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전기념 시설물 소개」(22) 설악산지구 전적비
강원도 설악산에 갔다. 과거에는 서울에서 동해안을 가려면 꼬불꼬불 고갯길을 몇 시간이나 넘어야 했다고 한다. 내겐 전설 같은 너무나 옛날 이야기다. 그런데 더욱 실감나지 않는 것은 사계절 수려한 풍광을 자랑하는 설악산 일대에서 피비린내 나는 전투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설악산 소공원에 가면 권금성을 배경으로 서 있는 설악산지구 전적비를 볼 수 있다.
흔들바위까지 가는 길만 해도 만만하다고 할 수 없는데, 험준한 설악산에서 목숨을 건 전투가 있었다는 사실이 너무나 무섭게 느껴졌다. 전사 자료를 찾아보니 6·25전쟁 당시 설악산 일대는 남북한이 치열하게 싸운 격전지였다. 설악산지구 전투는 1951년 중공군의 1차 춘계공세 때 국군 1군단 예하 11사단과 수도사단이 북한군 제5군단과 치른 전투다. 설악산은 6.25전쟁 이전에는 38선 이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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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군 11사단과 수도사단은 1951년 2월 삼척 부근에서 태백산맥 준령을 따라 북진해 5월 7일부터 6월 9일까지 파상 공세를 멈추지 않았다. 이 공격으로 양양과 간성을 탈환하고 향로봉 지역의 북한군 제5군단을 격퇴하여 설악산 일대를 확보할 수 있었다. 그 후 중공군의 제2차 춘계공세로 강릉과 대관령지역으로 작전 후퇴하여 중공군의 침입을 저지함으로써 영동지역을 사수했다. 이 전투에서 산화한 영령들을 추모하기 위해 세워진 것이 설악산지구 전적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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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적비에 새겨진 설악산지구 전사문의 끝부분에는 “나라와 겨레를 위해 한몸 바친 젊은이의 넋이 여기 서려 있으니, 이제 청봉 높은 봉우리에 오르는 사람들은 먼저 이 돌 앞에 고개 숙일 일이다.”라고 적혀있다. 객관적인 전사를 담담하게 읽어내려 오다가 이 문구에서 울컥했다. 우리가 지금 할 수 있는 것이 이 전적비 앞에 고개 숙여 감사하는 일이구나 싶었다.
전적비 335미터 높이의 동상은 국군이 왼손에 착검한 소총을 들고 오른손을 높이 뻗어 힘차게 전진하는 모습이 역동적으로 나타나 있다. 금방이라도 눈앞의 적을 격퇴할 듯한 힘이 보인다. 전적비 하단에는 전투장면을 그린 부조물이 장식되어 있다.
설악산지구전적비를 거쳐 흔들바위까지 다녀오는 동안 유난히 외국인 관광객을 많이 만났다. 6.25전쟁 당시 젊은 그들의 희생으로 지켜낸 설악산이 이제는 세계적으로 알려져 이렇게 많은 외국인들이 다녀가는구나 싶어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어린 아이들 손을 잡고 흔들바위, 울산바위로 향하는 외국인들을 보며 “저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서도 다시 한국을 찾아와 즐겁게 설악산을 다녀갈 수 있는 안보가 튼튼한 나라가 되어야할텐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설악산지구 전적비 비문의 일부를 옮겨 본다.
“바람, 꽃
아름다운 저 능선을
적구가 짓밟을 때
맹호의 노호로
이 봉우리 지켰으니
설악이 여기에 없었더라면
어찌 향로와 건봉이 저기에 있으리오.
오월 초목
단심으로 물들인 충혼,
이 돌과 더불어
길이 남으리라“(konas)
향군 대학생 인턴기자 양혜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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