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전기념 시설물 소개」 (76) 강재구소령추모탑
강재구 소령은 1965년 10월 4일 월남 파병을 앞두고 훈련하던 중 한 병사의 실수로 많은 부하들의 생명이 위태롭게 되는 찰나 당신의 몸으로 수류탄을 덮쳐 사랑하는 부하들을 구하고 장렬히 산화하였다.
육군에서는 강재구 소령의 거룩한 희생정신을 기리기 위해 제1연대 제3대대를 '재구대대'라 명명했고, 매년 희생정신의 귀감이 되는 모범 중대장을 선발하여 ‘재구상’을 수여함으로써 고인의 뜻을 높이 추앙하고 있다. 또한 모교인 육군사관학교와 서울고등학교에 "강재구 동상"을 건립하여 후학들의 표상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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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재구 소령(육사 16기)은 1960년 소위로 임관, 대위 진급 이후 베트남 파병부대인 맹호부대 제1연대 제10중대장으로 자원했다. 베트남 파병을 앞두고 1965년 10월 4일, 홍천 부근의 맹호부대 훈련장에서 수류탄 투척훈련 중 부하의 실수로 수류탄이 중대원 한가운데로 떨어지자, 고인은 자신의 몸으로 수류탄을 덮쳐, 폭발로 인한 피해를 줄여 수많은 중대원의 생명을 구했다. 당시 그의 나이 29세로 동료 병사들을 지키고 장렬히 산화했다.
온통 밀림인 베트남에서의 전쟁 수행을 가정할 때, 평탄한 지형에서의 훈련은 큰 의미를 가질 수 없었기 때문에 군 지휘관들은 굴곡이 심한 위험지대에서 훈련을 강행하고 있었던 것인데, 이등병이 안전핀을 뺀 수류탄을 놓치고 말았고, 수류탄은 100여명의 중대원이 있는 곳으로 굴러가게 됐던 것이다.
당시 이와 같은 참상(慘狀)을 바로 곁에서 지켜봤던 이범영 대령의 일기에는 ‘오늘은 내 일생에 잊으려 해도 잊을 수 없는 날이다. 큰소리로 수류탄 투척 요령을 일러주시던 강재구 중대장님이 불과 몇 분도 되기 전에 부하 대원이 잘못 던진 수류탄 사고로 유명을 달리했다. 내 동료가 잘못 던진 수류탄을 되받아 던지려다 그만 실패하자 몸으로 수류탄을 덮어 사랑하는 부하들을 죽음으로부터 살려낸 인간 강재구 대위님. 나는 그 위대한 희생정신을 하늘같이 우러러보지 않을 수 없었다’고 적고 있다.
그의 희생으로 중대원들 몇 명만이 경미한 부상을 입었을 뿐 사망자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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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관계자는 ‘육군은 그의 희생을 기리기 위해 태극무공훈장 수여와 함께 1계급 특진을 추서하고, 위관급 장교로는 전무후무했던 육군장으로 장례를 치렀다’며, 병사들의 결의를 새롭게 하는 계기가 됐다.
그는 소령으로 특진됐고 근무공로훈장이 추서됐다. 베트남전쟁과 관련해 태극무공훈장이 수여된 최초의 사례였다. 또 그가 속했던 수도(맹호)사단 제1연대 3대대는 이날로부터 '재구대대'라 명명됐고 그가 중대장을 맡았던 제3대대 제10중대는 재구중대라는 별칭을 갖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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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적 의미로 희생은 ‘다른 사람을 위해 자신의 목숨, 재산, 명예, 이익 따위를 바치거나 버리는 것’이다. 이기적인 인간의 본성상 다른 사람을 위해 자신을 포기하는 것은 결코 자연스럽지도 쉬운 일도 아니다. 그래서 희생은 그 자체로 숭고하다. 선한 영향력의 동력은 다름 아닌 희생이다.
1986년 산화지점으로 알려진 북방면 성동리 일원에 고 강재구 소령 기념관 등을 갖춘 추모공원을 건립했다. 지금은 온통 ‘남의 탓’만 하는 세상이 아닐까 싶다. 언젠가 ‘내 탓이오’하는 운동도 했던 기억이 있다. 그러한 의미에서 강재구 소령과 같은 지도자는 정말 훌륭하고 이 시대에 그리운 사람이 아닐까 싶다. 강재구 소령 추모공원에 잠시 들러 아름답게 꾸며 놓은 공원과 강재구 전시관을 둘러보며 부하를 사랑하는 희생정신을 느껴 본 날이었다. (konas)
향군 대학생 인턴기자 김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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