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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사람으로 보전하고 싶었어요.."

해외영주권 모범병사 문화탐방 행사
Written by. konas   입력 : 2007-05-02 오후 2: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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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외에서 애국가를 들으면 가슴이 얼마나 뛰었는지 모릅니다. 애국가 구절대로 대한사람으로 길이 보전하고 싶었습니다."(김병훈 병장)
 "외국 생활이 익숙했지만 뿌리 만큼은 잊을 수 없었습니다. 저는 무뚝뚝하며 끈기있는 전형적인 대한민국 남성이었던 것입니다."(김치현 병장)

 해외에서 생활하며 해당국의 영주권까지 취득, 군복무를 하지 않아도 되지만 조국에 대한 봉사를 위해 기꺼이 입대한 해외 영주권보유 병사들이 2일 한 자리에 모였다.

 병무청이 해외 영주권을 보유한 병사들 가운데 각 군의 추천을 거쳐 선발한 모범병사 50명을 초청해 불국사 등 사흘 일정의 `고국 문화탐방' 행사를 마련한 것.

 미국에서 8년간 살다가 2005년 입대, 강원도 모 통신부대에서 복무중인 김치현 병장은 "일본과의 독도 분쟁이나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 뉴스를 접할 때마다 피가 끓어 올랐고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4강의 쾌거를 이룬 대표팀을 보고 감동을 주체할 수 없었다"며 "그 때마다 내가 한국인임을 다시 한 번 확인했고 2005년 여름 주저 없이 내가 가야할 길(입대)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김 병장은 또 "사랑하는 사람들과 우리의 보금자리를 지킬 수만 있다면 2년은 그렇게 아까운 시간만은 아니었다"며 "외국에서 생활하는 많은 남성들이 군 생활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자격지심을 느끼고 있는 모습을 종종 봐온 저로서는 군대는 오히려 가슴을 펴고 떳떳하게 다닐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곳이었다"고 했다.

 어려움도 적지않았다.

 김 병장은 "사회와 너무 다른 군대 분위기와 위계질서는 알 수 없는 두려움과 스트레스를 주었다"며 "무엇보다 힘들었던 것은 동료들의 배타적인 시선으로, '쟤는 외국에 사니깐..'이라는 냉소적인 말을 들을 때마다 정체성에 대한 의심이 들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동료들에게 내 입장을 설명하면서 마음의 벽을 허물겠다는 의지는 갈수록 커갔고 그렇게 2년이라는 시간이 때로는 고생스러웠지만 즐겁게 지나갔다"고 말했다.

 1989년 칠레로 이민간 후 미국에서 대학을 다니다 16년 만인 2005년 고국으로 돌아와 입대한 김병훈(24) 병장은 "2004년 교회 송년회 행사에서 들었던 애국가가 얼마나 제 가슴을 뛰게 했는지 모른다"며 "가장 한국적인 모습은 가장 한국적인 군대를 다녀오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오는 7월 전역을 앞두고 분대장과 내무반장을 맡고 있는 김 병장은 "갇혀 있는 몸이 얼마나 힘든지를 느끼기 시작하면서 짜증도 나고 더디게만 가는 시간을 저주하며 지낸 적도 있었지만 그럴 때마다 미국에서 애국가를 듣고 가슴이 뭉클해졌던 시절을 생각하고 초심을 되찾고자 마음을 다잡았다"고 소개했다.

 미국에서 생활하다 입대한 안경원(28) 병장도 "해외생활을 포함해 두 번이나 낯선 세계에 부딪혀본 저는 이제 승리자로서 높이 비상할 준비를 하고 있다"며 "18개월의 군 생활을 통해 어느 덧 맡은 몫을 성실히 수행하고 있는 제 모습에 스스로 대견한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이들 해외 영주권 모범병사들은 행사기간 경주에서 불국사, 석굴암, 첨성대, 경주박물관 등을 둘러보는 한편, 각종 문화공연을 관람하고 병무청 관계자들과 간담회를 통해 군 복무중 애로사항과 해외교민의 관점에서 본 병무행정 등에 대해 의견을 교환할 예정이다.(서울=연합뉴스)

 konasnet@kona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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