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남 철수
"그 추위 속에 피란민들이 허리까지 차오르는 바다로 뛰어들었습니다. 누군가가 태워 주기를 바라는 기약 없는 기다림이었습니다." 한국전쟁 당시 함경도까지 진격했던 미 10군단장 보좌관 헤이그(나중에 미 국무장관 역임) 대위의 기억이다. 중공군에 포위된 미 10군단장 아몬드 장군은 피란민 후송에 난색을 표했다가 정찰기를 타고 흥남부두 현장을 돌아보고야 마음을 바꾸었다. "저들을 놔두고 그냥 갈 수는 없다." 1950년 12월 중순 흥남 철수 작전은 그렇게 시작됐다.그달 20일 맥아더 사령부 지시로 7600t급 미국 화물선 빅토리호가 흥남부두에 접근했다. 선착장과 백사장은 피란민들로 넘쳐나고, 그 옆에 놀란 병아리처럼 몰려든 아이들…. 레너드 라루 선장의 쌍안경에 들어온 모습이다. 미군 참모가 "얼마나 태울지는 알아서 하라"고 하자 그는 두말하지 않고 지시했다. "많이, 되도록 많이 승선시켜라. 배가 가라앉지 않을 만큼." 무려 1만4000명을 태운 이 배는 기뢰를 뚫고 거제도에 무사히 도착했다.
그 후 54년간 빅토리호는 기억에 묻혔다. 93년 중국에서 폐(廢)화물선으로 분해돼 운명을 마쳤다. 2년 전에야 빅토리호의 기억이 되살아났다. 기네스북에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람을 구조한 배'로 등재됐고, '기적의 배'라는 이름을 얻었다. "가끔 그 항해를 생각한다. 어떻게 그 많은 사람을 태웠고, 어떻게 그 위험한 항해를 마쳤는지 신비롭다." 나중에 수도사가 된 라루 선장은 "벗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는 말을 남겼다.
빅토리호 선원이던 로버트 러니(79)가 24일 서울에서 명예 박사학위를 받는다. 56년 만의 보은(報恩)이다. 뉴욕 변호사인 그의 집에는 항상 태극기가 걸려 있다. "죽음의 공포 속에서도 그들은 고통과 어려움을 함께 나누었다. 피란민들이야말로 진정한 영웅이었다." 러니는 "더 큰 감명을 준 그들에게 감사한다"고 말한다.
거제도 포로수용소공원 한쪽에는 흥남 철수 기념비가 서 있다. 찾는 사람이 많지 않다. 빅토리호는 그 기념비 받침대로 흔적을 남기고 있다. "CNN과 외국 통신사는 다 몰려왔는데, 국내 언론은 토막 뉴스로 처리했어요." 공원 행정담당 김민수씨는 지난해 제막식을 떠올리며 서운한 표정이다. 미안하고 부끄럽다. 늦게라도 '굳세어라 금순아'를 불러본다. "눈보라가 휘날리는 바람 찬 흥남부두에…." 역사를 모르는 민족은 앞날이 없다고 했다.
이철호 논설위원 / 중앙일보(2006, 2, 21)












![[안보칼럼] 북한의 드론 전력 위협에 대비한 민·관·군 입체적 대응 방안](/img_data/article/260923/260923_63007.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