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보수세력'의 정치·사회적 위상
*다음은 한국하이에크소사이어티(회장 조동근)가 2011년 10월 14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주최한 '대한민국 보수의 현재와 미래'제하 심포지엄에서 양동안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가 발표한 발제문임.
1. 빈약한 규모, 분산된 활동
‘보수세력’의 정치·사회적 위상을 파악하려면 우선 ‘보수세력’의 양적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를 파악해야 할 것이다. 어떤 운동 세력의 규모는 그 운동을 전개하는 단체들의 숫자 및 그 단체들의 진성 회원 숫자(회비를 납부한다거나, 단체의 ‘동원령’이 발령되었을 때 자발적으로 호응하는 회원 수: 단체들의 형식적 회원 수와는 크게 다른 수)를 의미한다.
이제껏 어느 기관이나 개인이 객관적 자료를 토대로 ‘보수’운동에 참여하는 활동가와 회원들의 숫자를 계산해본 일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보수’운동에 참여하는 보수세력의 규모를 정확히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셈이다. 따라서 현 단계에서 ‘보수세력’의 규모는 추정치로 파악할 수밖에 없다. ‘보수’운동을 전개하는 현역 지도자급 활동가들이나 전문적 관찰자들의 추산에 따르면, ‘보수’운동을 전개하는 단체 수는 약 300개 정도이고, 그 중 실질적으로 활동하는 단체 수는 약 50개 정도이다. 단체들의 진성 회원 총수는 최대 10만 명 정도이고, ‘보수’운동에 적극적으로 참가하는 활동가 수는 1천명 이내이다. 절대 수치 면에서 매우 빈약한 규모이다.
‘보수’운동에 참여하는 활동가들은 50대 후반~70대 초반의 연령층이 압도적으로 많고, 30대 이하는 극히 적다. 그 나마도 젊어서부터 사상적 각성에 따라 ‘보수’운동을 일관되게 전개해온 인물들은 희귀하다. 젊어서부터 사상운동을 해왔던 활동가들은 대부분이 80대 이상의 고령이 되어 사실상 활동이 불가능하다. 현역 활동가들 가운데 젊어서부터 사상문제에 관심을 가져온 인사들은 대부분이 ‘전직 공안기관 종사자’들이거나 좌익운동을 하다가 전향한 인사들이다. 나머지 활동가들은 젊은 시절에는 사상문제에 대해 별 관심을 가지지 않다가 직장생활을 마감한 후 ‘보수’운동에 참여한 사람들이다.
‘보수’운동에 참여하고 있는 활동가들의 대부분은 여가시간을 이용하여 활동하며, 조직의 명령에 충실히 따르지 않는 사람이 많다. 단체의 모임에도 기분 내키면 참여하고 기분 내키지 않으면 불참하는 경향이 강하다. ‘보수’운동에 참여하는 30대 이하의 운동가들은 대부분이 ‘보수’운동 단체의 상근 직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대부분이 저임금을 받고 있어서 자긍심이 결여되어 있다. 대부분 활동가들의 운동 참여 태도가 이러하고 젊은 활동가들의 자긍심이 결여 된 탓으로 ‘보수’운동에 참여하는 개별 활동가들의 투쟁력은 극히 허약하다. 단체의 조직적 기강도 매우 해이하여 단체의 투쟁력 역시 극히 허약하다.
‘보수’운동 활동가들의 활동 내용은 대부분이 선전부문의 활동이다. 조직부문의 활동은 매우 빈약하다. ‘보수’운동 활동가들의 활동은 펜대(또는 컴퓨터 키보드)와 입으로만 운동하는 경향이 강하다는 뜻이다. 이로 인해 ‘보수세력’의 활동은 말만 무성하고 인원확대나 행동은 부족하게 된다.
운동 참여 인원의 확대가 없기 때문에 ‘보수세력’의 세력은 확대되지 않고, 선전 위주의 운동이어서 운동의 효과도 미미하게 된다. 대체로 세력의 운동효과는 공격적인 대규모 군중동원이 가능할 때 극대화되는데, ‘보수세력’은 공격적인 대규모 군중동원이 불가능한 구조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보수세력’의 선전활동은 충분한 연구와 전략·전술을 고려하여 행해지는 경우가 많지 않다. 그 결과 때로는 객관적 타당성이 불확실한 경우도 있고, 타당한 주장임에도 불구하고 대중을 지지자로 끌어들이는 설득력을 결여하는 경우도 많다. 대중에 대한 설득력 결여는 ‘보수세력’의 선전 활동 자체의 효과마저도 약화시킨다.
한편, ‘보수진영’의 활동가들과 단체들은 기질적으로 소두목 할거주의 활동 또는 소규모 서클 중심적 활동에 익숙하고 ‘진영’ 내의 다른 단체들과 연대하여 진영적 차원의 활동을 전개하는 데는 매우 서투르다.
‘보수’운동에 참여하려면 기성 ‘보수단체’에 가입하면 되는데도, 거의 모든 유력한 ‘보수활동가’들은 기성 단체에 가입하는 쉬운 길을 택하지 않고 애를 써서 새로운 단체를 만들어 활동하려 한다. 전직 유력자 몇 사람이 모이면 그들대로 00회나 XX포럼을 만들고, 어디에선가 지원이 제공되면 그 지원을 근거로 별도의 단체를 만들어 활동하려 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단체들의 대부분은 조직적 수명이 길지 않아서 조만간 활력을 상실한다. 그런 탓으로 해서 ‘보수세력’의 단체 숫자는 증가하지만 ‘보수세력’의 규모는 늘어나지 않는다.
‘보수단체’들은 진영 전체가 통일적으로 행동하는 것에 대한 관심이 별로 없다. 진영에 소속된 다른 단체들과 연대를 형성하려는 욕구도 별로 없고, 통일전선 구축 같은 것에 관심도 열의도 없다. 간혹 연합적 기구에 참여했다가도 연합기구에서 자기들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으면 슬그머니 빠져버린다.
‘보수진영’에는 진영 전체의 구심점이 되는 인사들이 없으며, 대중적 호감을 확보한 ‘보수’의 상징적 인물도 없다. ‘보수진영’에 속하는 단체들을 함께 묶을 수 있는 견인력을 가진 지도자가 없기 때문에 개별주의적 활동성향이 강한 ‘보수진영’의 활동가와 단체들을 연대시키거나 규합할 수 있는 인적 모멘텀이 형성되지 않는다.
2. 지도사상 부재, 입장의 상충
이처럼 ‘보수세력’은 규모도 작고, 활동가들의 투쟁력도 약하고, 활동 내용의 사회적 영향력도 약하고, 그나마도 활동가와 단체들이 개별적 분산투쟁을 전개하고 있는데 더하여, 그들의 운동방향과 목표가 다양하고 때로는 상충하기까지 한다.
‘보수진영’에는 통일된 지도사상이 없다. ‘보수세력’으로 호칭되는 범주에 속하는 사람들 가운데 어떤 부류는 반공적 자유민주주의를 지도사상으로 삼고 있고, 어떤 부류는 자유주의를 지도사상으로 삼고 있다. 어떤 부류는 독재 친화적인 무정형의 사상을 따르기도 하고, 어떤 부류는 아무런 지도사상도 없이 ‘동료로 쉽게 받아주니까’ ‘보수세력’의 운동에 참여하고 있다.
‘보수세력’의 단체들은 지도사상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운동과 관련된 여러 가지 문제들에서 의견차이가 심하게 된다. 어떤 부류는 남한 좌익세력과의 투쟁에 운동의 초점을 두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어떤 부류는 북한 민주화에 운동의 초점을 두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어떤 부류는 좌우를 초월한 국민통합에 운동의 초점을 두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어떤 부류는 기득권세력의 비리를 척결하는 개혁에 운동의 초점을 두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어떤 부류는 반공을 철저히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반해 다른 부류는 반공을 폐기해야 한다고 주장하는가 하면, 어떤 부류는 이적단체를 강제 해산시킬 수 있도록 국가보안법을 강화하는 개정을 주장하는데 반해 다른 부류는 찬양·고무죄를 폐지하도록 국가보안법을 약화시키는 개정을 주장한다. 어떤 부류는 ‘보수세력’의 운동이 정치에 강력하게 개입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독자적인 정당의 결성을 추진하는데 반해 다른 부류는 정치개입을 금기시 하면서 시민운동만 해야 한다는 입장을 취한다.
‘보수세력’은 심지어는 자기들의 명칭에 대해서조차 의견을 달리한다. 애국세력, 우익세력, 우파세력, 보수세력 등 제 각각으로 세력의 명칭을 사용한다. 자기들을 ‘보수세력’으로 자칭하고 반대세력을 ‘진보세력’으로 호칭하면, 그 명칭만 가지고도 큰 손해를 보는 것인데도, 진보세력을 자칭하는 반대세력이 작명해준 대로 ‘보수세력’이란 명칭을 가장 많이 사용한다. 심지어 뉴라이트 그룹은 영어로 말할 때는 뉴라이트, 곧 신우익이라고 말하면서, 한국어로 말할 때 우익을 피하고 ‘보수’ 또는 ‘중도보수’를 선호한다.
필자는 오래전부터 사상의 차이를 기준으로 구분하는 세력의 명칭을 진보세력 대 보수세력으로 부르는 것은 이론적으로 타당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한국과 같이 비선진국이자 고쳐야 할 것이 많은 사회에서는 진보세력 대 보수세력의 구분법을 사용하면 보수세력으로 호칭되는 세력이 그 명칭만으로도 큰 손해를 보게 되므로 ‘보수세력’이라 자칭하지 말고 ‘우익세력’이라 자칭하자고 거듭해서 주장해왔다. 또 사상의 차이를 기준으로 구분하는 세력의 명칭을 좌파와 우파로 부르는 것은 한자문화권의 어법상 타당하지 않다는 점을 거듭 주장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나라의 ‘보수세력’은 우익세력이라는 손해 보지 않는 세력명칭의 사용을 기피하고 보수세력이라는 손해보는 세력명칭을 고집스럽게 선호하고 있으며, 좌·우 구분법을 사용할 경우에도 어법에 맞는 좌·우익을 피하고 어법에 맞지 않는 좌·우파를 고집스럽게 선호한다. 참 불가사의한 일이다.
한편, 상이한 방향으로 개별적인 분산투쟁을 전개하는 ‘보수진영’ 내의 각 부류들은 자기들과 다른 방향으로 운동하는 활동가와 단체들을 부정적으로 보는 경향이 강하다. 어떤 부류는 자기들을 뉴라이트라고 자칭하면서 60-70년대의 낡은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 올드라이트와 자기들은 차별화해야 한다는 태도를 취한다. 어떤 부류는 정통 우익이라고 자칭하면서 뉴라이트를 자칭하는 사람들을 ‘동지가 되어야 할 사람들을 욕하는 것으로 먹고사는 사람들’이라고 비판한다. 심지어 어떤 부류는 “좌우사상투쟁은 탈냉전시대인 오늘날에는 적합하지 않은 것”이라며 중도노선을 표방하면서도 ‘보수진영’의 일원으로 활동한다.
우리 사회에 ‘보수진영’이란 용어가 사용되기는 하지만 진영 내의 단체들이 이처럼 분산되어 있으며 ‘각 방향 앞으로 갓’ 식으로 운동을 전개하고 있고, 그들 사이에 상호부정의 태도까지 조성되어 있으니 ‘보수진영’의 정치·사회적 영향력은 매우 허약해진다. 어떤 사상경향을 가진 세력이건 설사 세력의 규모가 작더라도 하나로 뭉쳐서 하나의 방향으로 활동하면 무시할 수 없는 힘, 곧 정치·사회적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나라의 ‘보수세력’은 규모가 작으면서 그나마도 연대와 통합이 이루어지지 않고 낱낱이 흩어져서 각기 상이한 방향으로 활동하니 역량이 분산되어 세력으로서의 힘이 극히 허약해질 수밖에 없다.
3. 사방에서 무시당하는 ‘보수세력’
‘세력’은 힘이 있어야 세력(forces)이다. 힘이 없는 ‘세력’은 세력이 아니다. 힘이 약하면 아무리 외형적 규모가 크더라도 세력으로 존중되지 않는다. 더구나 외형적 규모도 빈약하면서 힘조차 극히 허약하면 그 세력은 누구로부터도 존경을 받지 못한다. 우리 사회에서 ‘보수세력’은 규모도 빈약하면서 힘도 없기 때문에 냉정하게 말하자면 세력으로 인정받기조차 어렵다고 할 수 있다. 그러한 처지임에도 불구하고 ‘보수세력’이 ‘세력’을 자처하니까 사회의 각 행위자들로부터 존경을 받지 못하는 것은 물론 비웃음까지 사게 된다.
이 나라 정당들은 ‘보수세력’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진보세력’을 존중한다. 민주당과 민노당은 ‘진보세력’에 대해 크게 존중하는 태도를 보인다. 한나라당조차도 ‘진보세력’은 무시하지 않는다. 한나라당 대표로 새로 선출된 인사는 ‘보수진영’의 시민운동단체는 비공식적으로도 방문하지 않으면서 민노총이나 참여연대 등 ‘진보세력’의 단체들에 대해서는 공식적으로 예를 갖추어 방문한다. 한나라당 젊은 의원들의 상당수는 ‘진보진영’에 속하는 단체들의 행사에는 얼굴을 자주 내밀면서도 ‘보수진영’에 속하는 단체들의 행사에는 얼굴 내밀기를 기피한다.
이 나라의 정당들은 ‘진보세력’에 대한 태도와는 정반대로 ‘보수세력’에 대해서는 무시·경멸하는 태도를 취한다. 민주당과 민노당은 ‘보수세력’을 사갈시하며 경멸하고 있으며, 다른 정당들도 무시하는 태도를 취한다. ‘보수세력’ 대변을 자처하며 창당한 자유선진당은 이회창씨의 개인정당 및 충청도 지역당으로 전락하면서 ‘보수세력’과는 거의 무관한 정당이 되었다. ‘보수세력’이 선거 때마다 당원에 못지않은 열성으로 지원해온 한나라당마저 ‘보수세력’을 무시 천대하고 있다.
한나라당은 자기들의 정책을 결정함에 있어서 ‘보수세력’의 의견을 청취할 생각을 전혀 하지 않으며, ‘보수세력’과 연대할 생각도 하지 않으며, 되게 급할 때 이외에는 자기 당에 대한 ‘보수세력’의 지지를 진지하게 호소하지도 않는다. “‘보수세력’은 우리가 아무리 천대해도 선거 때가 되면 우리 당을 찍어줄 수밖에 없는 세력이다”, 또는 “말이 ‘보수세력’이지 그들의 규모나 유권자 동원력은 극히 보잘 것 없다”라고 판단하는 것 같다. 뿐만 아니라, 한나라당의 상당수 의원들, 특히 젊은 층 의원들은 걸핏하면 ‘보수세력’을 가르켜 ‘수구꼴통’이니 ‘극우’니 하는 비하적 호칭을 사용하고, “한나라당은 수구꼴통 정당이라는 이미지를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한다. 달리 말하자면 한나라당은 ‘보수세력’과 거리를 멀리 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한나라당의 그러한 태도는 2년 전 한나라당 국회의원들에게 강연을 해주고 있던 ‘보수’인사가 강연도중 한나라당 의원들로부터 망신을 당한 사례에서 잘 드러난다. ‘보수세력’을 멸시하는 한나라당의 증세는 최근에 와서 더 악화되었다.
한나라당 국회의원들만 ‘보수세력’을 멸시 천대하는 것이 아니라, 이명박 행정부도 ‘보수세력’을 경원해왔다. ‘보수세력’은 이명박 대통령의 당선과 그에 뒤이은 총선에서의 한나라당 압승에 ‘보수세력’의 기여도가 매우 컸다고 자부하는데 반해 이명박 대통령과 그의 측근들은 ‘보수세력’의 기여가 거의 없었다고 평가한다. 이러한 인식의 차이가 이명박 행정부의 ‘보수세력’에 대한 냉대와 ‘보수세력’의 이명박 행정부에 대한 실망감을 증폭시켜왔다.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연설에서 ‘중도 실용주의 노선’을 표방하여 ‘보수세력’과 거리를 두었다. 이명박 대통령은 ‘보수세력’이 비판하는 소설가 황석영씨를 외국여행에 대동하고 대통령 직속 사회통합위원회 위원으로 임명했으며, ‘보수세력’이 혐오하는 기회주의적 인사들을 사회통합위원회의 핵심직책에 임명했는가 하면, 청와대 사회통합수석비서관에 ‘보수세력’이 크게 반대했던 박주익씨를 임명했다. 이러한 이명박 대통령의 조치에 대해 ‘보수세력’은 “이명박 정권 창출에 큰 기여를 한 ‘보수세력’에 대해 이럴 수가 있나”라는 비판적 감정을 나타내고, 이명박 행정부는 “도와주지도 않은 사람들이 웃기네”라는 반응을 보였다.
이명박 행정부에서 ‘보수세력’에 대해 우호적 태도를 취하고 있는 부처의 숫자는 한나라당과 유사한 태도를 취하고 있는 부처의 숫자보다 적다. ‘보수세력’에 대해 우호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는 부처는 체제수호를 위해 노력하는 공안부처, 국민의 안보의식 고취에 관심을 가진 부처, 국방 관련 부처 등이다. 이 부처들의 일부 공무원들은 사상적 동지의식이나 직무수행상의 필요성 때문에 ‘보수세력’에 대해 우호적인 태도를 취한다. 그러나 그 부처들에 있어서도, 일부 예외를 제외하면, ‘보수세력’에 대한 직원들의 우호적 태도는 직급이 올라갈수록 약해진다. 직급이 올라갈수록 사상보다 정치를 더 중요시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들은 ‘보수세력’의 가치를 어느 정도 인정은 하지만, ‘보수세력’이 워낙 자생력을 결여하고 있기 때문에 부담스럽게 생각한다.
언론매체들의 ‘보수세력’에 대한 태도도 정당들의 태도와 엇비슷한다. 일부 언론 매체들은 ‘보수세력’을 ‘시대착오적인 색깔논쟁’이나 불러일으키려 하는 역사발전에서 낙오된 집단으로 간주하며, 경멸한다. 일부 언론매체들은 상업적인 이유 때문에 외면적으로는 ‘보수세력’에 대해 우호적인 척하면서 내심으로는 불가근 불가원의 대상으로 취급한다.
‘보수세력’의 사상운동-애국운동의 최대 수혜자들이라 할 대기업들도 ‘보수세력’을 경멸 천대한다. 대기업들은 힘이 있는 좌경 시민운동단체들이나 지도급 활동가들에게는 거액의 기부금이나 각종 형태의 금품을 제공하면서 환심을 사려 한다. 그에 반해 ‘보수세력’의 활동에는 기부를 외면하거나 지원을 할 경우에도 ‘껌값 정도’의 지원을 제공한다. 지원을 요청하러 간 ‘보수세력’ 인사들을 떼깽이질 하는 거지쯤으로 취급한다.
그러한 기업들의 태도를 비난하기도 어렵다. 기업의 입장에서 보면, 투자한 자금의 기업 보호 효과를 계산할 때, 기업의 자유를 보호하겠다고 말로만 외칠 뿐 실질적인 힘이 없는 ‘보수세력’에게 주는 돈은 버리는 돈과 같고, 실질적인 힘을 가지고 기업을 공격하는 좌경 시민운동 단체에 돈을 주어 그들의 기업에 대한 공격 강도를 약화시키게 되면 기업 보호의 실질적 효과를 거둘 수 있기 때문에 좌경 단체에 주는 돈은 가치 있는 투자가 되는 것이다.
일반 대중도 정계, 언론매체, 기업들의 ‘보수세력’ 경멸 풍조의 영향을 받아서, 그리고 좌익의 패권 하에 놓여 있는 문예계의 ‘보수세력’비판 메시지의 영향을 받아서 ‘보수세력’을 덩 달아 경멸한다. ‘보수세력’ 노인들이 시위하는 것을 본 일반 행인들의 대부분은 시위 노인들에게 멸시의 눈초리를 보낸다. ‘보수세력’ 노인들의 시위가 국민대중의 안전과 번영을 위해 전개하는 것이라는 점을 대중은 생각해보지도 않는다.
4. 맺음말
이상에서 정리해본 대한민국 ‘보수세력’의 정치·사회적 위상은 다소 과장된 표현들을 담고 있으며, 지나치게 ‘보수세력’을 비판적으로 묘사한 것 같다는 느낌을 필자 스스로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상에서 거칠게 그려본 ‘보수세력’의 정치·사회적 위상은 실제 위상과 거리가 먼 판이한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보수세력’의 활동가들이 이 나라 ‘보수세력’의 오늘날의 상태를 냉정하게 관찰해본다면, 필자가 거칠게 묘사한 이상과 같은 내용이 크게 잘못된 것이 아니라는 점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필자가 다소 과장된 표현을 사용하고 지나치게 비판적 묘사를 한 것은 ‘보수세력’의 반성과 분발을 촉구하려는 선의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점을 이해해주기 바란다. 이 글을 읽은 ‘보수진영’의 독자들은 이 나라 ‘보수세력’의 열등한 정치·사회적 위상에 실망할 것이 아니라, 이 나라 ‘보수세력’의 힘을 강화하고 규모를 확대하여 위상을 높이는 방법과 활동에 대해 진지하게 연구하고 연구된 결과를 적극적으로 실천하려는 태세를 확립해주었으면 좋겠다.(konas)
양동안(현대사상연구회 회장/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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