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관계 과거 100년, 미래 100년
1910년 일본이 한국을 강제로 병합한지 100년이 되는 해를 맞아 동북아역사재단(이사장, 정재정)은 27일 서울 롯데호텔 에메랄드홀에서 한일 양국의 정계, 학계, 언론계 등 여론지도자들이 참가한 가운데 한일관계 과거 100년을 성찰하고 미래 100년의 전망을 논의하기 위한 ‘한일관계의 과거와 미래 100년의 성찰과 전망’이란 주제로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국민대 한상일 명예교수는 ‘한일관계 과거 100년의 회고’란 발제에서 아픔의 기억(1910-1945), 단절의 세월(1945-1965), 협력과 갈등(1965- ), 남은 문제들 등 4부분으로 나누어 한·일간의 역사를 조명했다.
한 교수는 “일본의 조선병탄으로부터 100년, 해방 또는 패전으로부터 65년, 한일국교 정상화로부터 45년을 맞이하고 있는 2010년은 한일관계에 있어서 하나의 매듭을 이루는 시간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며, “선린과 공동번영을 지향하는 미래 100년을 설계하기 위해서는 지난 100년의 역사적 교훈을 소중히 되새겨야 할 것”이라고 발제의 의의를 밝혔다.
특히 한 교수는 조선에 대한 일본의 식민정책은 “인도 아프리카 동남아시아의 식민통치에서 볼 수 있는 것보다 훨씬 가혹한 것이었다”고 말한 그레고리 핸더슨의 표현을 인용해, “물리적 억압을 넘어 언어와 역사의 소멸은 물론 민족말살 그 자체를 시도했다”고 한국인의 뿌리깊은 반일감정의 배경을 설명하고, 식민 치하에서 보낸 한민족의 36년을 “저항과 투쟁의 역사”로 규정했다.
|
또 한 교수는 한·일간에 남은 문제들로 먼저 북한과 일본과의 ‘과거청산’ 문제를 들었는데, “한·일간의 민족화해와 동아시아의 협조체제를 만들어 가기 위해서는 북한과 일본과의 관계 정상화가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한 교수는 북·일간의 관계정상화에서 명심해야 할 것으로 “1965년 한·일국교정상화의 우를 범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과거사 문제를 돈으로 해결하려 한다면 국교를 정상화 했음에도 불구하고 북한과 일본의 국민감정이 악화되는 악순환을 계속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 그 이유다.
뿐만 아니라 한 교수는 동아시아 공동체를 구성하기 위한 첫 걸음이 한·일 두 나라의 민족화해라고 강조하면서 한국과 중국, 일본이 상호 신뢰감을 형성하지 못하는 본질적인 원인을 “과거에 대한 역사인식과 과거청산”문제라며, EU를 가능케 한 가장 중요한 자산으로 독일의 과거 역사에 대한 인식과 반성을 들었다.
따라서 동아시아 공동체를 이루기 위해서는 지난 날 아픔의 역사를 정리해야만 하는데, 그 방안으로 “과거에 대한 사죄와 용서를 담은 서로 납득할 수 있는 합의문을 세 나라가 공통으로 채택해 이를 각국의 국민을 대변하는 의회에서 통과”시키는 안을 제시했다.
이를 위해 한 교수는 일본의 결단과 용기, 한국과 중국은 민주화와 산업화를 이루어 낸 자긍심으로 일본에 대해 너그러워 질 수 있기를 촉구했다.
이어 도쿄 경제대학의 무라카미 가쓰히코 이사장은 ‘한·일관계의 과거 100년을 회고하다’란 발제에서 “한국의 자주적 개혁을 가로막았던 것이 ‘한국병합’이었다”면서, “식민지 지배기 동안 일본으로의 쌀 반출, 군수공업 기지화 등은 독립후 (한국의) 경제면에서 큰 단절이 있었지만 식민지 시기에 한국이 발전을 이룩했다는 것을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후 1965년 한·일 국교정상화, 80년대 말 냉전 종식 이후 동아시아 속에서의 한·일관계 와 산업발전에 있어서의 분업·협력관계, 2008년 일·한·중 정상회담 개최 이후 ‘동아시아공동체 구상’에 있어서 일·한·중 협력형으로의 발전 등을 회고하며 미래 한일관계 발전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토론자로 참석한 박영선 자유선진당 국회의원은 과거 100년을 딛고 새로운 미래 100년을 설계하기 위해 한·일 두 나라가 해결해야 할 최소한의 의제로 “한일강제병합의 무효성, 독도문제, 강제동원과 민간인 학살문제, 일본군 위안부 문제”등을 거론했다.
박 의원은 “민간 차원에서의 한·일 양국의 역사에 관한 대화는 계속해서 시도되고 확대되어 왔지만, 정부차원의 역사 갈등은 오히려 더 극심해지는 양상을 보여 왔다”며, “야스쿠니 신사 참배와 독도에 대한 일본 정부의 태도”를 대표적인 예로 들었다.
또 독도문제에 관해서도 “식민지 이전에는 한·일 양국 간에 독도문제가 제기되지 않았다”며 독도문제도 식민지에 대한 결과물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일본 대장성이 1946년 8월15일 발표한 고시 654호를 통해 ‘독도는 일본 땅이 아니다’라고 만천하에 공개했음에도 불구하고 한·일 국교정상화가 있던 1965년부터 독도문제를 공식적으로 언급하기 시작했다”면서, “일본이 세계지도에서 동해를 일본해로 바꾸기 시작한 때와 독도 영유권 주장 시기가 일치하며, 이는 독도영유권 주장이 치밀한 계산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일본에 대한 강한 불신감을 드러냈다.
‘강제동원과 민간학살’에 대해서도 지원병, 징병제와 같은 병력동원 외에 징용문제의 미해결 부분에 대해 언급하고, 일본 정부의 강제동원에 대한 배상 및 원상회복의 법적 책임 부인에 대해 질타했다.
박 의원은 이외에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원자폭탄 피해 한인문제, 1923년 일본 도쿄 주변의 간토지방에서 발생한 대지진 이후 자행됐던 대규모 조선인 학살사건, 약탈해 간 문화재 반환문제, 재일한국인 지방참정권 문제, 어린이 근로정신대 등을 거론하며 한·일 두 나라 사이에 정리되어야 할 문제들을 열거하고 일본의 공식적인 인정과 책임있는 자세를 촉구했다.
|
한편 정재정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은 기조연설에서 “한국병탄 100년을 맞는 올해에 일본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병합조약’의 강제성과 부당성을 인정하는 것”이라며, “일본 정부가 적극적인 자세를 취한다면 한국과 일본은 역사화해와 상생공영의 도정에 또 한 번 큰 발걸음을 내딛게 될 것”이라고 일본 정부의 적극적인 역사인식 표명을 강조했다.
와타나베 고조 한일의원연맹회장도 환영사에서 “일본에 있어 한국은 3위의 무역상대국, 한국에 있어 일본은 2위의 무역상대국으로 경제관계에 있어 활발한 교류와 왕래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경제관계 뿐만 아니라 동아시아와 세계에서도 매우 중요한 관계”라며 양국이 “과거를 제대로 돌아보면서 미래지향적인 협력관계를 위해 기탄없는 토론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한일의원연맹, 일한의원연맹, 중앙일보, 일본마쓰시타(松下)정경숙 공동 후원으로 진행된 이날 심포지엄에는 한·일 양국의 정계, 학계, 언론계의 많은 인원이 참석했는데 일본측에서는 일본 집권 민주당의 와타나베 고조(渡部桓三· 일한의원연맹 회장)·사사키 류조(笹木龍三)·이치무라 고이치로(市村浩一郞)·혼다 히라나오(本多平直)·미다니 미츠오(三谷光男), 자민당의 오노데라 이쓰노리(小野寺五典) 의원이 참석했다.
학계와 언론계에선 후루야마 가즈히로(古山和宏) 마쓰시타 정경숙 숙두(塾頭), 오코노기 마사오(小此木政夫) 게이오대 교수, 와카미야 요시부미(若宮啓文)아사히 신문 칼럼니스트 등이 참가했다.
반면 한국측에서는 한나라당 이상득 한일의원연맹 회장·황우여·원희룡·전여옥·박상은 의원, 민주당의 김영진·이낙연 의원, 자유선진당의 박선영 의원, 학계와 언론계에서는 공로명 세종재단 이사장(전 외교통<











![[안보칼럼] 강한 국군이 곧 평화의 조건이다](/img_data/article/260930/260930_63035.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