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 안보뉴스 글씨확대글씨축소스크랩인쇄

고하 송진우 선생 탄신 133주년 및 서거 78주기 추모

국립서울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서 개최
Written by. 최경선   입력 : 2023-05-08 오전 9:02:24
공유:
소셜댓글 : 0
facebook

 국가보훈처는 3·1독립만세운동을 기획하고 언론 활동을 통해 항일 독립운동에 헌신한 송진우 선생의 생애와 정신을 기리기 위한 <고하 송진우 선생 탄신 133주년 및 서거 78주기 추모식>이 8일 오후 2시 30분 국립서울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서 (재)고하송진우선생기념사업회(이사장 김창식) 주관으로 개최된다고 밝혔다.

 기념식은 박민식 국가보훈처장을 비롯한 각계 인사와 기념사업회 회원, 독립유공자 유족 등 4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국민의례와 약전봉독, 추모사, 추모강연, 헌화·분향, 추모의 노래, 유족대표 인사말 순으로 진행된다.

 1890년 전남 담양에서 태어난 송진우 선생은 1915년 김성수를 도와 당시 경영난에 빠져 있던 중앙학교를 인수하여 학감(學監)이 된 후 곧 김성수의 뒤를 이어 제10대 교장으로 취임, 학생들에게 민족의식을 심어주는 교육에 주력하였다. 

 1919년에는 3ㆍ1독립만세운동을 기획하며 천도교 측과 기독교 측의 연합을 주선하는 일을 담당하였다. 특히, 3ㆍ1운동 후 이 운동을 초기에 기획한 48인 중 한 사람으로 지목되어 서대문형무소에서 1년 6개월여 동안 옥고를 치르다 1920년 10월 30일 경성복심법원에서 무죄 선고를 받았다.

 또한, 1921년 9월 14일 ‘주식회사 동아일보’가 창립되자 제3대 사장에 취임, 언론인으로서 물산장려운동 및 민립대학 설립 운동을 적극 추진하였다.

 1925년 미국 하와이에서 태평양 연안 기독교청년회 주최로 제1차 범태평양회의가 개최되자 서재필과 함께 국내 대표로 활약한 선생은 1926년, 국제농민회 본부에서 조선 농민에게 전하는 3ㆍ1운동 7주년 기념사를 3월 5일 자 동아일보에 게재하였다가 무기 정간 처분을 받고 재판에 회부되어 징역 6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1927년 10월 제6대 동아일보 사장에 취임한 선생은 1928년 문맹퇴치운동 추진, 1929년 일본 교토에서 개최된 제3차 범태평양회의 참석, 1931년 학생들의 방학을 이용한 브나로드 운동(일제강점기에 동아일보사가 주축이 되어 일으킨 농촌계몽운동) 추진 등 활발한 언론 활동을 통한 항일운동에 힘썼다.

 1936년 8월에는 베를린 올림픽대회 마라톤에서 손기정 선수가 우승하자, 동아일보에 손기정 선수의 가슴에 붙인 일장기를 지운 우승 사진을 게재하여 제4차 무기 정간을 당하였고, 총독부의 압력으로 같은 해 11월 사임하였다.
  
 1945년 8·15 광복 후에는 한국민주당(寒國民主黨)을 조직하여 수석총무로서 활동하다가 한현우에게 암살당하였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63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박민식 국가보훈처장은 “오직 조국 독립을 위해 일생을 바치셨던 선생님의 희생과 독립 정신은 여전히 우리 국민들의 가슴에 숭고한 애국혼으로 새겨져 있다”면서 “정부는 송진우 선생님을 비롯한 독립유공자분들의 헌신적인 생애와 정신을 우리 미래 세대들이 잊지 않고 계승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konas)

코나스 최경선 기자

안보가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선다
관련기사보기
    • 입력 된 100자 의견이 없습니다.
1
    2026.10.8 목요일
안보칼럼 더보기
[안보칼럼] 한미연합연습 축소에 따른 우리 군의 대책
1. 들어가기2026년 8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기습적인 지..
포토뉴스 더보기
핫클릭 뉴스
깜짝뉴스 더보기
공소청·중수청 시대 오늘 개막…
이재명 정부의 검찰 개혁으로 수사와 기소권을 모두 가진 검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