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보훈기념] (51) 은평평화공원-윌리엄 해밀턴 쇼 동상
서울시 은평구에 위치한 작은 공원인 은평평화공원에 들어서면, 정복 차림으로 인자한 얼굴을 한 미군 동상이 하나 서 있다. 맥아더 장군, 트루먼 대통령의 동상은 익숙하지만, 그 동상의 얼굴은 무척 낯설다.
그러나 사실 동상 속 인물은 더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다. 그의 이름은 윌리엄 해밀턴 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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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와 한국의 인연은 태어날 때부터 시작되었다. 부모님이 선교사였기에 1922년 평양에서 출생한 쇼는, 이후 10대까지 한국에서 거주하며 능통한 평양 사투리를 구사하고 한국인 친구들과도 어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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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하면서 부모님의 영향을 받은 쇼는 자연스럽게 기독교 선교사가 되고 싶어했으나, 세계 정세는 그에게 쉽사리 선교사의 길을 걷도록 허락하지 않았다. 1940년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했고, 미국 역시 전쟁에 참전했던 것이다.
그리고 미국이 전쟁에 참전하자 쇼는 미국 해군 장교로 입대, 1944년 노르망디 상륙작전에서 어뢰정 PT-518을 지휘하는 등 유럽 전장에서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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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전쟁이 끝나자, 쇼는 막 독립한 한국으로 초빙되어 조선해안경비대사관학교에서 자신의 경험을 살려 함정 운용술을 교육했다. 그리고 이러한 헌신은 1948년 대한민국 해군 창설로 결실을 맺었다.
이후 쇼는 미국으로 귀국, 하버드 대학교 철학과에 입학해 자신이 원했던 선교사가 될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1950년, 북한군의 기습 남침으로 6.25 전쟁이 발발했고, 쇼는 대위 계급으로 미군에 재입대하는 선택을 했다.
주변 사람들 모두가 만류했지만, 쇼는 스스로 “나는 한국에서 태어났으니 한국 사람”이며, “한국인들은 전쟁 중 자유를 지키려 분투하는데 이를 돕지 않고 전쟁이 끝난 후 선교를 할 수는 없다”라고 말한 뒤 6.25 전쟁에 참전했다.
그렇게 전쟁에 참전한 쇼는, 한국어 및 지리에 능통하다는 점을 십분 활용해 미국 제1 해병사단 제5연대 휘하로 종군하였다. 치열한 전투가 이어진 끝에 마침내 1950년 9월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으로 서울 수복이 눈 앞에 다가왔으나, 쇼는 동월 22일, 녹번리에 정찰을 수행하던 중 인민군 매복조의 기습 공격을 받아 전사하고 말았다.
그리고 쇼를 기리기 위해, 2010년 해군사관학교 제2기생이자 쇼의 제자와 친구 관계였던 이동극씨 및 이완용씨의 주도로 그가 전사한 곳 근처인 은평평화공원에 기념비와 동상이 건립되었다.
비록 쇼는 살아생전 대한민국이 자유로운 국가가 되는 것을 보지 못하였으며, 자신이 원하던 선교 활동도 하지 못한 채 생을 마감했지만, 편안한 생활을 영위하던 미국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자신을 희생하며 한국을 도운 그의 진정한 헌신은 오늘날에도 많은 이들에게 큰 귀감이 되고 있다.
그러한 의미에서,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 곳곳에서 일어난 각종 분쟁과 사건을 “남 일이겠지”라고 치부하기보다는, 쇼가 그랬던 것처럼 그들의 고통을 이해하고 도와주려고 노력하는 것은 어떨까.
현장 취재중 쇼의 동상을 관리하는 최기섭 선생님을 만날 수 있어서 인터뷰를 잠깐하고 기념촬영을 했다. (kon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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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군 대학생 인턴기자 김 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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