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보훈기념] (43) 영국군 기갑부대 참전기념비
영국 남동부에 위치한 작은 도시 “보빙턴”에는, 6.25 전쟁 그리고 타 전쟁에서 전사한 영국 기병 및 기갑부대 장병들을 기리는 비석이 세워져 있다. 그리고 바로 옆에 세워진 박물관 내부에는, 6.25 전쟁에서 활약한 “센추리온 전차”가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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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이 많은 지대이며 동시에 잘 닦인 도로가 거의 없었던 당시 대한민국의 지형 특성상, 6.25 전쟁에 파견된 영국군 소속 기갑부대는 많지 않았다. 전차와 장갑차는 그 특성상 평야나 낮은 언덕에서 최대의 효율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으로 파견된 소수의 영국 기갑부대들은 6.25 전쟁의 제일 격렬한 전투에 투입되면서 많은 활약을 펼쳤다.
제일 대표적인 이야기는 바로 이전에도 한 번 다뤘던 임진강 인근에서 벌어진 설마리 전투였다.
해당 전투 막바지 영국군이 주가 된 영연방 29여단과 함께 투입된 벨기에 대대는 중공군에게 완전히 포위될 위기에 처했다. 이미 3일 가까이 전선을 사수했지만 다가오는 적의 수가 너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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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이 때 영국군의 기갑부대가 전면에 등장했다. 마치 6.25 초반 국군이 북한군 전차부대에게 밀려 후퇴했던 상황을 되갚아주듯, 영국군은 우수한 장갑과 기동성, 화력이라는 삼박자를 모두 갖춘 “센추리온 전차”를 앞세웠다.
당시 센추리온 전차를 운용하던 영국군 제8기갑대대 (비석에서 8 KRIH라 명시된 부대)는 포위망을 부수는 과정에서 중공군의 격렬한 저항과 맞닥뜨렸다. 중공군은 전차에 달라붙는 끈끈한 “점착폭탄”을 들고 센추리온 전차에 마구잡이로 돌격했고, 일부는 전차 위에 올라타 전차용 출입문인 해치를 열고 수류탄을 던져 넣으려 시도했다.
그러나 영국 제8기갑대대는 노련하게 대처했다. 이들은 사방으로 기관총을 사격하고 전차를 이리저리 비틀어 중공군이 올라타지 못하도록 막았다. 이 과정에서 폭발로 전차에 구멍이 났지만 이들은 멈추지 않았고, 결국 24일 벌어진 철수 작전을 무사히 성공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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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날인 25일 벌어진 철수 작전은 더욱 격렬했다. 중공군은 박격포까지 동원해 곳곳에 함정을 파고 전차들을 공격했으며, 수천에 달하는 병력이 전차 몇 대를 향해 마구잡이로 달려들었다.
게다가 이 과정에서 센추리온 전차 몇 대가 논에 빠져 기동불능이 되는 일마저 벌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8전차대대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이들은 전차의 포격으로 중공군이 포위망을 만드는 것을 미리 저지하고, 전차에 올라타면 건물을 부수며 지나가는 식으로 적들을 내쳤으며, 막판에는 부상자들과 철수 병력들을 전차 바로 위에 태우고 기동하는 위험천만한 방법까지 동원했다.
그리고 이들의 용맹한 분투 끝에, 마지막까지 고지를 사수하다 다수가 포로가 된 글로스터 대대를 제외한 타 영연방 제29여단과 벨기에 대대는 다수가 성공적으로 철수할 수 있었다.
이는 제8전차대대 전차병들의 우수한 실력과, 센추리온 전차의 뛰어난 성능이 합쳐져 만들어진 기적이었다.
이틀간 진행된 철수 작전 동안, 제8전차대대원들은 여러 번 포기하고 싶은 유혹을 느꼈을 것이다.
그들에게는 우수한 기동성을 가진 전차가 있었기에, 당장이라도 마음만 먹으면 구출을 그만두고 남쪽으로 방향을 돌려 내려갈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전원 작전에 임했고, 그 결과 많은 수의 아군이 적의 손아귀에 들어가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
그러니, 오늘은 아무리 불가능해 보이는 일이더라도 한 번 쯤은 도전해보는게 어떨까.
마치 1951년 설마리에서 싸웠던 영국군 제8전차대대 장병들처럼 말이다. (konas)
향군 대학생 인턴기자 김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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