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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전기념 시설물 소개」 (1) 지평리지구 전투전적비

Written by. 대학생 인턴기자 김선영   입력 : 2023-04-04 오전 9:4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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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진행 중이다. 우리와 지리적인 거리가 있는 곳이라 처음에는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다. 하지만 1년이 지나도록 종전의 기미가 보이지 않을뿐더러 이미 우리 일상생활 곳곳에 전쟁의 여파가 깊숙이 침투해 있는 현실에서 이번 지평리지구 전투전적비 방문은 매우 뜻깊었다.

 ▲ 경기도 양평군에 있는 지평리지구 전투전적비ⓒkonas.net

 

 전적비가 위치한 지평리는 중앙선 열차가 통과하는 주요 교통요충지로서 주변이 높은 산으로 둘러싸여 분지를 이루고 있는 곳이다. 군사적 지식은 없지만 당시 공산군의 입장에서는 이곳을 뚫어야만 남쪽으로 진격할 수 있는 중요한 지점이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지평리 전투는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2월 13일부터 15일까지 미 제2사단 제23연대가 배속된 프랑스 대대와 함께 원주 북방 지평리에서 중공군 제39군 예하 3개 사단의 집중공격을 격퇴한 방어전투다. 이 전투로 중공군은 막대한 피해를 입었고 유엔군이 대규모 중공군을 성공적으로 격퇴한 첫 전투로, 이 전투의 승리로 인해 전세를 역전시켜 38선을 회복하게 되었다.

 ▲ 지평리지구 전투현장의 현대 모습(위)과 전쟁 당시의 모습들(아래)ⓒkonas.net

 

 국방부에서 편찬한 자료를 살펴보니 중공군은 2월 12일 저녁 지평리로 연결되는 도로를 차단하고 다음날 아침부터 지평리를 여러 겹으로 포위했다. 이때 연대장 프리먼 대령은 지평리를 방문한 군단장에게 철수를 건의했고 이를 보고받은 리지웨이 제8군 사령관은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지평리를 확보하라”고 명령했다. 이에 따라 제23연대장은 지평리 사수를 결심하고 4개 대대를 연결하는 원형의 방어진지를 구축했다.

 ▲ 지평리지구전투전적비에 대한 설명문ⓒkonas.net

 

 당시 2월 13일 개시된 쌍방 포격은 어마어마했다. 중공군은 피리와 나팔을 불어대며 프랑스대대 전초기지를 공격했고 대대는 사이렌을 울리면서 이에 대응하면서 순식간에 피아를 식별할 수 없는 수류탄과 육박전이 펼쳐졌다. 대대가 공수투하로 탄약과 보급품을 지원받고 헬리콥터로 부상병을 후송하면서 진지를 재편성하는 가운데 2월 15일에는 전투가 절정에 달해 지평리 상공은 쌍방이 쏘아올린 조명탄과 예광탄, 신호탄으로 불야성을 이룬 가운데 공방전이 세시간 동안 이뤄졌다. 결국 미 제9군단 예하 제5기병연대가 유엔공군의 항공지원 아래 돌파작전을 개시하고 오후 5시경 미 제23연대와 연결에 성공하면서 중공군이 지평리를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이 전투는 미군과 프랑스 대대가 연합하여 유엔군 상호 간의 협조로 전세를 역전시킨 최초의 전투로 평가받고 있다. 지평리 전투에서 유엔군은 전사 52명, 부상259명, 실종 42명이 발생하였으며, 중공군은 4,946명 사살, 78명이 생포되었다. 

 ▲ 지평리지구 전투전적비 전경. 왼쪽에 프랑스군 참전충혼비가, 오른쪽에 미국군 참전충혼비가 있다.ⓒkonas.net

 

 이와 같은 지평리전투에 참전한 용사들의 영혼을 기리기 위해 건립된 지평리전투전적비를 가운데 두고 양쪽 옆에 프랑스군 참전충혼비와 미국군 참전충혼비가 자리하고 있다. 또한 충혼비 인근에는 지평리 전투 당시, 몽클라르 장군이 이끈 유엔군 프랑스대대 지휘소로 사용됐던 지평리전투 유엔사령부가 있다. 6·25전쟁 당시 양조장을 유엔사령부로 임시 사용했는데, 지평 양조장은 복원이 완료돼 안내문이 설치돼 있다. 안내문에는 “1951년 2월 한국전 참전 유엔군 육군의 전설적인 사령관, 몽클라르 장군께서 지평리 전투를 지휘하시는 동안 이곳을 사령부로 삼다”라는 설명문이 프랑스어, 한국어, 영어로 새겨져 있다. 

 ▲ 지평리 전투 당시, 몽클라르 장군이 이끈 유엔군 프랑스대대 지휘소로 사용됐던 지평리전투 유엔사령부 자리ⓒkonas.net

 

 전쟁이 주는 잔학상과 참상이 주는 교훈은 결코 외면할 수 없는 무게로 다가온다. 우리나라가 지금의 고도성장과 화려함 속에 세계경제순위 10위권에 진입할 수 있었던 것은 누가 뭐래도 지평리 전투를 포함해 6.25전쟁에 참전한 195만 유엔참전용사들의 용기와 투혼, 희생과 헌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우리의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다 산화하신 영웅들을 기억하며 앞으로도 향군 대학생 인턴기자로서 더 많은 참전기념시설물을 방문해 보고자 한다.(konas)

향군 대학생 인턴기자 김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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