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보훈기념] (32) 탑골공원, 그 안에 깃든 歷史
올해 계속 이어온 보훈 여정을 오늘도 어김없이 떠난다. 지하철 3호선을 타고 종로3가역에서 내려 탑골공원에 도착하였다. 아마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익히 들어봤을 법한 공간일 텐데, 이곳에서도 나라 사랑 정신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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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탑골공원은 보통 노인층의 휴식처로 인식되지만, 사실 역사적으로 큰 가치가 있는 장소다. 서울에 최초로 조성된 근대식 공원인 이곳은 3·1운동의 시작점으로 잘 알려져 있고, 그 탑골공원의 첫 시작은 그 이전인 조선 시대였다. 국보인 원각사지 10층 석탑과 보물로 지정된 대원각사비가 탑골공원 한쪽에 자리하고 있다.
1919년 3월 1일, 수천 명에 달하는 학생이 모여 12시를 알리는 소리에 맞춰 대한독립 만세를 외쳤다. 탑골공원 팔각정에선 독립선언서를 낭독하였다. 역대 대한민국 헌법 전문에서 한 번도 누락 된 적 없던 3·1운동의 시발점이고, 여기서부터 만세 시위가 전국으로 퍼져나갔으니 우리 민족에게 큰 울림을 주는 곳이라 말해도 전혀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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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골공원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것이 팔각정과 그 옆의 손병희 선생 동상이다. 동상의 주인은 천도교의 지주이자 민족대표 33인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조선 임금 세조가 세운 원각사지 10층석탑 그 앞, 탑골공원 중심부에 동상이 놓여있는 것을 보고 3·1독립선언을 주도한 인물의 위상을 엿볼 수도 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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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농민혁명 당시 전봉준 장군과 함께 관군을 격파하기도 하였으며, 독립으로 나아갈 길을 교육으로 여겨 보성전문학교(現 고려대학교)와 같은 학교를 인수하였고 천도교의 지도자가 되어 친일파로 돌아선 이용구를 출교시켰던 그의 존함과 명성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손병희 선생의 동상이 자리를 잡은 탑골공원이 어르신들의 단순한 휴식 공간에서 벗어나 보훈의 중심, 역사 교육의 장(場)으로 이름이 알려지길 바란다. (konas)
향군 대학생 인턴기자 전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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