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보훈기념] (58) 소병민 중령 동상
전라북도 전주시 전주고등학교 교정 한편에서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한 인물이 있다. 오늘 기사의 주인공인 고(故) 소병민 중령이다.
|
소병민 중령(1930~1968)은 전북 완주군 용진면에서 태어난 '전북의 아들'이다. 전주북중학교와 전주고등학교를 거쳐 조선대학교 법학부를 졸업한 그는 1952년 육군 보병학교를 통해 갑종 16기 장교로 임관했다. 6.25 전쟁 당시에도 최전선에서 빛나는 전공을 세우며 조국을 지키는 든든한 방패 역할을 해왔다고 한다.
그의 이름이 우리 가슴에 깊이 새겨진 결정적인 사건은 1968년 11월 3일에 일어났다. 당시 32사단 방첩대장(소령)으로 근무하던 그는 충남 서산지구에 북한 무장공비가 침투했다는 신고를 받고 즉시 현장으로 출동했다.
|
약 5시간에 걸친 긴박한 수색 작전 끝에, 그는 태봉리 야산에 숨어있던 무장간첩들을 발견했다. 소 중령은 교전 중 간첩 1명을 사살하는 성과를 거두었고, 다른 1명과는 30m 거리를 두고 “투항하라. 아니면 사살하겠다.”라며 최후통첩을 내렸다.
적이 항복할 기미를 보여 소 중령이 머리를 들자 간첩의 무차별 사격이 소 중령의 머리를 관통했고, 소 중령은 그 자리에서 쓰러지고 말았다. 적군이기 이전에 한 생명을 살리고자 했던 그의 인도주의적 결단은 안타깝게도 적의 총탄으로 돌아왔고, 그는 향년 39세의 나이로 장렬히 산화했다.
이 작전과 울진-삼척 무장공비 섬멸 작전의 성공으로 북한은 침투 전술 방향을 수정하게 되었고, 이후 대규모 무장간첩 침투가 자제되는 계기가 되었다.
|
정부는 그의 공로를 기려 1계급 특진(중령)과 함께 을지무공훈장을 추서했다. 전북도민들은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그의 애국심을 후세에 전하고자 정성을 모았고, 전사 2주기인 1970년 11월 3일 그의 모교인 전주고등학교 교정 내에 동상을 건립했다.
이 동상은 지난 2015년 5월 14일 국가보훈부 지정 현충시설(관리번호 52-2-70)로 등록되어 체계적으로 관리되고 있다. 전주고등학교는 매년 그가 전사한 11월 3일에 맞춰 관계 기관 및 도민들과 함께 추모 행사를 거행하며 그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기리고 있다.
|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평화는 소병민 중령과 같은 수많은 영웅의 헌신 위에 세워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번 주말, 전주고 교정을 지나게 된다면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우리 곁의 영웅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해보는 건 어떨까. (konas)
향군대학생 인턴기자 주민우













![[안보칼럼] 북한의 드론 전력 위협에 대비한 민·관·군 입체적 대응 방안](/img_data/article/260923/260923_63007.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