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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때나 '어르신'

Written by. 이상흔   입력 : 2007-02-10 오후 12:2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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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방송을 보면 노인을 가리켜 무조건 ‘어르신’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어르신 자원 봉사단’ ‘어르신 교양강좌’ 는 기본이고, 심지어 신문 기사에도 ‘독거 어르신위해 집 지어’하는 문장이 예사로 나옵니다.
 
 한마디로 잘못된 언어생활입니다.

 ‘어르신’은 주로 남의 아버지를 높이거나, 나이든 상대를 높여 부를 때 쓰는 극존칭 용어입니다. ‘어르신’은 ‘어른’에서 나온 말로, 그 어원이 매우 오래되었습니다. 신라시대 향가 ‘서동요’에 이미 그 어원이 등장하기 시작하고, 조선시대에 오면 오늘날과 같은 뜻으로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방송에서 아나운서나 출연자들이 안전심리에 의해 무조건 극존칭을 쓰다 보니 이것이 온 국민들의 언어생활에 잘못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저희’란 말이 대표적인 잘못 사용하는 천박한 표현입니다.(이미 제가 여러 차례 이 말을 쓰면 안 된다고 이곳에서 주장했습니다).  TV나 주위 사람들이 말하는 것을 가만 보면 열에 아홉 명은 ‘저희 집’ ‘저희 어머니’라고 합니다. 운동선수들은 무조건 ‘저희 팀’이라고 합니다. 회사 사장 앞에서도 자기가 속한 회사를 가리켜 ‘저희 회사’라고 하는 판국입니다.
 
 대통령, 장관까지 우리나라나 다름없는 정부를 가리켜 ‘저희 정부’라고 하고 있습니다. 머지않아 ‘우리’라는 단어는 ‘우리나라’ 단 한 단어만 빼고 완전히 사라질 날이 올 것입니다.  ‘우리’라는 말에는 높임말 낮춤말 개념이 없는데도, 이렇게 ‘저희’란 말을 쓰는 것이 바로 우리말이 천박하게 흘러가고 있다는 대표적인 증거가 됩니다.
 
 ‘어르신’이란 말도 마찬가지입니다. 신문이며 방송이 아무 때나 ‘어르신’이라고 하니, 이제 일반 국민들도 ‘노인’이란 말 대신 ‘어르신’이라고 해야 뭔가 안심을 하는 상태가 되고 있습니다.

 '어르신'은 私的인 관계에서 남의 아버지나, 어른을 높여 이르는 말입니다. 지금처럼 방송이나 언론에서 公的으로 '노인'이란 말을 대체해서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 '노인'이란 말 자체에 어떤 높임말 낮춤말 개념이 들어가 있는 것이 아닌데, 이 말을 ‘어르신’이란 말로 대체하기 시작하면 얼마 가지 않아, 도리어 '노인'이란 말이 공식적인 자리에서 사라지는 상황이 올 것입니다.  
 
 지금도 시골에서 쓰지만, 노인을 약간 대접하는 말로는 ‘나마니’란 말이 있습니다. ‘나마니’는 즉 ‘나(이)가 많은 이’란 말입니다. ‘나마니’란 말은 존칭과 비칭 사이를 줄다리기 하는 재미있는 단어입니다.
 
 “저 나마니가 참 노망을 했네” 하면 약간 비하하는 말이고, “나마니한테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할 때는 약간 존칭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상대 노인을 직접 부를 때 ‘나마니요’ 하고 부르지는 않는 것으로 봐서 존칭의 개념이 없는 그냥 ‘노인’이란 뜻으로 봐도 무방합니다.
 
 어쨌든 언론이 국민을 상대로 노인을 가리켜 ‘어르신’ 운운하는 것은 ‘아버지’란 말을 전부 '父親(부친)’은 혹은 椿府丈(춘부장)은' 하고 보도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잘못되고, 어색한 표현입니다.
 
 후기: 참고로 북한 TV를 보니 북에서는 아직까지 노인을 앞에 두고도 "김노인은..."하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상흔(hanal@chosun.com)
 출처:월간조선닷컴 http://monthly.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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