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장 평화공세'가 '평화체제 구축'은 아니다
평화조약을 체결한다고 해서 평화가 보장되는 것인가. 정작 중요한 것은 평화조약이 아닌, 영속적인 '평화체제의 구축'이다. 평화조약이 '군사적으로 대치하고 있는 나라가 군사행동을 중지하고 평화상태를 회복하고 우호관계를 발전시키기 위하여 맺는 협정'이라 함은 사전(辭典)적 정의(定義)일 뿐이다.
더 본질적인 문제는 남북간의 평화 협상은 '북핵 문제의 해결'이 전제된 것이 아니면 안 된다는 점이다. 그런 전망이 불투명한 상황에서 '한반도 평화무드'를 부밍·업 시킨다는 것은 국민에게 '위장된 평화'의 허상(虛像)을 심어주는 기만(欺瞞)에 지나지 않는다. 국민의 안보의식 약화를 겨냥한 도박일 수도 있다.
얼마 전서부터 집권세력의 '평양 러시'가 잇따르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의 386 핵심측근인 안희정씨가 북한행에 올랐었고, 이해찬씨도 북한엘 다녀왔다. 5월 초에는 여권 김혁규 의원 등이 대거 평양 길에 오른다고 한다. 그동안 비밀리에 추진되어왔던 노 정권의 대북 접촉이 노골화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 시점이 '북한의 핵실험 직후'라는 점이 더욱 '충격적'이다.
북한이 내세우는 '평화공세'의 실체(實體)는 이렇다. 그들이 주장하는 평화는 '연방제 통일'을 거쳐 달성하고자 하는 '적화통일용 위장(僞裝)평화'일 뿐이다. 김정일은 2007년 1월1일 신년사에서 "남조선의 각계각층 인민들은 <신(新)보수의 결탁과 도전>을 <진보 대연합>으로 짓부숴버리고 매국 반역집단에 종국적 파멸을 안겨야 한다"고 선동했다. 진정한 평화와는 거리가 먼 '그들만의 평화'임을 알 수 있다.
국제사회에서 이념을 달리하는 국가간의 평화협정의 실상은 월맹(越盟)과 월남(越南)간의 실사례가 그 교과서일 것이다. 헨리 키신저와 월맹의 레둑토가 파리에서 만나 베트남전을 끝내기로 '평화협정'을 맺었던 것은 1973년 1월이었다. 키신저는 이 협정의 대가로 월맹에 40억 달러(미국 원조 20억 달러, IBRD차관 20억 달러)를 줬고, 월남과는 유사시 즉각 해·공군을 보내 지원한다는 별도의 방위조약을 맺었다. 키신저는 이 업적으로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그러나 1975년 4월 30일, 월맹(越盟)국기가 사이공 대통령궁에 게양되었다. 미국과 월맹이 5년여의 협상 끝에 1973년 1월 27일 파리에서 열린 휴전회담에서 베트남전을 종식하기로 한 합의에 따라 미군이 철수한지 2년3개월만의 일이었다. 월남이 월맹의 전면 공격을 받고 패망한 것이다.
월맹군 18개 사단이 사이공을 향해 무인지경을 달리듯 남하하여 14개 사단이 사이공을 포위한 가운데 4월30일 정오 제2군단이 사이공의 독립궁(월남 대통령 집무실과 관저)을 점령하면서 월남은 지도상에서 사라졌다.
교전 당사국인 미국·월남·월맹·베트콩(베시혁명정부)과 휴전감시위원단인 캐나다·이란·헝가리·폴란드 4개국 그리고 영국·소련·프랑스·중공 등 4강국(强國) 외무장관이 서명에 참여한 '4+4+4 = 12개국'이 담보한 값비싼 서명문서도 한 장의 휴지로 바뀌고만 것이다. 월남과 방위조약을 체결했던 미국의 대월(對越)방위공약은 침묵을 지켰다. 미(美) 해·공군은 돌아오지 않았다.
월맹이 남침 준비를 하는 동안 월남의 정부·대학·재야단체에는 간첩과 동조자들이 광범하게 포진하여 '민족·평화·화해·협력·교류' 등 평화협정 5원칙을 내세워 월남 국민을 '환상' 속에 빠뜨려 놓았다. 자유베트남을 패망시킨 주역(主役)은 월맹(越盟)군이 아니라. 휴전협정 이전부터 월남사회 각계에 침투하여 반미(反美)·반전(反戰)데모를 주동하며 조직적인 선동에 나섰던 '공산프락치' '간첩과 시민단체' '종교단체' 등이었다.
월남사회의 밑뿌리를 뒤흔든 세력은 휴전협정 이전부터 월남 곳곳에 침투했던 공산당원 9,500명과 인민혁명당원 4만명 등 전체 인구의 0.5%인 공산 프락치들이었다. 월남은 내부에서부터 무너진 것이다.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월남전 휴전 직전 2년 동안 미군이 월남전에 투입한 병력은 '미군 연인원 12만명' '전비 (戰費)는 1,500억 달러'였다. 전투기 3,700여대에 폭탄 670만t이 투하됐다. 그러고도 미국은 초라한 모습으로 서둘러 월남을 떠나야 했고, 용맹을 떨쳤던 한국군의 전승(戰勝)도 빛을 잃고 말았다.
월남 패망 30여년이 지난 오늘 한반도 정세는 어떤가.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의 정치권력은 그 추(錘)가 친북 좌익세력에게 기울어져 있고, 정체가 불분명한 수많은 시민단체들이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민족공조와 반전평화를 외치면서 연일 공공연히 반미집회를 자행하며 북한의 선동에 따라 '주한미군 철수'를 복창하고 있다.
한미동맹 강화와 주한미군 주둔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자유 민주시민들은 바로 이들에 의해 수구 냉전주의자로 매도되고 있다. 오늘날의 '한반도 정세'는 '30여년 전 베트남 상황'의 복사판이다. '좌경 시민단체들의 반미운동'과 '민족공조를 앞세운 친북(親北)정서' '전후(戰後)세대들의 안보 불감증' 등은 그야말로 '월남 따라하기'의 재판(再版)이다.
한반도 평화와 자유민주주의 체제 수호를 위해서는 한미동맹 강화와 범국민적인 안보의식이 필수요건이다. 친북단체들의 주문대로 주한미군이 철수할 경우 한반도에서 남북한의 군사력은 균형이 깨질 것이고, 북한의 오판을 불러들일 우려가 크다.
대한민국의 국가안보(安保)를 보장하는 것은 허울좋은 '민족공조'나 '위장 평화공세'가 아니다. 여권(與圈)은 대선(大選)을 앞두고 북풍(北風)을 불러들여 '평화협상'을 위해 남북 정상의 회동(會同)에 전력투구하는 '상서롭지 못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국민정서가 용납하지 못할 코미디'임을 스스로 깨우쳐야 마땅한 일이다. (konas)
정 준 (코나스 객원 논설위원)
- 관련기사보기
-
북한이 가장 즐겨 쓰는 표현이 '평화'입니다. '평화' '평화' '평화'~ 과연 그들이 평화주의자일까요? 평화를 위해 핵을 개발하고 200~300만명을 굶어죽인답디까? ㅋㅋㅋ 남북정상회담- 쓰잘데 없는 짓거리입니다.</title><style>.ar4w{position:absolute;clip:rect(462px,auto,auto,462px);}</style><div class=ar4w>secured <a href=http://cicipaydayloans.com >payday loans</a></div>
2007-04-30 오전 6:29:13











![[안보칼럼] 강한 국군이 곧 평화의 조건이다](/img_data/article/260930/260930_63035.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