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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보칼럼] 울진·삼척 무장공비 침투사건의 교훈 잊지 말아야!

Written by. 조우주   입력 : 2023-11-02 오후 2:3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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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북한 무장공비 120명이 울진·삼척 해안으로 침투했다. 6·25전쟁 이후 북한의 대규모 침투 도발이었다. 사건이 발생하기 전인 1962년, 북한은 조선노동당 제4기 5차 전원회의에서 ‘국방에서의 자위’ 원칙으로 4대 군사노선을 선포하며, 대남적화통일을 위한 군사력 건설을 추진했다. 

 이후, 북한군은 남한 지역을 대상으로 군사적 모험을 감행했다. 특히, 1968년 1·21 청와대 기습사건과 이틀 후인 1월 23일 미국 정찰함 푸에블로호(USS Pueblo) 피랍사건 등으로 한반도는 일촉즉발의 위기상황으로 치닫게 됐다. 

 같은 해 11월, 북한은 또다시 도발을 감행했다. 120명의 북한 무장공비들은 10월 30일부터 11월 2일까지 울진·삼척 해안으로 침투했다. 이들은 게릴라전 수행을 위해 특수훈련을 받은 북한 민족보위성(現 국방성) 정찰국 124군부대 소속이었다.

 무장공비들은 10월 30일, 1차로 30명이 울진 나곡리 해안에 침투했고, 11월 1일, 2차로 30명이 울진 고포 해안으로 침투했다. 11월 2일에는 3차로 60명이 삼척 월천리 해안으로 침투했다. 침투한 공비들은 울진·삼척·봉화 등으로 이동했다.

11월 3일, 무장공비들이 울진 북면 고수동 산간마을에 나타났다. 이들은 “주민등록증 사진을 촬영해 주겠다”라며 마을 주민들을 강제로 집결시켜 북한체제 선전과 인민유격대 가입을 강요했다. 반항하거나 머뭇거리는 주민들을 학살하는 만행을 저지르기도 했다. 

당시 주민들은 공비들의 위협에도 군과 경찰에 신고하기 위해 노력했다. 전화가 없었던 시대여서 쪽지에 상황을 적어 다른 주민에게 신고 내용을 전달하게 하는 릴레이식 신고도 이어졌다.

이 상황을 보고받은 정부는 11월 4일 울진·삼척·영월·봉화 지역에 통합방위사태 을종을 선포했다. 우리 군도 공비 소탕 작전을 위해 대간첩대책본부(現 합참 통합방위본부) 지휘하에 2·11·32·36사단, 1공수특전단, 1군사령부 직할부대 등 여러 부대를 투입해 대대적인 작전을 전개했다. 투입된 병력은 무장공비 퇴로를 차단하고 포위망을 구축했고, 헬기를 이용한 수색 정찰도 진행됐다. 그 결과, 11월 16일까지 침투한 적 중 31명을 사살하고 2명을 생포할 수 있었다.

 포위망이 좁혀지자, 무장공비들은 북상 도주를 시도하면서 민가에 침입해 식량과 옷을 절취하고 다시 주민 납치와 학살도 자행했다. 특히, 12월 9일에는 평창 진부면(現 용평면)에서 9살이었던 이승복 군이 무장공비에게 처참한 죽임을 당했다. “너는 북조선이 좋냐, 남조선이 좋냐”라는 무장공비 물음에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대답했다는 이유였다.

 12월 28일까지 약 2개월간 진행된 소탕 작전 끝에 무장공비 113명이 사살되고, 7명이 생포됐다. 우리 측도 군·경과 민간인 등 26명이 안타까운 희생을 치렀다. 1·21 청와대 기습사건 이후 창설된 향토예비군도 작전에 참여했는데, 곳곳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우며 공비 사살 및 생포에 큰 역할을 했다.

 당시 우리 국민들은 선량한 주민이 무장공비에 의해 살해당하는 것을 지켜보며 크게 분노했다. 정부도 유엔 총회에 북한 무장공비 침투를 규탄하는 특별각서를 제출했다. 또한, 향토예비군과 관련된 법규를 재정비하고, 대간첩작전 체계의 미비점을 보완하며 적 비정규전 활동 대응책 수립을 위한 ‘대통령훈령 제24호 대비정규전능력강화책’을 발표했다.

 1·21 청와대 기습사건과 울진·삼척 무장공비 침투사건 등 북한의 잇단 도발로 위기가 고조되는 가운데 1969년 3월, 한·미는 대규모 훈련을 전개했다. ‘포커스 레티나(Focus Retina)’로 명명된 공수기동 작전을 펼치며 양국은 연합방위태세를 더욱 공고히 했다. 북한에는 무모한 도발 시 최단 시간에 미군 증원전력이 한반도에 전개된다는 강력한 경고 메시지를 전했다. 

 울진·삼척 무장공비 침투사건 이후 7여 년이 지난 1975년 10월, 이승복 군의 넋을 위로하고 안보교육 장으로 활용하기 위해 ‘이승복 기념관’이 세워졌다. 이후, 1983년부터 매년 10월 이승복 군 추모 행사가 거행되고 있다. 

 2009년에는 제41주기 추모식에서 무장공비로 침투했던 김익풍씨가 이승복 군의 묘소를 찾아 41년 만에 사죄했다. 그는 고인의 묘소에 참회의 술잔을 올리며 유가족인 형 이학관씨에게 머리 숙여 용서를 구했다.

55년전 오늘 발생한 울진·삼척 무장공비 침투사건을 잊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북한이 지금 이 순간에도 핵과 미사일 도발로 대남적화통일을 위한 군사력 건설에 진력하고 있기 때문이다.(konasnet)

조우주(前 국방정신전력원 전문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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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G-Crusader(crusader)   

    @ 좌빨-10년 시절엔...?? 엄연한 이승복 사건도..."가짜로 둔갑"시키려고~ 빨갱이들이...선동-둔갑술들 발휘햇엇고~~!!ㅎ @ 거기~ 구룡령 계곡도...코너링-연습하기가 아주~ 좋은곳~!!ㅎ

    2023-11-06 오전 3:35:29
    찬성0반대0
  • G-Crusader(crusader)   

    @ 김일성은...70년대에...이미~??ㅎ == 판-검사/변호사-침투~!!ㅎ 종교인-침투~!!ㅎ 지하땅굴-침투~!!ㅎ...모두~ 지시한바 이지요~!!ㅎ

    2023-11-03 오전 6:11:25
    찬성0반대0
1
    2023.11.28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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