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천폭발 때 金 父子 초상화 안고 죽은 것은 순교다(?)"
'예수도 주체사상가였다'는 충격적 글로 일약 유명세를 탔던 신은희 교수(미국 심슨 대학교 종교철학부)가 이번에는 북한인권 문제를 소위 내재적 접근(?)식으로 옹호하고 나서 또다른 파장이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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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북에서 말하는 동지애란 삶과 죽음을 함께 걸고 호흡하는 하나의 생명체적 관계이다. 이 생명체는 신이 내리는 것이 아니라 국가가 주는 것이다"라며 "북에서 개인의 인권을 말하려면 국가의 인권 즉 '국권'을 동시에 말해야 한다"고 주장해 세습 독재권력 때문에 굶주리고 고통 받는 북한 주민 개개인의 인권을 애써 외면하는 궤변을 늘어 놓았다.
그는 또 "(북한 주민)개인의 인권을 보장하려면 (북한의)국권이 함께 보장되어야 한다"고 주장해 개인의 고통보다 독재정권 유지가 우선임을 강조했다. 그녀가 말하는 '국권'이란 김정일 독재정권과 동일시하는 개념으로 느끼기에 충분한 분위기가 이 글 전문 곳곳에 배어있다.
유럽연합(EU) 25개 회원국이 최근 북한 인권문제를 유엔 총회에 상정한 것에 때 맞춰 쓴 이 글에서 신씨는 "인권, 만만한 나라만 잡는 정치도살용은 아닌가?"라는 주장을 펼쳐 북한인권의 처참한 실상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은채 마치 세계 각국이 정치적 의도로 북한정권을 압박하는 것으로만 강조하는 논리를 폈다.
그녀는 자유가 없는 북한 독재사회의 권력 시스템을 선(善)으로 미화하는데도 주저하지 않는다. 그의 글 일부분이다.
『조선식 인권개념에는 조선식 아픔도 있다. 나는 평양에서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소속 참사들을 만날 때마다 북의 인권문제에 관한 질문을 한다. 지난번에는 다양한 출판물에 대한 통제와 관련해 ‘인민들의 알 권리’에 관한 질문을 했다. 그는 자신 있게 “당은 인민에게 좋지 않은 것을 주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즉, 당 지도부가 먼저 좋은 것과 나쁜 것을 선별하여 인민에게 전한다는 것이다. 내가 보기에는 ‘통제’였지만 참사가 주장하는 것은 ‘보호’였다. 나도 옳은 것 같았지만 참사도 옳은 것 같았다. 개인적 차원에서는 통제지만 국가적 차원에서는 보호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런 대화를 나눌 때마다 정확히 설명하기 어려운 ‘조선식 아픔’을 느낀다.』
그녀는 주체사상 전도사 답게 북한 독재사회에서만 일어나는 희극적 사건도 아름답게 이야기 한다.
『용천 폭발 사고 때 순직한 여교사의 이야기가 기억난다. 그녀의 품에는 타다 만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위원장의 초상화가 남아 있었다. 불에 타들어 가는 수령의 사진을 꺼내 오다 불길 속에서 숨진 사건이다. 기독교 용어로는 그야말로 ‘순교’ 사건이다. 기독교 ‘복음’을 위해 아프리카 오지에서 죽어갈 수 있는 헌신적인 신앙심과 비슷하다.』
신 교수는 또 "국내외 많은 단체들이 북의 인권문제를 부르짖는 것만큼 북의 국권을 위해 발언할 수 있어야 하며 미국의 반북정책에도 강도 높은 비판을 동시에 할 수 있어야만 한다"고 주장하면서 글 말미에서는 다음과 같은 북한 정권에 대한 충고(?)도 곁들였다.
『북도 내부적 아픔을 스스로 치유할 수 있어야 한다. 인민이 진정으로 역사의 주인으로 살아 움직이려면 먼저 인민에게 좋은 것과 나쁜 것을 선택할 권리가 주어져야 한다. 인민에게 그것을 선택할 능력이 없다면 인민은 자기 운명의 주인이 될 수도 없고 역사의 주인은 더더구나 될 수 없다. 정치권력에 대한 견제와 내부적 개혁 없이 고립된 민족주의에 사로잡혀 ‘조선식’ 만을 강조한다면 이는 과거 전체주의의 닫힌 인권개념으로 전락할 위험성이 많다.』
신은희 교수는 지난 달 19일부터 친북반미 성향의 한 인터넷 매체에 '신은희의 통일문화 이야기 - 기독교와 주체사상과의 대화'라는 주제로 북한 독재권력을 옹호하는 글을 써오고 있다. '예수도 주체사상가였다'라는 첫번째 글을 발표한 이후 이번 글은 5번째다.(konas)
김 철 기자 konasnet@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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