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공단 사태 계기로 남북경협의 원칙과 속도를 재조정해야
개성공단 사태 계기로 남북경협의 원칙과 속도를 재조정해야 북한정권이 노골적으로 개성공단 흔들기에 나섰다. 북한정권은 3월 9일 새벽 조선인민군 총참모부 대변인 성명을 통해 “한미 키 리졸브 군사연습 기간(9~20일)에 보다 엄격한 군사적 통제를 실시하게 될 것이며 북남 군 통신도 차단할 것”이라고 밝힌 후에 전격적으로 통신선을 차단했다. 통신선 차단 조치는 개성공단 운영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고, 개성공단에 체류 중인 기업인들과 노동자들을 사실상 억류했다. 이날 조치로 인해 개성공단으로 들어가려던 726명의 방북이 무산됐고, 80명의 개성공단 관계자들의 발이 묶였다. 또한 원자재의 반입이 중단됨으로써 입주기업들의 정상적 공장가동에도 심각한 난관이 조성되었다. 개성공단 근로자들의 안전과 정상적 가동이 직접적인 영향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북한정권은 10일 오전 경의선 육로통행을 재개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그것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
북한정권의 개성공단 위협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지난해 말부터 개성공단을 매개로 한 대남협박의 수위를 높여왔다. 2008년 10월 2일 한국정부가 시민단체들의 대북전단 살포를 중단시키지 않으면 개성공단 업무에 차질이 빚어질 것이라고 위협했다. 11월 6일에는 국방위원회 정책실장인 김영철 중장 등 군부조사단이 개성공단 현장 검증을 빌미로 압력을 행사했고, 12월 1일에는 군사분계선을 통하는 육상통행에 대한 제한과 차단 조치를 취했다. 12월 17일에는 국방위원회 정책실장인 김영철 중장이 재차 개성공단을 방문해서 “12.1조치는 일시적, 잠정적, 상징적인 조치가 아니다”고 밝혔다.
최근에 진행된 개성공단 사태는 햇볕정책의 한계를 적나라하게 드러내주었다. 김정일 정권은 남북한의 합의를 간단하게 무시해 버렸고, 개성공단을 정치적 ․ 군사적 위협수단으로 활용했다. 지난 10년간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가 햇볕정책의 최고의 치적으로 꼽아왔던 경협의 기반이 사실은 매우 취약한 것이었다. 개성공단마저도 북한정권의 위협 앞에 무방비 상태로 놓여 있었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남북 경협의 현주소가 어디인지, 어떤 취약성을 가지고 있는지가 정확하게 확인되었다는 점이다. 햇볕론자들이 의욕적으로 추진해 온 경협이 한계에 부딪친 것은 두가지 이유 때문이다. 햇볕론자들의 가장 치명적인 실수는 김정일 정권이 신뢰할 수 없는 상대라는 사실을 가볍게 무시한 점이다. 신뢰할 수 없는 상대와의 대화나 약속은 구조적으로 취약 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경협을 시작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안전장치를 마련하는 것이다.
햇볕론자들은 남북한이 경협을 확대하면 북한정권도 점진적으로 개혁개방을 추진하는 방향으로 변화될 수밖에 없을 것이고, 경협이 확대될수록 김정일 정권도 이해관계에 얽매이게 될 것이기 때문에 경협을 쉽게 포기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존중할 수밖에 없게 될 것이라는 다분히 주관적인 희망에 의존해 왔다. 당연히 햇볕론자들은 경협의 안전장치를 마련하는 것보다는 경협의 양을 늘리고 속도를 내는 것에 치중했다. 햇볕론자들은 개성공업지구법 제20조에 “중앙공업지구지도기관과 해당 기관은 공업지구 개발에 지장이 없도록 인원의 출입과 물자의 반출입조건을 보장하여야 한다”고 규정함으로써 나름대로 안전장치를 마련했다고 생각했을 법하다.
그러나 김정일 정권은 햇볕론자들의 기대를 철저히 배반해왔고, 햇볕론자들의 순진한 믿음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북한정권은 개혁개방을 추진하는 대신 핵무기를 개발하고, 미사일을 개발하는 데 제한된 자원을 쏟아 부었다.
햇볕론자들의 또 다른 실수는 북한정권이 경협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체제위협을 느끼게 될 경우에 이를 되돌리려 할 것이라는 사실을 간과한 점이다. 개성공단 사업은 북한정권의 지갑을 두텁게 만들어 주었다. 그러나 북한정권이 개성공단이 체제와 정권의 위협요인을 증가시킨다는 사실을 감지하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손익계산이 완전히 달라졌다. 북한정권은 체제와 정권위협 요소가 유입되는 개성공단 사업을 적절히 통제할 필요를 느끼게 되었다.
그동안 북한정권은 경제위기를 해소하는 것보다 체제와 정권의 위기 해소를 우선시해왔다. 체제와 정권위기를 유발할 경우에 개성공단도 예외가 될 수는 없다. 1990년대 사회주의체제가 붕괴했을 때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개혁개방을 추진하는 대신 체제와 정권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우리식사회주의를 고수했고, 1995년~1997년 사이에 기근과 경제의 파탄으로 인한 고난의 행군을 겪으면서도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개혁개방의 길로 가지 않고 체제와 정권유지를 목표로 선군정치를 선택했다. 또한 한국정부를 활용해서 국가를 현대화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경협으로 인한 체제 위협요인을 최소화하면서 현금 챙기기에만 바빴다.
북한정권의 입장에서 개성공단 사업은 체제와 정권위협 요인이 확대되면 언제든지 적절하게 통제해야할 사업이었고, 통제해야할 사업으로 인식되는 순간 상당히 유용한 대남위협 카드에 불과할 뿐이었다. 북한정권이 경제위기 해소에 사활적 이해관계를 갖는다면, 지금과 같은 개성공단 흔들기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남북경협 사업에 대한 전면적 재검토에 착수해야 한다. 기왕에 진행된 개성공단과 금강산 사업은 조속히 정상화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하고, 더 이상 북한정권의 횡포에 휘둘리지 않도록 안전장치를 마련하는데 주력해야 한다.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이 앞으로도 정치적, 군사적 위협수단으로 활용된다면, 사업 자체가 무의미할 수도 있다.
또한 김정일 정권이 일방적으로 사업을 중단시킬 위험이 존재하는 조건에서는 더디더라도 경협을 신중하게 추진해야 한다. 북한의 변화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에서는 해야 될 사업과 하지 말아야 될 사업을 명확히 구분해야 한다. 경협이 북한의 변화와 준비정도를 뛰어넘는 성과를 내기는 어렵다. 무조건 경협이 확대되면 좋다는 햇볕정책의 단순 사고로는 경협의 안정성도 보장할 수 없고, 남북관계의 질적 발전도 이루어낼 수 없다.
경협이 북한정권의 객관적 준비정도에 기초하지 않고, 한국정부의 정치적 목적과 이해관계에 따라 좌우되는 것은 더더욱 위험하다. 북한정권이 개혁개방을 추진하지 않는 상황에서 경협의 확대는 더 큰 위협수단의 증가를 의미할 뿐이다. 북한정권에게는 어떠한 종류의 합의나 약속의 이행도 보장받을 수 없다. 이번 기회에 경협추진 원칙을 재정립하고, 북한정권의 경제정책 변화 속도에 경협의 추진속도를 연계시켜야 한다. 북한정권과 추진하는 경협은 절대로 조급증을 낼 일이 아니다.
가장 좋은 것은 북한정권이 정경분리 원칙을 선언하고, 이를 지킬 수 있도록 강제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모든 경협에서 중국자본을 비롯한 외국자본과의 합작투자를 추진함으로써 위험을 분산시킬 수 있는 방안이 있을지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북한정권의 일방적 횡포와 위협을 통제할 수 있는 수단이나 햇볕정책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안전장치가 마련되지 않는다면, 제2, 제3의 개성공단 사업의 추진은 불가능하다.(konas)
오경섭(세종연구소 연구위원/http://www.sejong.or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