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각산의 분노
“그 날이 오면 그 날이 오면 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 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 날이 ...중략 그 날이 와서 오오 그 날이 와서 ....우렁찬 그 소리 한번이라도 듣기만 하면 그 자리에 꺼꾸러져도 눈을 감겠소이다.”
상록수의 애국시인 심훈은 일제 하에서도 국권을 잃고 압박 당하는 우리 민족의 염원을 애절하게 노래하였다.
“그 날” 듣기만 하여도 가슴 설레는 날이다. 그 날(1945.8.15)은 미국을 비롯한 연합국의 도움으로 왔지만, 일본군의 무장 해제를 위한 미소양국의 한반도 분할 점령은 65년이 지난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다. 38선이 휴전선으로 바뀌고, 개성과 옹진반도를 내어주고 철원평야와 고성 설악산을 교환 한 것 같은 이상한 한국으로 57년간 교착 상태에 빠졌다.
“그 날” 이제 우리는 심훈이 기다렸던 것과 다른 뜻의 “그 날", 통일의 그 날을 기다리게 되었다.
그 날은 우리 대한민국국민 뿐만 아니라 북녘 땅에서 독재자에게 억압받고 고통 속에 살아가는 북녘동포들과 함께 하는 그 날 이어야한다. 2천 년 전 앗수루와 바빌론에 의해 멸망당한 이스라엘민족의 지도자요 예언자인 이사야는 구약성경 이사야에서 "그 날"을 수없이 되풀이하면서 "그 날"을 예언하였다.
유대 민족의 그 날은 바빌론의 압정에서 해방되는 "그 날" 정치적 그 날을 뛰어넘어 잘난 체 만 하는 자, 교만하여 대중을 속이는 자 (대중영합주의자)민중을 선동만 하는 자 등, 죄악으로 가득 찬 세상이 하나님 앞에 굴복하는 그 날을, 하나님이 승리하는 그 날을 예언하였다. 우리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며 삼각산을 바라보게 되는가?
지금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이 삼각산 남녘 자락에 세계적인 도시로 발전하여 자리 잡고 있다.
사람들이 오다가다 모여서 생성된 도시가 아니다. 이제 그 역사가 수도로서의 역할을 한지 616년이 되었다. 쇠락한 고려 왕조를 무너뜨리고 등극한 태조대왕 이성계는 구세력과 토호들이 가득한 개경에 더 머무를 필요가 없었다. 새 도읍지로서 계룡산 신도안을 고려하였으나 국토의 구석에 있어 적지가 아니다.
개경 송악산에서 바라보이는 남경 삼각산의 웅장한 모습은 송악산에 비할 바가 아니다. 태조 이성계는 1392년 7월 등극하자 즉시 천도를 위한 조사단을 이끌고 남쪽으로 내려왔다.
그 조사단에는 무학대사와 조선조개국 1등 공신 삼봉 정도전이 총지휘하였을 것이다. 삼각산의 서쪽 끝자락 구파발 까지는 하루 길이면 족하였을 것이다. 태조 이성계가 삼각산의 주봉 정상인 백운봉에 올라 지은 시 등 백운봉 을 보면 백운봉에 올랐던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태조 이성계는 조선조의 천년대계를 위한 조사코스로 백운봉까지 곧바로 올라가지 않고 비봉에서부터 문수봉, 보현봉, 백운봉에 이르는 봉우리마다에서 한성 도읍터와 멀리 한강을 바라보면서 구석구석 샅샅이 살폈을 것이다. 광나루너머에 도읍했던 한성 백제는 어찌하여 고구려에 패퇴하여 웅진(공주)으로 쫓겨갔을까? 우리나라 지형의 특성상 북으로부터의 적, 남으로부터의 적을 물리칠 수 있는 지형인지? 무장인 자신의 식견과 당대 제일의 정략가인 삼봉 정도전의 자문을 받고 새 도읍지로 한성을 확정하였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중원인 이곳에서 고구려 신라백제의 세력이 부딪혀 싸운 전략적 요충지를 둘러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였을 것이다.
신라 진흥왕의 순수비가 있는 비봉에 올라가 비문을 읽어보며 진흥왕보다 더 웅대한 포부를 품었으리라. 구파발에서 백운봉 까지는 당일에 다녀올 예정이지만 아래쪽에 위치한 진흥왕 순수비가 있는 비봉도 가봐야 하고 이곳저곳에서 도읍 예정지 한성을 살피자면 대남문 쯤에서 야영을 하며 다음날에도 구상하며 설계하였을 것이다. 경복궁터와 육조 거리 터를 가장 바르게 볼 수 있는 곳은 바로 보현봉이다. 보현봉에서 내려다보면 경복궁 광화문 육조거리가 한 눈에 들어온다.
조선조에 들어와서 이 태조는 썼지만 무학대사의 가르침과 이 태조 자신이 있어 문수봉과 보현보이 옹위하는 형국인 경복궁과 육조거리의 위치에 매우 만족하였으리라. 불타의 우측에서 덕을 맡아본다는 보현보살의 보현봉. 불타의 좌측에서 지혜를 맡아본다는 문수보살의 문수봉 풍수지리에 문외한인 사람도 감탄하는 도시배열이 아니겠는가?
태조 이성계는 무릎을 치며 부처님의 가호와 천년사직을 기원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태조 이성계는 백운봉에 오르며 경복궁터와 육조거리뿐 아니라 한성주변의 멀리까지 바라보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으리라.
굽이쳐 흐르는 한강을 바라보면서 풍요의 상징인 한강수의 은혜로움에 감사하며 전략적 수리의 이점에 대하여서도 매우 만족해하였을 것이다. 이렇게 감격한 기분으로 백운봉에 오르며 시 한 수를 읊었다.
"손안에 댕댕이 넝쿨 휘여 잡고 푸른봉에 오르니 한 암자가 흰 구름 속에 높이 누워있네" 이렇게 아름다운 경관을 노래한 뒤 에 그의 웅대한 포부를 이렇게 노래하였다. "만약에 눈에 들어오는 세상을 내 땅으로 만든다면 초나라 월나라 강남인들 어찌 받아드리지 않으리."
태조 이성계는 삼각산에 올라 조선왕조의 천년대계를 구상하고 왕조의 번영과 평화를 염원하였을 것이다. 후일 부끄러운 고난을 당한 것은 삼각산 탓이 아니다. 삼각산의 위치나 지형이 잘못 되어서가 아니다. 위정자들과 전략가들이 훌륭한 지형지세를 잘 활용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일찍이 도선비기를 지은 신라시대의 고승 도선국사도 "눈을 들어 삼각산 모양 살피니 향 선경일세, ....중략 삼각산의 지해 세우니 아홉해 후에는 가하네"라고 예언하였다. 아마도 태조이성계는 도선 국사의 명당기를 머릿속에 그리며 자신 있게 읊었을 것이다. 만약 신라가 경주에서 수도를 이곳으로 천도하였더라면 그때부터 천년은 더 신라왕조가 번창하였을 것이다.
광나루 아차산 고구려의 보루성에서 한성 백제의 한강 남쪽 벌판 옛 도읍지를 바라보면 전략에 문외한인 사람도 그 취약점을 알 수 있다. 부여 벌판에 도착한 백제를 생각해본다. 연합군이 쳐들어 왔을 때 전투다운 전투 한번 해보지 못하고 문화 강국 백제가 멸망하지 않았는가. 황산벌 전투는 나라를 지키기 위한 전투가 아니다. 멸망하는 백제와 함께 죽기 위한 전투였다.
그런데 요즈음 우리나라 수도를 반쪽 내어서 금강평원에 옮겨야 한다고 소리 높여 떠드는 사람들이 있다. 수도의 분할이 아니고 국토 균형발전만을 강조한다. 천 여 년 전 도선 국사가 들으면 "저런 얼간이들이 있나. 풍수지리로 설명하지 않더라도 육군 중대장 만한 식견도 없는 쌍것들이구나"하며 호통 칠 것이다.
"복부인들이 온 나라를 부동산투기로 몰아넣더니 이제는 정치인들이 정치 놀음으로 더 큰 투기를 하는 구나" 국가안보와 경제가 제일인시대에 행정 비효율이 뻔한 데도 자기 정당이나 개인의 이해에만 몰두한다. 내가 학보병으로 전방 근무할 때 이야기다. 우리부대는 최전방 주항선 옛날 철원에서 금강산 가는 전철길 이 보이는 평지에 위치하고 있었다.
앞 전방에는 높은 산, 오성산 (1062m)이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어 그 위압감에 눌리게 된다. 중대장 이 대위는 늘 이렇게 말하였다. 만약 전쟁이 나면 너희들을 인솔하여 뒷산 중턱으로 후퇴하겠다. 이곳에서 명령대로 항전하다간 아군 포에 죽고 말 것이다. 21세기 국제화시대에 국가 경쟁력이 최우선인 시대에 수도를 반 토막내어 어쩌겠다는 것인가?
무슨 도시다, 무슨 도시다. 균형발전이라는 미명 아래 돌 떡 돌리듯 선심 정치하며 수 십억 원 수 백조원의 국민 혈세가 낭비될 뿐만 아니라 국가경쟁력과 성장 동력이 떨어질 것은 뻔한 데도 벌이고 있다. 행정수도 이전 문제는 되던 안되던 역사의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대통령선거전에서 즉흥적으로 한 번 던져 득표에서 재미 좀 본 찌꺼기는 국민모두에게 그 후손들에게 뒤집어 씌워 큰 부담으로 짓누를 것인데도 이성을 잃고 막 싸움에 빠져있다.
말로만 통일 통일하면서 대한민국 통일을 바라보는 눈이 없다. 독일통일의 예에서 보다시피 통일은 예기치 못하게 갑자기 올 것이다. 우리에게는 통일을 대비한 아무런 준비가 없다. 역사 인식이 없기 때문이다. 5천년역사를 반토막 내는 역사학자들, 당리당략에만 몰두하는 정치인들, 개인 한사람의 이익이 소속 정당이나 국가이익보다 우선시하는 이기주의자들, 전에는 극렬히 반대하던 사람이 이제는 찬성하는 모습, 참으로 가관이다. 정치인들이야 표 계산에 의한 치밀한 작전과 투쟁이겠지만 국민들은 피곤하다. 재산 명예 신체상의 피해만이 피해가 아니다. 현대 사회에서는 정신적 피해가 더 클 수 있다.
세금을 더 많이 내야하는 고통보다도 정신적 고통이 더 큰 것 같다. 우리보다 잘 살던 나라들이 우리보다 훨씬 못살 뿐만 아니라 최빈국으로 전락한 국가가 여럿 있음을 현재 우리는 보고 있다. 국가의 유능한 인재는 의과대학 법과대학으로 가고, 취업자는 대기업으로만 몰린다. 인구는 감소하여 초등학교 교실은 점점 비어 폐교하는 곳이 많고 노령인구는 증가하는데 국가채무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역사적으로 보면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는 난세에 먹힌다고 하는데 우리나라가 현재 난세란 말인가?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는 통일만이 아니다. 통일이란 영토 확장이나 막연한 통일의 외침이 아니다. 고통 받고 억압당하며 살고 있는 북녘 동포들과 함께 평화스럽고 풍요하게 살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리고 우리 국내 문제뿐 아니고 두 가지의 큰 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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