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폐개혁 1년, 北 주민실상 들여다보니...
"화폐 교환 이후 잘사는 사람과 못사는 사람이 바로 차이가 나는데, 못사는 사람은 돈이 없습니다. 입에 풀칠할 돈도 없습니다. 지금 삶 자체가 바쁜 시기입니다.
(한참 지난 다음) 화폐교환을 왜 자주 시행하는지 알아야 합니다.(* 참고 : 북한은 지난 1947년 1차 화폐개혁 이후 작년 11월30일 까지 5차례 화폐개혁을 단행했다. 1차에서 4차까지는 기존화폐를 1:1로 교환) 국가가 자금이 없으니 화폐교환을 자꾸 하는 겁니다. 왜냐하면 잘사는 사람들이 은행에 저축을 하지 않거든요. 이제 (북한)은행은 간판만 은행이지 일하는 직원도 안 나옵니다. 그러니깐 은행이 텅텅 비어 있어요. 은행에 돈을 맡겨야 돈이 돌고 도는데, 돈은 개인들이 다 갖고 있으니 결국 나라에 돈이 없는 겁니다. 그래서 돈을 따내자하니 화폐교환을 실시하는 거죠. 화폐교환 한번 할 때 100만원 이상합니다. 몇 십억 갖고 있는 사람들은 은행에 다 줍니다."
"북한체제에 어떻게 생각하세요? - 우리 제도요? 희망 같은 건 없어요. 뭐 뻔하잖아요. 이렇게 고생하고 사는게 몇 년째입니까? 국가에서 된장, 간장부터 해서 다 공급해 주었는데 점차 중단되고 후에는 배급도 끊었습니다. 1995년, 96년, 97년까지 사람들이 숱하게 죽어 나갔습니다. 대부분 늙은이들과 아이들이 대부분 죽어나갔는데, 특히 늙은이들은 면역력이 없어 막 죽었습니다. 아이들은 배를 채우지 못해서 죽었고요. 그렇게 사람들이 막 죽어나가니, 사람들은 살자고 나무껍질을 깎아먹고, 그러니 나무도 없어지고요, 나무 송진 한번 벗겨봤어요?
다른 사람은 어떤지 몰라도, 사람들 다 알고 있지만 무서워서 이런 말을 못합니다. 정치가 어떻고 저떻고 말 잘못하면 가족이 멸절되니까요. 그런 사람이 한둘이 아니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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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북한이 처한 실상을 그대로 일깨우는 말이라 할 수 있겠다. 북한 주민들의 생생한 육성 녹음 파일이 프레스센터 기자회견장에 울려 퍼졌다. 먹고살기가 궁핍해 죽음을 무릅쓰고 도강(渡江)해 중국에서 장사를 하거나 돈벌이를 하다 인터뷰에 응한 북한 주민의 인터뷰내용이 기자들에게 공개됐다.
북한민주화운동본부와 북한정치범수용소해체본부는 1일 오전 서울 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 지난해 11월30일 북한이 전격 단행해 오는 30일로 1년이 되는 '북한화폐개혁 이후 1년'을 주제로 북한주민들이 보는 현재의 북한실상을 녹음 파일과 함께 자료집을 제시했다.
이 날 발표된 인터뷰 내용은 정치적 목적이나 기타 사유에 의해 북한을 탈출한 탈북자 신분이 아닌 북한에 거주하는 주민으로 중국에서 일을 보고 다시 북한으로 되돌아가는 주민이란 점에서 기존의 탈북자와는 차이가 있다.
이 날 인터뷰 내용을 공개한 북한민주화운동본부 김태진 대표는 "지난 5월과 9월 두 차례에 걸쳐 중국에서 주민 10명을 대상으로 북한 상황에 대해 심층 인터뷰를 실시했다"고 밝히고, 인터뷰를 한 배경에 대해 "화폐개혁 이후 북한 주민들의 상황을 알아보기 위한 목적도 있었고, 북한의 3대 세습을 앞두고 이루어진 화폐개혁이기 때문에 북한 내 정치적 측면에서의 세습동향도 알아보기 위한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김 대표는 또 "어차피 앞으로 우리가 통일로 나아가야 할 상황인데, 이를 알림으로써 어떻게 (통일을)준비해야 할 것인가 하는 바른 정보도 알 수 있게 하기 위해 자리를 마련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한편 주최측은 이번 인터뷰에 응한 10명 중 여성 한 명은 북한 탁아소에서 일하고 있고, 남편은 행정 사무 일을 보고 있어 다른 사람에 비해 생활정도가 높은 편이었다고 말하고, 그러나 전체적인 내용에 있어서는 별반 차이가 없었다고 말했다.
다음은 이들의 인터뷰 내용 중 경제적 측면과 3대 세습 이후 체제에 대한 생각 등 주요 내용들만을 발췌해서 싣는다.(인터뷰 내용은 한 사람이 한 말을 옮긴 것이 아니라 10명이 한 말 중에서 별도의 기명표시 없이 정리한 내용임)
▲ 화폐개혁으로 생활은 어떤지?
- 그 당시에는 화폐가 우리 조선에서 5만원, 6만원 이상 거래 되었었죠. 그런데 화폐교환하면서 물가도 같이 올라갔습니다. 예전에 100원이 5천원이나 2만원이 되어도 물가도 똑같이 올라가니 다를 게 없는 거죠. 결국 조선 실정을 보게 되면 돈 있는 놈은 더 잘살게 되고 없는 놈은 더 못살게 됩니다. 중국하고 합영기업한 이후에는 돈 100원으로 한 가족이 살수가 없어요. 옛날에는 다 그렇게 줘도 가족들이 먹고 살 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배급제였으니, 가족 중 한사람만 벌어도 가족 모두가 먹고 살 수 있었단 말입니다. 그러나 중국과 합영기업 하면서 이제는 나 혼자 벌어서 나 혼자 먹고 살 수밖에 없습니다.
▲ 화폐교환에 대해 사과했다는데 사실인가?
- 네, 있었어요. 직접 인민반에서 했죠. (사람들)앉혀놓고 "당신들 이거 어떻게 하겠나" "국가에서 이런 대단한 조치를 취했는데 어떻게 하겠는가?" "악전고투하고 우리 살아가자" 등의 이야기해주고 사과했습니다. 우리 알기로는 잘사는 사람들, 즉 돈 많은 사람들의 돈을 국가에서 회수하면 못사는 사람들과 고루고루 되겠거니 생각했는데, 그렇게 안됐단 말입니다. 그러니깐 당에서 나와서 "어찌하나? 개혁을 갑자기 하다보니 이렇게 되었는데 어떻게 더 고난의 행군을 타계해 나가자?"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 장마당이 성행한다는데?
- 장마당이 청진시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전국적으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수남 장마당이라면 전국 각지에서 옵니다. 원산, 황해남도, 황해북도에서 와서 (물건을) 많이 가져가는데, 이 장사라는 게 어떤 건 공개 못하기 때문에 개인 집에 와서 조용히 가져가기도 합니다. 그러나 당에서는 "어느 한 개인이 돈을 채우지 말라" "두루두루 잘살게 하기 위해서다"라는 구호를 지금도 그대로 사용합니다.
고난의 행군이 지나니깐 시장이 광범위해지고 개인들 돈주머니가 채워지니까 당에서 나와 "국가가 어려운 난관을 겪고 있는데, 사회주의를 고수하자" "기술이 있는 만큼 기술을 발휘하고 각성하고 사회주의를 끝까지 고수하자" 하면서 장마당을 허락해주긴 했는데, 그 돈이 국가에 들어갑니까? 개인주머니만 채우지, 개인이 돈이 있어도 국가에 넣으려고 하지 않는단 말입니다. 저금도 그렇단 말입니다.
국가에서 저금하라고 하지만 하지 않습니다. 북한에서는 30만원을 저금하고 나중에 찾으려고 하면 (은행)소장이 안줍니다. 그러니 할 수없이 소장에게 "그럼 30만원 중에서 30%는 당신이 하고 나머지를 달라"고 해야 줍니다. 그런 상황이니 아무도 저금을 안한단 말입니다. 그러니 그냥 집에 둡니다. 개혁하면서 그 돈들이 몽땅 장사꾼 손에 들어갔단 말입니다.
▲ 북한이 계속 존재할 것으로 보는가?
- 제 생각에는 전쟁을 하든지, 한국과 통일하든지.... 이왕 이렇게 됐으니, 어느 나라 끝장봐서 한국이 지든 북한이 지든 아니면 미국이 이기면 먹여주겠지 그런 생각밖에 없어요. 배운 게 없고 하니 그런 생각합니다. 어쨌든 힘이 센 나라가 먹었으면 약한 나라 먹여주겠지요. 어차피 그렇게 사는 게 낫죠. 백성들이야 전쟁이나 일어나서 빨리 매듭을 지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우리 엄마나 또래들과 앉아서 얘기하면, 이렇게 사람 살기 바쁜데 전쟁이라도 확 일어나서 우리가 이기든 누가 이기든 빨리 매듭을 지어야 한다고 얘기합니다. 그래도 미국이 이기면 먹여 살리겠지 이렇게 생각합니다.
▲ 중국과 밀수하다 잡힌 적도 있고 감옥 생활도 했다는데...
- 일주일에 한번 내지 두세번씩 왔다 갔다 하면서 장사하다 잠복근무중인 조선경비대한테 잡혔습니다. 함흥 오호 영광군에 있는 감옥에서 1년 동안 죽지 못해 살았습니다. 형기를 채우고 집에 오니 이전 조금 벌어놓은 돈은 보위원들이 몽땅 회수해 갔습니다. 그래서 다시 중국으로 가야 했습니다.
그러나 2002년 남한의 이산가족과 북쪽 사람을 중국에 데려와 연결해주는 일을 하다 2005년 다시 붙잡혀 3년간 있었어요. 정말 끔찍하게 살아 남았어요. 죽지 못해서.... 그 안에서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갔어요. 같이 있던 사람들도 하룻밤에 죽어 나갔어요. 질병으로, 먹지 못해서 도망갈 수 있어도 도망갈 수 없을 만큼 허약한 상태들이었습니다.
밥이라고 주는 딱딱 찍어주는 기계 밥인데 한 끼에 한덩이만 준단 말입니다. 감옥에서 나와 집에 오니 부모님을 돌아가시고, 아내는 다른 남자 만나 결혼하고 어디에서 사는지 찾지도 못하고.
▲ 북한제도에 대해 신뢰는?
- 김정일도 지금 내리막길 걷다시피 하는데... 내 여기(중국)와서 보는 것은 아들(김정은)이 올라선다고 하는데, 아직까지 우리는 들은 것도 없고 본 것도 없으니깐 잘 모르겠습니다. 2012년도에는 강성대국되어 활짝 열린다고 하는데, 내 나라 비방하는 것은 아니지만 너무 많은 백성들이 곤란하니 나라에 대한 인식이 (겉으로)표현 못해도 다 속으로는 압니다. 현실적으로 표현은 못합니다. 목숨이 왔다 갔다 하니까요.
▲ 사람들이 잘 안 믿는단 말인가?
- 안 믿죠. 사람들이 다 보는 게 있잖아요. 이전에는 우물안 개구리처럼 정말 사회주의가 대단하고 제일인줄 알았는데, 나와보니 그게 아니란 말입니다. 중국이나 미국이 얼마나 발전하고 또 같은 나라지만 북조선과 한국은 천지 차이입니다. 저도 이전에 학교에서 교육 받기로 한국은 철천지원수라고 배웠지만 그게 현실적으로 아니란 말입니다. 저도 한국에 가고 싶고, 가도 잘 되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고....
중국 땅에서 이렇게 눈치보고 사는데, 두발 편안하게 뻗고 잔 적도 없고요. 이제 잡혀가면 그저 죽는 길밖에 없잖아요. 솔직히 말해서 중국 땅에 와서 산다 해도 항상 마음에는 근심과 걱정뿐입니다.
▲ 김정은에 대해서는?
- <샛별장군>에 관한 노래가 나왔어요. 노래 제목은 '발걸음'이었어요. 가사는 '김정은 대장이 가시는 곳마다~~'하면서 그를 샛별장군이라 부르며 칭송하는 노래였어요. 우리는 상관 없습니다. 누가 하던지 간에 우리 생활은 달라질 것이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무슨 얘기를 한들 그들이 듣는 것도 아닌데요. 불평을 해도 소용이 없기 때문에 우리는 전혀 관심도 없고 어떤 변화도 없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한동안 침묵)우리 주민들은 김정일에 대해 어떻다고 말할 수 있는 권리가 없습니다. 주민들을 살리는 정권은 아니지 않습니까?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보장해 주는 것이 없으니깐 사람들은 정부를 믿지 않습니다. 그저 자기 살 궁리를 찾습니다. 사람들 다 걱정하고 있습니다. 나이도 어리고 경험도 없는 사람이 과연 나라를 이끌고 갈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모든 것이 끝이 나길 바랍니다. 새로운 정권이 나오길 바랍니다.
▲ 북한에서 한국 영화를 본 사람이 많은가?
- 시장에 나가면 여자들이 CD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씨디알'이라 부릅니다. 한국, 중국, 홍콩 영화 다 있단 말입니다. 호기심이 어느 정도냐면 하나에 500원입니다. 그래도 사 가지고 와서 봅니다. 밤에 검열을 한단 말입니다. 차들이 와서 정전을 딱 시키면 CD를 빼지 못하니깐 통째로 가져가서 자기들이 전기 넣어서 본단 말입니다. "너 이거 어디서 났냐?"고 출처를 캐는데, 대답 못하면 무조건 3년 동안 강제노동 갑니다. 예전에 남자 7명이 대낮에 홍콩영화 '쌍둥이 형제'라는 것을 보다 공안이 와서 회수해 갔는데 여섯달 동안 강제 노동했다고 들었습니다.
▲ 2012년이 김일성 태어난 지 100주년이라고 하던데?
- 네. 우리가 자꾸 말하는 게 김일성 탄생 100주년에 강성대국 되면 조국통일이 된다고 합니다. 우리 생각에는 된다고는 보진 않습니다. 그간에 또 사람들 정화시키고 고생이 많단 말입니다. 고난의 행군 때에도 1년만 있으면 나라의 식량도 풀릴 것이라 했는데, 95년에 시작되어 10년이 넘었는데도 어찌 그렇게 되었습니까? 당에서 그런 소리를 해도 더 이상 믿어지지 않는단 말입니다. (중국으로)나와 있는 주제에 나라를 배반하지 말자 하다 가도 왜 자꾸 이런 생각이 드나? 이런 생각도 듭니다.
▲ 삐라나 데모에 대해서는?
- 본 적은 없는데 강연회에서 들은 적 있습니다. '적지물'이라는 것이 들어오는데 주로 분계선 쪽 개성, 사리원, 해주 이쪽으로 온단 말입니다. 원산 거기는 경계선이니깐 적지물이 풍선처럼 온다는 거지요. 근데 우리는 실제로 보지는 못합니다. 이런 게 들어올 때 "절대 만지지 말라"는 얘기는 듣습니다. 그 안에 먹는 것도 있고 유치한 그림도 있는데 "보지도 말고 먹지도 말라"했습니다. 먹으면 나중에 내장이 못쓰게 된다고 선전합니다.
그런 것은 조선에서 할래야 할 수 없습니다. 그런 소리를 저도 많이 들었는데, 보지 못했으니까 떠도는 소문들은 더러 있었지요. 현재 한국에서처럼 공개적으로 투쟁하는 것은 아직 조선에서는 허락이 안 됩니다. 속으로 불만이 있어도 표현을 못한단 말입니다. 왜냐? 지금 조선 실정이란 것이 한집 건너 다 고발자라서 아무리 친한 사람이라도 말 안한단 말입니다.
또 그런 건(데모) 없어요. 그게 없으니 이렇단 말입니다. 배짱이 없다고 해야하나 담력이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한국도 자유를 찾자고 올림픽 때 혁명을 했으니 오늘 같은 시대를 살고 한국이 됐잖아요. 그런데 우리는 그런 사람이 없지, 나오지 못합니다. <이하 생략>
한편 북한은 지금까지 5차례의 화폐개혁을 실시했다. 통일부 자료에 따르면 1차는 1947년 일제강점기 때 발행한 화폐를 대처하기 위해 조선중앙은행에서 발행한 화폐를 1대1로 교환했다. 2차는 6.25전쟁이 끝나고 1959년 전쟁으로 인한 인플레이션 방지와 경제정책을 추진하기 위한 투자 재원 확보를 목적으로 실시했다.
또 3차는 1979년 실시됐고 4차는 1992년 화폐제도를 공고화하고 유통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100원, 50원, 10원, 5원, 1원을 조선중앙은행에서 새로이 발행했다. 1차에서 4차까지는 모두 기존 화폐를 1대1로 교환하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이번 5차에서는 무려 100대1의 구권과 신권의 교환이 이루어졌고, 가구당 교환 액수를 제한하기까지 했다.
이번 인터뷰 내용에서 드러난 것만 봐도 지역에 따라 제한 액수가 10만원인 곳도 있었고, 30만원인 곳도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konas)
코나스 이현오 기자(holeekv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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