 삼각지에 주둔해있던 제18보병연대(백골연대)는 2대대와 3대대를 동두천 일대에 투입하고, 1대대는 삼각지 일대에 배치하였다. 그러다 한강인도교가 폭파되면서 1대대의 지휘체계가 분산되자 3중대는 삼각지에 전지를 구축하여 시가전을 전개했다. 하지만 수적열세에 밀려 영등포 일대로 이동하였고 한강방어선에 진지를 구축하여 전투를 수행하였다.
당시 백골부대 용사들은 끼니도 제대로 못 채우고 전투장비도 부족한 매우 열악한 상황이었으나 결연한 마음가짐으로 끝까지 혼신을 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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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1950년 7월 3일, 북한군은 한강을 건너게 되었고 한강방어선은 결국 무너지게 되었지만 이 전투의 목표는 가능한 시간을 확보하기 위한 지연작전이었기에 ‘작전 성공’이라 할 수 있었다.
제18보병연대(백골부대)가 치열하게 방어한 7일이라는 기간 덕분에 국군은 장비와 병력을 재편성하고, 미 지상군이 참전할 수 있는 시간이 확보되어 반격의 발판이 마련되었다.
국군에겐 꼭 지켜야 할 생명선이었고 북한에겐 꼭 건너야 했던 장애물이었기에 치열한 전쟁터일 수밖에 없었던 한강. 백골부대가 여기서 작전을 성공하지 못했다면 북한군이 대전까지 신속히 진출했을 것이고, 그렇다면 대한민국의 운명이 완전히 달라질 수 도 있었던 매우 중요한 전투라 할 수 있다.
이렇게 조국 운명의 갈림길을 사수한 백골부대 용사들을 기억하고자 2003년 10월 1일, 서울 양화동 인공폭포수공원에 기념비가 세워졌다. 하지만 이후 월드컵대교 건설로 인해 2020년 6월에 그 당시 백골부대 용사들이 지켰던 현장인 여의도로 이전하게 되었다.
극한 상황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조국을 지켰던 백골부대. 그들의 공적을 기억하고 그들이 지녔던 불굴의 의지와 희생을 배워야 할 것이다. 이것이 그들이 지켜온 대한민국의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가 해야 할 최소한의 도리이자 의무일 것이다. 그들이 지켜온 것처럼, 우리도 그들의 정신을 본받아 앞으로 우리나라를 지켜나갈 것을 다짐해 보자.(konas)
향군 대학생 인턴기자 정예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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