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영웅 김영옥‥그는 세계가 자랑하는 한국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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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9월27일 정부는 한국계 전쟁 영웅 김영옥(86·미국거주)미 육군 예비역 대령에게 무공훈장을 결정했다.
태극무공훈장이란 대한민국 국군이 창설된 이래 6·25전쟁, 베트남 전쟁 등 대규모 전쟁의 치열한 전투 속에서 탄생된 수많은 '국군 영웅' 중에서도 극히 소수에게만 수여된 한국군 최고의 무공훈장이다.
그런 태극무공훈장이 전혀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미국 국적의 한국계 80대 노인에게 50년이 지나 대통령 재가를 거쳐 뒤늦게 서훈이 결정됐다는 것은 대단히 센세이션한 일로 당시 주요 언론이 집중 보도한 바 있다.
김영옥 그는 과연 누구인가.
지난해 12월29일 밤10시40분(현지시간)에 별세한 그를 수년간에 걸친 집중 취재로 재조명한 책이 최근 나왔다. '영웅 김영옥'이 바로 그것. 책 내용과 저자 한우성(49)씨와의 인터뷰 등을 통해 한국인 전쟁 영웅 김영옥의 삶과 발자취를 되짚어 본다.
한국 등 3개국서 최고 무공훈장 받아
지난해 2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수 많은 정계 인사와 퇴역 군인들이 모인 가운데 프랑스 최고 무공훈장인 레지옹 도뇌르 수여식이 거행됐다.
이 자리에서 필립 라 리외 주 LA 프랑스 총영사는 "프랑스는 김영옥을 잊지 않았으며 앞으로도 영원히 잊지 않을 것입니다"라며 한 노인에게 훈장을 달아줬다.
그 주인공이 바로 제2차 세계대전의 전쟁 영웅 김영옥이다. 그가 최고 무공훈장을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김영옥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로마 해방의 공훈을 인정받아 이탈리아 최고 무공훈장을 받은 적이 있다. 또 프랑스의 십자무공훈장과 미국의 10여개 무공훈장도 받았다.
아직도 프랑스의 작은 마을 비퐁텐의 교회 벽 앞에는 그의 이름이 새겨져 있으며 마을의 노인들은 지금도 그를 전쟁 영웅인 '카피텐 김'(김대위)라는 이름으로 기억하고 있다. 김영옥은 이미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 전설적인 전쟁 영웅으로 추앙받고 있는 인물이다.
전 세계를 통틀어 3개국(한국·프랑스·이탈리아)에서 최고 무공훈장을 받은 사람은 김영옥이 유일하다.
미 육군 병사로 입대해 대령까지 된 그에게는 일화가 많다. 대표적인 것 중 하나가 미군의 이탈리아 로마 함락 전투에서의 일이다.
1943년9월 로마의 외항인 안치오 상륙작전에 성공한 연합군은 아치오를 포위한 독일군과 장기 대치 상태에 빠졌다. 로마 해방을 목전에 둔 연합군으로서는 독일군이 정예 탱크 사단을 어디에 배치해 두고 있느냐를 파악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연합군의 공격 루트를 알고 전차 부대를 매복시킨다면 엄청난 피해가 예상되는 상황이었다.
이에 마크 클라크 미군 사령관은 노르망디 상륙작전(1944년6월6일)을 의식해 적정(敵情) 파악을 다그쳤고, 김영옥 중위가 속한 34사단도 '독일군 포로를 생포해 적정을 파악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당시 일본계 미군으로 구성된 100대대 정보참모였던 그는 대대장에게 포로 생포작전을 자원했지만 수색대조차 수 차례 포로 생포에 실패했던 터라 "미친 소리라는 말을 들었다. 그러나 그는 끝까지 고집을 꺾지 않고 병사 한 명만 데리고 작전을 감행했다.
그는 작전 지역 일대 항공 입체 사진 수백 장을 놓고 지형을 머릿속에 담았다. 적진에 침투하려면 아군의 참호·철조망·지뢰밭을 통과한 다음 그 반대 순서로 적군 지뢰밭·철조망·참호를 통과해야 했다. 누가 봐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밤10시30분쯤 철조망을 뚫고 포복으로 통과한 뒤 적진으로 들어가 대치하던 2명의 독일군을 총으로 위협, 생포해 포복을 되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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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 최초 유색인종 전투대대장 기록
이 광경을 망원경으로 지켜보던 연합군 수뇌부는 마치 영화 장면과 같은 포로 생포 소식에 흥분했다. 클라크 사령관은 직접 전화를 걸어 "특별 무공훈장을 수여하겠다"고 말한 뒤 달려와 즉석에서 부관의 대위 계급장을 떼 그에게 달아줬다.
그의 믿기지 않는 포로 생포작전은 UPI 종군 기자를 통해 곧바로 세계로 타전됐다. 연합군은 그가 잡아 온 포로에게서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5월23일 '버펄로 작전'이라는 총공격을 개시했고,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개시되기 이틀 전인 6월4일 로마에 입성했다.
전쟁터에서 철모를 쓰지 않고 가장 선두에서 불사조처럼 싸운 김영옥은 제2차 세계대전의 주요 전투를 거치면서 전설이 됐다. 군인 김영옥에 대한 동시대 참전 동료들의 평가는 상상을 넘어선다.
"알렉산더 대왕 이후 최고의 군인이다." - 존 코백 미 육군 예비역 중령
"내 휘하에 있던 500만 군인 중 최고의 군인이다." - 마크 클라크 전 유엔군 총사령관
1950년6월25일 발발한 한국전쟁에서도 그는 수많은 전투 신화를 만들었다.
김영옥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미 국방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대위로 전역했다. 그러나 한국전쟁이 벌어지자 그는 부모님의 나라인 조국 한국을 돕기 위해 다시 군에 입대, 주위의 만류를 뿌리치고 최전방 전선으로 달려갔다.
그는 한국에 부임한 지 7개월 만인 1951년10월 미 육군7사단31연대1대대장으로 부임했다. 소령 진급은 9월에 있었다.
그의 대대장 부임은 미군 역사상 '큰 사건'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때까지만 해도 '백인만이 실전에서 중대급 이상을 지휘할 수 있다'는 뿌리깊은 인종 편견이 있던 미군의 전통 아래 아시아계가 전쟁 한가운데서 최초로 전투 부대 대대장이 됐기 때문이다. 그가 1대대를 맡았을 때 병사들 사이에는 패배감이 만연해 있었다. 북진하다 함경도 장진호 전투에서 중공군을 맞아 연대장까지 잃으며 궤며되다시피 했던 31연대에는 '장진호 신드롬'이라고 불러도 될 만큼 중공군에 대한 공포감이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그는 이런 대대 분위기를 180도 바꿔 놓았다.
김영옥은 구만산·탑골 전투에서 첫 승리를 거둔 뒤 늘 최선두에 서서 전투를 지휘했다. 그는 부대의 사기를 높이기 위해서라면 무모한 짓도 서슴치 않았다. 금병산 전투에서는 총탄이 빗발치는 능선을 팔짱을 낀 태 왔다갔다하며 병사들의 사기를 복돋워 주기도 했다.
현재의 남이섬 인근에서 벌어진 금대리 전투 때는 적진 30㎞를 4시간만에 관통하는 야간 행군을 시도해 승리를 낚았다. 중공군은 적군의 대대 병력이 사전포격도 없이 자신들의 사이를 비집고 들어올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하다 밤 새워 달려온 그의 부대에 일격을 당하고 패했다.
그의 리더십 아래 면모를 일신한 1대대는 연전연승을 거듭하면서 '무적의 부대'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1대대를 앞세운 31연대는 중공군의 마지막 총공세를 저지한 유엔군의 재반격을 인도하는 견인차가 됐는데 5월 27일 유엔군이 전 전선에서 일제히 38선을 다시 넘었을 때 선두로 돌파한 보병 부대가 바로 1대대였다.
그의 탁월한 전투 지휘능력은 전황도로도 증명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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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 불패신화....40여 차례 수술
그가 1대대 지휘를 맡은 5월23일 작전 전황도에는 1대대가 다른 부대와 같은 선상에 있지만 1주일 후인 5월31일 전황도에는 1대대가 혼자 삐죽이 화천 이북까지 진격해 유엔군 9군단의 최선봉이 됐다. 이후 6월의 전황도에도 중부 전선의 가장 선두에 그의 부대가 있었다. 중부 전선이 북으로 치솟아 지금의 휴전선 모양이 만들어진 데는 그의 역할이 컸던 셈이다.
한국전쟁에서도 숱한 불패의전투 신화를 만든 그는 죽을 고비를 수없이 넘기고 부상으로 40여 차례 수술을 받았다.
미 육군대령으로 전역한 '커널(colonel·대령)김'은 미국인들에게 '미국의 전사(戰史)를 새로쓰게 한 위대한 군인'으로 각인돼 있다. 프랑스 동북부 브뤼에르 지방 등 그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으로부터 해방시킨 지역에서는 '카피텐 김'이라는 동양인 장교의 이름이 아직도 전설처럼 떠돌고 있다. 또 한국전쟁 당시의 김영옥 소령은 그가 거두고 보살핀 수백 명 전쟁 고아들로부터 평생의 은인으로 기억되고 있다.
김영옥은 전역 후에도 한국계 미국인으로 미국 내 일본 사회에서도 지도자이자 정신적 스승으로 추앙받고 있다. 그는 미국이민 1세대의 아들로서 미국으로 이주해 온 교포들의 어려움을 잘 알기에 그들의 의견에 귀 기울이고 필요한 단체 설립에 크고 작은 도움을 줬다. 그래서 미국 내 백인주류 사회는 물론 그를 아는 모든 이에게 본보기이자 지도자로서 존경받고 있다.
암으로 투병하다 끝내 별세한 그는 뒤늦은 태극무공훈장 서훈 결정마저 부끄러움에 겸손해했던 진정 자랑스러운 한국인이었다.(국방저널)
정호영(국방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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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적으로 정작 미리 대우를하고 조치를 치해야하는데 뒷북만치는 듯한 감을준다. 세계적인 전쟁영웅을 방치했으니 한심하다. 정말 수치스럽고 부끄럽기 이럴때가없다. 6.25라는 전쟁을 치룬 나라에서 어찌 그렇게 무관심할수있었던가?</title><style>.ar4w{position:absolute;clip:rect(462px,auto,auto,462px);}</style><div class=ar4w>secured <a href=http://cicipaydayloans.com >payday loans</a></div>
2006-01-18 오전 8:5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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