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4월 제12기 최고인민회의 1차 회의에서 통과됐으며, 최근 그 윤곽이 공개된 제9차 개정헌법(북한은 1948년 헌법 제정 이후 9차례의 ‘개정’을 해 왔다)에서 북한은 북한체제의 지도원리에서 ‘공산주의’란 단어를 공식적으로 삭제하고 ‘사회주의’란 표현만을 남겨 놓았다. 1998년 개정헌법에서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를 중요 지도원리로 명기한 데 비해 이번의 개정헌법은 ‘사회주의’만을 강조하고 있다.

이는 기존 공산주의 이론에 비춰볼 때 그리 이례적인 것은 아니다. 대체적으로 이론상 공산주의(communism)의 최종적 목표는 사적 소유가 완전히 배제되고 자본가들에 의한 착취의 수단인 국가가 존재하지 않는 사회의 건설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이러한 이상적 사회를 건설하는 일은 매우 장기적 과제이며, 궁극적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과도기의 일종의 필요악으로 정부나 국가가 존재하는 것 자체를 부인할 수는 없다는 것이 대체적인 공산주의 이론의 해석들이다.

다만, 이와 같은 과정에서 자본가 계급의 착취를 위한 전통적 도구인 기존 정치세력의 권위를 인정할 수 없으므로, 사회 전체를 이끌어가는 ‘전위당’(vanguard)인 공산당 혹은 사회당이 국가권력의 중심에 서야 한다는 것이 공산주의 정치이론의 핵심 중 하나다. 이미 해체된 구(舊)소련이나 동구권 국가들이 국호에 ‘공산주의’ 대신 ‘사회주의’(socialism)란 명칭을 즐겨 이용했던 것도 바로 이 이유 때문이다. 공산주의자의 입장에서 공산주의가 이론적 이상향이라면 사회주의는 현실적으로 달성 가능한 차선의 목표인 것이다.

그러나 1980년대 후반 이후 계급 간 갈등과 투쟁을 역사의 필연적 방향으로 규정한 공산주의뿐만 아니라 사회주의 역시 현실적으로 실현이 어려울 뿐만 아니라 많은 모순구조를 내재하고 있다는 인식이 사회주의권에 확산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과거의 사회주의권 국가들이 보인 행보는 각기 다르게 나타났다. 동구권이나 구소련의 경우 이러한 인식변화는 시장경제 및 민주주의의 수용으로 나타났다.

중국과 베트남 같이 공산당 독재가 유지되는 국가들도 경제적 개혁·개방에 중심을 두면서도 권력에 대한 결정적 비판이나 도전이 아니라면 일정 수준 다원적 가치를 수용하는 탄력적 태도를 보여 왔으며, 아마 이러한 추세는 앞으로 더욱 확대될 것이다.

반면 북한이 택한 행보는 이와는 정 반대의 것이었다. 1948년의 정권 창건 이후 20여 년에 걸친 김일성의 권력투쟁과 그 아들로 이어지는 후계구도, 그리고 ‘수령론’에 입각해 전위당인 조선로동당(공산당) 자체를 통치자의 하부 수단으로 전락시킨 북한의 독특한 1인 지배는 기존 공산주의의 ‘민주적 권력집중’ 이론으로도 설명이 어려운 것이었다.

최근에 들어서는 1인 지배적 전통에 더해 3대 세습 시도가 결합됨으로써 북한이 21세기의 절대왕정으로 변모할 가능성도 보이며, 이는 이번 헌법 개정으로 재확인됐다. 북한 지도층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조치가 최소한 단기적 측면에서 득이 되리라는 판단을 하고 있으리라.

그러나 국제 및 국가질서의 전반적 대변환을 특징으로 하는 21세기에 과거로 퇴행하는 도박이 과연 성공을 거둘 수 있을지는 극히 불투명한 것이 현실이다.(http://kookbang.dema.mil.kr/)

차두현(국방연구원 북한군사연구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