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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전의 러일전쟁 : 21세기에 주는 교훈과 시사점

Written by. 박창권   입력 : 2006-12-03 오후 4: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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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년 2월 10일 인천 앞바다에서 러시아 태평양 함대 해군병사들이 100년전 일본함정의 기습공격으로 최초 러일전쟁의 막을 올렸던 인천해전에서 산화한 선배 장병들의 넋을 위로하기 위한 해상 헌화식을 가졌다. 태평양함대사령관인 빅토르 표드로프 제독을 비롯한 장병 875명은 러시아 대잠초계함 코리츠(1,000톤급), 미사일 순양함 바락(9,000톤급), 그리고 대형구축함 애드미럴(8,500톤급) 세척을 이끌고 이 행사를 주관하기 위해 인천항을 방문하였다. 특히, 바락함과 코리츠함은 인천해전에서 침몰한 함명을 그대로 승계한 함정이라는 데 큰 의미가 있다.

 러일전쟁은 100년 전 일본과 러시아간 제국주의 침략을 위한 전쟁이었을 뿐만 아니라 한반도의 식민지화를 본격 개시하기 위하여 감행한 전쟁으로 오늘날 한국 안보에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사실상 국제질서는 제1, 2차 세계대전과 냉전체제의 경험, 그리고 탈냉전기의 새로운 국가간의 관계의 발전에 따라 과거와는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다. 특히,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수립된 유엔은 국가간 분쟁을 해결하고 협력을 촉진하기 위한 국제기구로서 역할을 담당하고 있고, 교통․통신 수단의 발전은 국가간 물품과 서비스의 이동을 실시간 가능토록 하며, 상호의존적 경제관계의 발전은 국가간의 관계와 이해를 크게 변화시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일전쟁은 21세기 초 현재의 동아시아 질서와 국가들의 행보, 그리고 전쟁 자체의 군사적 의미에 있어 한국에 많은 교훈과 시사점을 제시하다.

 무엇보다 러일전쟁은 정치적 측면에서 다음과 같은 세 가지 교훈을 우리에게 주고 있다. 첫째, 동아시아 질서는 현상유지 세력과 이에 도전하는 국가간의 ‘힘’의 대결에 따른 군사적 충돌과 대결이 발생될 가능성이 여전히 매우 크다. 러일전쟁은 러시아가 부동항 확보 등을 위해 시베리아․만주 지역으로의 동진정책을 적극 추진하고, 영국이 이를 저지하기 위해 일본과 손잡고 대응하는 가운데 발생 되었다. 당시 일본은 이미 만주와 여순항을 차지하고 한반도에서 자신의 지배권을 제어하고자 하는 러시아 세력을 축축하고 파괴하지 않으면 한반도와 중국으로의 침략정책을 추진하기가 어려웠다. 이러한 국가간의 세력경쟁은 협상을 어렵게 하고 전쟁을 통한 힘에 의한 타협점을 찾을 수밖에 없도록 하였다. 현 아시아 질서는 미국이 중국에 대한 봉쇄 및 개입 정책을 추구하고 있는 모습을 보이나 군사적인 측면에서 보면 미국의 지배적 영향력에 대해 중국과 러시아가 도전하고 영향력 확대를 추구하는 양상을 보여준다.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패전국의 오명을 극복하고 21세기 새로운 강대국으로 부상을 추구하고 있는 일본과의 동맹관계를 강화하여 이러한 도전을 차단하고 저지하고자 하고 있다. 동아시아에서의 미중을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는 세력경쟁 및 동맹관계는 러일전쟁 이전의 국가관계를 연상토록 한다. 즉, 지역 강대국간의 세력경쟁은 러일전쟁에서 보는 바와 같이 협상과 타협보다는 ‘힘’에 의한 대결과 충돌을 야기하여 결국 지역질서의 불안정을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둘째, 한반도는 지역 강대국간 힘의 교차지역으로 한국이 독자적 위상과 힘을 보유하지 못할 경우 이들 국가의 이해관계에 의해 운명이 좌우될 수 있는 여건을 안고 있다. 러일전쟁 직전 러시아와 일본은 한반도 분할론을 상호간에 제기하였다.러시아 세력이 우세하였을 때에는 일본이, 그리고 일본 세력이 우세하였을 때에는 러시아가 한반도를 반분하여 지배하고자 하는 제안을 하였다. 그러나 양측은 각각 자신이 우세한 세력이라고 판단하였었기 때문에 이를 거부하였다. 러일전쟁은 일본이 한반도에 독점적 지배권을 구축할 수 있도록 하였다. 지역 강대국들은 지역내 지전략적 중심위치에 있는 한반도에 대한 지배적 영향력을 매우 중시하고 있다. 특히, 지역 패권국의 경우는 자신의 영향권 하에 있는 통일 한국을 원하는 반면에 상호간 경쟁관계에 있을 경우에는 분단된 한국을 원하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 이는 오늘날 남북분단의 현실에서 주변국의 한반도에 대한 정책적 입장을 간접적으로 알 수 있도록 한다. 한국은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는 국가적 위상과 힘을 보유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이 남북통일을 달성하고 국가발전을 성공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는 주변 강대국들이 갖고 있는 한반도 문제에 대한 기본적인 시각을 인식하고 이를 한국의 이해에 따라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셋째, 선진 기술강대국과의 동맹관계를 안보의 핵심적 요소로 중시하여야 한다. 일본은 동맹관계를 잘 관리하고 국가발전 정책을 추구하므로 1854년 문호를 개방하고 40년만인 1894년 청일 전쟁을, 그리고 이로부터 10년만인 1905년에 러일전쟁을 승리로 이끌 수 있었다. 일본의 동맹국인 영국은 러시아의 발틱함대의 이동을 방해하여 전력을 약화시켰을 뿐만 아니라 일본이 단기간에 강력한 해군력을 건설하는데 결정적인 지원을 하였다. 예를 들면, 영국의 위협으로 인해 러시아 발틱함대는 수에즈 운하를 통과하지 못하고 아프리카 대륙을 한 바퀴 도는 항로를 선택하므로 극동함대와 제때에 합류할 수 없었다. 나아가 일본은 영국의 지원으로 영국을 포함한 유럽국가 및 미국으로부터 1만 5천톤급의 전함 6척을 포함하여 약20척의 함정을 구입하였으며, 러시아가 이들 국가로부터 전함을 구입하고
자 하는 노력을 차단하였다. 이는 무기이전 정책을 통해 러시아의 강력한 해군력에 맞설 수 있도록 일본의 해군력을 단기간에 증강토록 하였다. 영국과 마찬가지로 미국은 현재 세계의 초강대국으로 동맹국과 결속을 유지하고 무기이전 정책을 통해 군사력 균형과 우세를 유지시키고 있다. 러일전쟁은 21세기 새로운 국제질서하에서 한미동맹이 한국의 안보를 유지하고 국력발전을 추구하기 위해 매우 소중함을 알려준다.

 전쟁의 군사적 측면에서 볼 경우 러일전쟁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교훈을 제시한다.
첫째, 해군력과 해상교통로의 중요성이다. 러일전쟁은 비록 지상전투도 있었지만 해전의 승패에 의해 사실상 전쟁의 결과가 결정되었다. 이 전쟁의 특성은 해외영토 확보를 위한 전쟁으로 군사력 투사를 위한 해군력의 뒷받침이 없이는 전쟁을 수행할 수가 없었다. 작전적 측면에서 볼 경우 일본은 수세적 해군력을 운용하는 러시아에 대해 전쟁 초기 동해 및 서해에서 해상우세권을 확보하므로 지상군을 대련 지역에 상륙시키고 해상교통로를 안전하게 유지한 가운데 여순항 탈환을 위한 지상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었다. 또한,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톡 전대와 여순함대 세력의 집결을 저지하므로 이를 효과적으로 각개 격파할 수 있었다. 반면에 러시아는 지역적인 해상우세권의 상실로 인해 비록 전체적으로는 우세한 해군력을 보유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전력을 집중할 수 없었으며, 일본군이 해상교통로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하였다. 최근 국가간 전쟁은 지상 영토분쟁 보다는 해양 도서 및 관할권 분쟁과 관련한 분쟁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또한, 국가간 물동량의 대부분은 여전히 해상교통로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며, 에너지 안보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나아가 걸프전, 이라크전에서 보는 바와 같이 해외분쟁에 동맹국간 연합작전이 빈번히 요구되고 있다. 해군력과 해상교통로의 보호는 이러한 새로운 요구에 부응하기 위한 핵심적 요소이다.

 둘째, 군사력의 질적 요소가 전쟁승패의 결정적 요소로 작용한다. 일본이 전장에서 승전을 이끌었던 중요요소들을 나열해 보면 도고 제독을 비롯한 지휘관과 참모들의 전투에 임하는 자세와 태도, 군의 훈련 및 준비태세, 전투를 수행하기 위한 다양한 전략 및 전술의 개발, 정보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활용할 수 있는 능력, 그리고 장병들의 충성심과 투지 등 군사력의 인적 요소가 핵심적 역할을 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일본과 러시아는 비록 무기체계의 성능과 전투함의 양적규모 측면에서는 상당히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였다. 그러나 전쟁의 마지막을 장식하였던 쓰시마 해전의 결과를 살펴보면 일본 연합함대는 어뢰정 3척이 침몰하고 주력함 3척이 경미한 손상을 입었으며,구축함 및 어뢰정 8척이 일시적인 가동불능 상태에 빠졌고, 110명의 전사자가 발생하였다. 그러나 러시아의 경우는 대만해협을 통과하고자 하였던 38척의 함정중 34척이 침몰, 자침, 또는 억류당하였으며, 4,830명의 전사자가 발생하였고, 5,913명이 포로로 잡혔다. 최근에 미국이 수행한 일련의 전쟁 역시 과거와는 달리 군사력의 질적 요소에 의해 전쟁의 결과가 엄청난 차이가 있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특히, 지식․정보화 시대에 있어 첨단전력은 이를 어떻게 효과적으로 건설하고 전장에서 운용할 수 있는가에 달려있다. 인력의 질적 요소는 바로 이러한 모든 것을 결정하는 결정적 변수이다.

 셋째, 군사력 운용에 있어 공세의 중요성이다. 러시아와 일본의 전략적 차이점은 공세와 수세의 차이로 요약된다. 러시아 극동함대는 발틱함대의 증원을 지나치게 기다리는 나머지 모든 군사력을 수세적으로 운용함에 따라 해상우세권을 상실하였을 뿐만 아니라 장병들의 사기를 저하시키고 결과적으로 해전에서 제대로 전투를 수행하지 못하고 참패하는 결과를 자초하였다. 발틱함대 역시 연합함대와 결전을 통한 승전을 추구하기보다는 적극적인 전투의지 없이 블라디보스톡 귀항에 목적을 두고 항진하다 결국 수모를 겪게 되었다. 여순항을 천혜의 요새로 한 지상작전 역시 일본군의 집요한 공세하에 무릎을 꿇지 않을 수 없었다. 즉, 군사력의 공세적 운용은 방자가 활용할 수 있는 지리적 이점 등에 의해 피해를 받을 수 있지만 전쟁에 있어서는 군의 전투의지와 전략․전술 등 전장의 주도권을 장악하는데 있어 절대적 이점을 제공한다. 최근 첨단무기체계를 장비한 전력들간의 전투는 지리적 이점을 극복할 수 있는 무기체계를 제공하므로 공세의 중요성을 배가시켜 주고 있다. 미국이 최근 수행한 전쟁은 공세작전에 기반을 둔 작전이었으며, 이는 전쟁의 결정적 승리에 핵심적 역할을 담당하였다.

 21세기 안보환경과 전쟁양상은 러일전쟁 당시와는 많은 차이가 있지만 이 전쟁은 오늘날 한반도 안보에 매우 중요한 의미를 제시한다.우리는 1세기 전의 힘없고 나약한 국가가 아니라 이제는 경제규모가 세계 10위권에 달하는 선진권 국가로 변모하였다. 한국은 장차 정치․경제․기술 능력 등의 발전을 지속하여 선진국 대열에 본격 진입할 것이며, 남북한 통일을 달성하여 지역 중심국가로 발전할 수 기회를 맞이할 것이다. 그러나 러일전쟁은 우리가 새로운 한국의 세기를 구가하기 위해서는 한미동맹을 잘 관리하고 지역 강대국간 힘의 역학관계를 활용할 수 있어야 함을 말해준다. 또한, 미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한 세력간의 경쟁관계는 ‘힘’에 의한 지역질서가 여전히 국가간의 관계에 핵심적 요소로 작용토록 할 것이며, 한국은 이를 활용하여 통일을 달성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특히, 이러한 '힘’에 의한 지역질서에서는 우리의 국방능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러일전쟁은 안보에 있어 지상전력뿐만 아니라 해군력과 해상교통로의 중요성을 일깨워주며, 군사력 건설에 있어 인적요소의 중요성, 그리고 군사력을 어떻게 운용하는가 하는 전략적 선택의 중요성을 말해준다.(konas)

 박창권(한국국방연구원 국방정책연구실장 chang@kida.re.kr)

안보가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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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akwj3697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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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12-04 오전 9:5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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