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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해여 옥해여.." 백과사전이 뭐기에

Written by. konas   입력 : 2007-02-22 오후 3:3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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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癖과 痴가 이룩한 18세기 조선‥ 정민 교수 '18세기 조선 지식인의 발견' 출간

 조선 영-정조 시대에 활약한 문신으로 대사간까지 역임한 이의준(李義駿. 1738-1798)이라는 인물이 있다. 그는 황해도 관찰사로 재직 중에 순직했다. 한데 그의 죽음에는 색다른 구석이 있다.

 어느날 밤 관아 건물에 불이 났다. 잠이 떨 깬 이의준은 "내 옥해! 내 옥해!"라고 외치고는 주변의 만류를 뿌리치고는 불길로 뛰어들었다가 질식해 유명을 달리했다. 도대체 옥해가 무엇이기에.

 옥해(玉海)란 백과사전이다. 남송-원 왕조 교체기를 산 인물로 송대(宋代) 제1의 박학(博學)이라 일컫는 왕응린(王應麟. 1223-1296)이 박학굉사(博學宏詞)라는 과거시험을 준비하는 수험생들을 위해 편찬한 분류식 백과사전이요, 요점별 핵심정리 노트집이다.

 왕응린은 마침 청대에 고거학(考據學. 고증학) 열풍이 불면서 주희(朱熹)를 뛰어넘어 그 지위는 청대 고증학이 양대 비조로 삼은 후한시대 경학가들인 허신(許愼)이나 정현(鄭玄)과 맞먹게 된다.

 왕응린과 그의 기념비적 업적으로 꼽히는 옥해의 열풍은 마침내 청국을 박차고 조선까지 넘어오게 되니, 그의 포로가 된 조선 지식인중에 이의준도 있었다. 그가 평생 얼마나 옥해를 아꼈는지는, 자나 깨나 옥해와 함께 했으며, 화장실에 갈 때도 이 백과사전을 놓지 않았다는 일화가 증언한다.

 이의준이 살다 간 18세기 조선 지식인 사회는 그의 옥해 벽(癖)처럼 지식인이라면 모름지기 적어도 미쳐서 정신이 팔릴 만한 취미는 하나쯤 있어야 행세를 할 수 있었다. 그래서 한국한문학 전공인 정민 한양대 교수는 이 시대를 문화사적인 의미에서 '벽치(癖痴)의 시대'로 규정한다. 무엇인가에 미친 사람들이 세상을 만들어간 시대라는 뜻이다.

 이서구(李書九. 1754-1825)는 17세이던 1770년 중국 연경을 다녀온다. 그 길에 초록 앵무새 한 마리를 사와서 집에서 기르게 되는데 그 과정을 기록으로 정리했다. 이렇게 완성된 초고본을 보고 이덕무(李德懋. 1741-1793)와 유득공(柳得恭. 1748-1807)은 각종 자료들을 뒤져 앵무새에 관한 기록들을 대거 보충해 이서구에게 되돌려 보냈다.

 몸집을 두 배 가량 불려서 돌아온 앵무새 원고를 이서구는 이번에는 연암 박지원에게 보내 제목을 붙여주고 서문까지 써 달라고 졸랐다. 연암은 이에 녹앵무경(綠鸚鵡經)이라는 이름을 달았다. 앵무새 이야기를 엮은 기록을 경전으로 격상시킨 것이다.

 유득공 또한 관상용 집비둘기를 키우면서 비둘기에 관한 잡다한 기록들을 모아 '발합경'이라는 '경전'을 지었다.

 더 기괴한 취미를 지닌 사람도 있었다. 판서를 역임한 윤양래(尹陽來.1673-1751)는 초상만 나기를 기다린 사람이다. 상복을 모으는 취미가 있었기에 그의 취미를 만족시켜 주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이 죽어가야 했다.

 또한 유행병처럼 번진 18세기 현상 중 하나로 원예 열풍을 들 수 있다. 소나무 분재를 즐긴 사람이 있는가 하면 국화라면 사족을 쓰지 못한 사람도 많았다. 국화 열풍은 마침내 일본산 국화를 수입하게 만들었다.

 '18세기 조선 지식인의 발견'(휴머니스트)은 '문학을 버린 문화사가' 정민 교수가 내놓은 '미쳐야 미친다'(푸른역사)의 오리지널 버전이다. 후자가 이른바 대중과 그들의 눈높이를 고려한 재가공품이라면, 이번에 선보이는 전자야말로 엄격한 학술성과 교양성을 겸비한 진품이라 할 만하다.

 2001년 이후 각 매체에 발표한 논문 혹은 그 비슷한 중후한 논조의 글들을 묶긴 했으나, '무거움'만 자랑하는 여타 논문집과는 사뭇 다른 품격을 지닌 단행본이라할 만하다. 445쪽. 2만3천원.

 출처:http://blog.yonhapnews.co.kr/ts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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