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대북 군사개입 가능성 대비해야
“중국은 6.25에서 북한을 살려주었고 ’61년에는 북·중동맹을 맺어 한·미동맹에 대응해 주고, 싫어하는 부자세습까지 인정해 주었다. 그만큼 북한은 중국에게 빚을 지고 있다. 때문에 북한에 문제 발생시 중국은 반드시 지분을 주장하며 개입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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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님들과 예비역 고급장교 출신, 그리고 자유대한민국을 중심으로 평화통일을 이룩해야 한다고 믿는 기독교 단체인 대한지키기국민운동본부(이하 자국본)는 19일 기독교연합회관에서 서상문 중앙대 교수를 초빙해 6.25를 되돌아 보는 시간을 가졌다.
서 교수는 6.25의 발발 원인을 김일성의 군사 지상주의와 남침 도발, 중·소의 대북 군사지원과 남북한 비대칭 군사력, 스탈린의 남침 승인과 모택동의 동의 등 3가지로 분석했다.
먼저 서 교수는 김일성의 군사지상주의를 “김일성은 만주에서 빨치산 활동을 하느라 정규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기 때문에 주변정세를 상식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이성과 분별력이 부족하고, 대신 힘과 무력, 우격다짐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마인드를 가지고 있었다”고 분석했다.
그렇다고 김일성이 군에서 큰 두각을 나타낸 것은 아니라며 “구소련군 88여단에서 지대장(현재의 대대장급) 정도로 근무했기 때문에 그 이상의 전투를 지휘해 본 적도 없고, 심지어 (6.25 전쟁시) 북한군 총참모부 내에서도 사단급 부대를 지휘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고 설명했다.
때문에 “당시의 김일성은 혈기만 왕성한 38세의 젊은이로 통일에 대한 의지만 있었을 뿐, 민족 차원에서의 구체적인 계획이 없었고, 전쟁이 남길 상처를 생각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고 김일성의 통일관이나 민족주의에 대한 의구심을 나타냈으나, “바꿀 수 없는 사실은 김일성의 전쟁에 대한 의지”라며 6.25전쟁 발발의 첫째 원인으로 꼽았다.
그러나 “(전쟁) 의지는 있지만 수단과 능력이 없는 김일성의 빈 손을 채워 준 것이 스탈린과 모택동이었다”며 6.25 전쟁에 있어서 구소련과 중국의 역할이 막중했음을 강조했다.
즉, 김일성은 한반도 무력 적화통일 의지를 가지고 ’46년부터 전쟁을 준비해 왔고, 구소련의 무기와 장비, 중국의 병력지원이 있었기에 한국전쟁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서 교수는 “전쟁 발생 이전에 중국이 북한에 지원한 병력은 중국군이 아닌 중국군에 몸담고 있던 한국인 군인으로, 54,000명에 달하는 실전 경험이 풍부한 정예군인인 이들은 조직과 장비, 무기를 그대로 가지고 북한군에 투입되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서 교수는 “이들 중에는 분명히 남한 출신도 있었을 것이며, 북한군으로 투입되기를 원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라며 “이들을 북한 인민군으로 보낸 것은 강제적이었다”고 의문점을 제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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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서 교수는 “최근 러시아측 자료에서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 작전 이후 중국군의 한반도 투입을 김일성이 망설였다는 내용을 발견했다”며, 이는 “연안파가 북한을 장악하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군의 전쟁 참여로 북한이 이기면 이후 김정일이 연안파에 권력을 뺏길까 봐 망설인 것 같다”고 해석했다.
또 “김일성은 중국군이 한반도에 들어오면 물러나지 않을 것으로 판단했다”고 말했는데, 실제로 역사적으로 땅에 대한 욕심이 많았던 중국은 1958년까지 북한에 남아 있었다.
또한 서 교수는 “김일성은 미군의 투입을 확신하고 있었지만 스탈린과 모택동에게는 미군이 투입하지 않을 것이라고 거짓말을 했다”며, 이는 “속전속결로 북한이 이기지 못할 경우를 대비한 보험으로 스탈린과 모택동의 지원이 필요했던 것”으로 분석했다.
서 교수는 전쟁의 교훈으로 “적정보 파악”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승만 대통령은 북진통일을 외쳤지만 북한의 동향이나 북방에서의 공산당 움직임을 전혀 몰랐다”며 적의 의도를 파악하고 대응방향까지 종합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정보력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교훈으로는 유비무환(有備無患)으로 “소망통일의 위험성(군비없는 북진통일 구호는 공허하다)을 경고하고, 이를 오늘날의 현실에 비추어 미군주둔이 중요하지만 미국은 자국의 필요에 따라 언제든 축소하거나 철수할 가능성이 있으므로 미군에만 기대서는 안되며, 우리 스스로 강해져야 미국이나 중국으로부터 인정받는다”고 자주적 방위능력을 강조했다.
덧붙여 “6.25가 발발하자 남에서 북으로 가는 피난민은 없었던 반면, 북에서 남으로 피난민이 물밀듯 내려온 것은 자유민주주의 우월성을 증명하는 것”이라며 북한 피난민 대책의 부재에 대해서 아쉬움을 나타냈다. 이는 현재에도 북한 급변사태에 대비한 중요 요소가 될 듯 하다.(konas)
코나스 최경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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