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바타' 정은의 선택
죽은 김정일이 사회주의 지도자 중 열 번째로 미리가 되어 아버지 김일성 시체가 전시된 만수산기념궁전에 한께 전시됐습니다. 김정일은 1994년 김일성 사망 당시, 자기 아버지 시체를 미라로 만들어 보관하기 위해 김일성이 집무실과 관저로 썼ㄷ주석궁을 리모델링했는데, 그 건물이 만수산 궁전입니다.
당시 리모델링 비용으로만 8억 9천만 달러가 들었습니다. 러시아 전문가들을 불러 김일성 시체를 미라로 만드는 데만 100만달러가 들었고, 매년 시체를 유지 관리하는 비용으로 80만 달러 정도가 소비되고 있습니다.
약 9억 달러, 우리 돈 1조 원에 달하는 이 금액은 당시 가격으로 태국산 강냉이 600만 톤을 살 수 있는 큰돈입니다. 그런데 김정일은 이 돈을 아버지 시체 꾸미는 대신, 이른바 ‘고난의 행군’이라 부르는 기간 동안 200만∼300만 명의 북한 주민들을 굶겨 죽였습니다. 이처럼 김정일은 통치자로서 가져야 할 덕목뿐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자질조차 구비하지 못했습니다.
모든 것을 자신의 권력유지에만 초점을 맞추어 아버지의 뒤를 이어 지난 17년간 북한을 통치하면서, 주민들의 인권을 최악의 수준으로 떨어뜨린 인물입니다.
김정일 장례식 직후 최고사령관 직위에 오른 김정은은 아버지 김정일의 후계체제 구축 과정을 답습하고 있습니다. 다른 것이 있다면 김정일이 20여년 동안 2인자로 활동하면서 서서히 권력을 장악했던 것에 비해 그 과정과 기간이 상당히 축소되었다는 것뿐입니다.
세상의 관측과 달리, 어떻게 보면 3대 세습이라는 점이 오히려 김정은의 권력장악에 도움이 되는 것 같기도 합니다. 김정일로의 세습과정에서 축적된 노하우가 김정은에게 큰 도움이 될 수 있고, 이미 부자세습을 경험한 북한 주민들에게는 손자에게 이어지는 3대 세습이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는 북한 특유의 통치 이데올로기인 주체사상이 기여하는바가 큽니다. 주체사상에서 북한 사회는 하나의 생명을 가진 커다란 유기체라고 합니다. 이 거대 생명체의 팔과 다리의 역할은 인민대중이 맡고, 생각하고 결정하는 역할은 뇌수와 같은 존재인 ‘수령’이 맡습니다. 그리고 수령의 생각과 결정사항을 팔과 다리인 인민대중에게 전달하는 역할은 중추신경인 노동당이 맡습니다.
이처럼 수령-당-인민대중이 하나의 생명체로 연결돼 있기 때문에 수령의 생각을 당이 얼마나 잘 전달되며, 당이 전달한 수령의 생각을 인민대중이 얼마나 잘 승복하고 수행하느냐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고 봅니다. 즉, 수령의 생각대로 인민대중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임으로써 북한이라는 유기체가 유지 발전될 수 있다는 논리입니다. 북한은 이러한 논리로 인민대중을 꼭두각시로 만들고 김일성 유일 지배체제를 공고화하였습니다.
북한 주민들에게 유일한 수령은 김일성 한 명입니다. 지난 60여년 동안 그렇게 세뇌 받아 왔습니다. 탁아소에 맡겨진 북한 어린이들이 배가 고프다고 칭얼대면 보육사는 절대 그냥 먹을 것을 주지 않습니다. 철도 들지 않은 어린아이에게 벽에 걸린 김일성 사진 앞에 가서 먹을 것을 달라는 기도를 하라고 시킵니다. 배가 고픈 아이는 보육사의 지시대로 ‘어버이 수령’ 김일성에게 먹을 것을 달라고 기도합니다.
아이가 눈을 감고 기도할 때 보육사는 얼른 먹을 것을 아이 앞에 갖다 놓습니다. 기도를 하고 눈을 뜬 아이는 먹을 것이 자기 앞에 놓인 것을 보고 진짜 김일성 수령이 준 것으로 생각합니다. 세 살, 네 살 때부터 이렇게 세뇌 받은 북한 주민들이 나이를 먹어 이제 70대가 되었습니다. 북한 주민 대부분이 김일성을 어버이로 알고 살아온 사람들입니다.
‘솔방울로 수류탄을 만들고, 가랑잎을 타고 압록강․두만강을 건너다니며 일본군 파출소를 습격하여 적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한 불세출의 영장’, 전지전능한 신적인 존재로 인식된 김일성이 어느 날 죽어 없어졌다고 하면 북한 주민들은 공황상태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체제 자체가 붕괴될 위기가 올 수도 있습니다. 그것을 알기 때문에 김정일은 김일성 시체를 미라로 만들어 전시해 놓고 해마다 수백만 명이 주민들에게 구경시키면서, ‘김일성 수령은 영생불멸한다’고 최면을 걸어왔습니다.
김정일 국가 주석이나 당 총비서 등의 직함을 물려받는 대신 ‘최고사령관’이라는 직함을 가지고 북한을 통치해 온 것도 신격화 된 김일성의 후광을 이용하기 위한 비책이었습니다. 김정은이 최고사령관 직함을 제일 먼저 부여 받은 것으로 보아서는 김정일처럼 따라 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즉, 자신의 정권유지를 최우선 과제로 삼아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후광을 최대한 이용하면서, ‘선군정치’의 구호 아래 군대를 통해 북한 내부를 통제할 속셈으로 보입니다. 북한은 김정일 세습체제를 완성시킬 때 이미 3대, 4대까지 세습이 가능하도록 ‘혁명적 수령론’을 만들고 주민들의 사상교육을 시켰습니다.
노동당과 공화국을 끌고 나가는 사람이 수령인데, 수령은 반드시 혁명 가계의 혈통을 타고 나야 한다는 논리입니다. 그래서 수령인 김일성의 아들 김정일이 통치자가 될 수 있었고, 이제 그 뒤를 이어 김정은에게까지 수령의 권위가 주어지게 된 것입니다.
김정일이 김일성의 후광을 등에 업고 북한을 통치했듯이, 김정은은 김일성과 김정일의 후광을 배경으로 북한을 통치할 것입니다. 29세의 김정은은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세습체제 구축에 심혈을 기울인 덕분에 3대 세습의 위업(?)을 달성하고 북한의 1인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완성이 아니라 이제부터가 시작입니다. 나이 어리고 아무 경력이 없는 김정은이 북한의 실질적인 통치자가 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들이 많습니다. 그중에서 가장 심각한 것이 파탄 직전에 있는 북한의 경제문제입니다. 공산주의자들은 권력 장악을 위해 인민대중의 목구멍을 틀어쥐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배급제를 택했습니다. 먹는 것을 가지고 주민들을 효율적으로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실제로 북한에서도 지난 60여 년간 식량을 가지고 주민들을 통제해 왔습니다.
런데 이제는 그 먹는 문제가 북한 사회를 붕괴시키는 아킬레스건이 되고 있습니다. 배급이 중단되고 먹는 문제가 해결되지 못한 데 따른 주민들의 불만은 단순한 불만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입니다. 해마다 수많은 북한 주민들이 탈북대열에 합류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해안 경계를 서던 초병이 탈북 목선을 함께 타고 넘어 오는가 하면, 탈북자들을 막기 위해 배치된 국경경비대원들의 집단 탈북 사태기 벌어지기도 합니다.
김정은은 김일성․김정일의 아바타, 분신입니다. 아바타 김정은 체제가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에 대해 세간의 관심이 높습니다. 전문가들은 북한 주민들이 참고 기다릴 수 있는 기간을 길게는 2년, 짧게는 수개 월 정도로 보고 있습니다.
이제는 과거와 같은 사상․심리․선전만으로 주민들을 통제할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이 기간 안에 김정일 통치 시절보다 조금이라도 삶의 질이 나아지지 않으면 극에 달한 주민들의 불만이 폭발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김정일이 죽기 전, 병든 몸을 이끌고 중국과 러시아를 연달아 방문했지만 별다른 지원을 받아내지 못했습니다. 중국이나 러시아도 북한을 돕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김정은이 살고 북한이 사는 길은 한 가지밖에 없습니다.
핵 개발을 포기하고, 남침전략을 수정하여 전쟁을 일으키지 않겠다는 것을 말과 행동으로 분명하게 보여주면 됩니다. 그러면 대한민국이 북한을 도울 수 있습니다. 이제는 초읽기에 들어간 형국입니다. 지난 4년여 동안 펼쳐온 우리의 대북정책이 성공하여 북한을 개혁과 개방의 길로 나서게 만드느냐, 아니면 과거로 회귀하여 또 다시 불필요한 남북 간의 소모전을 치르느냐를 판가름하는 시점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김정은은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카드가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깨달아야 합니다. 시간이 갈수록 자신에게 불리하다는 것도 함께 말입니다. 올해 우리는 국회의원 선거와 대통령 선거를 치르게 되어 있습니다. 선거 과정에서 대북정책이 핵심 이슈로 제기될 것이고, 현 정부로 상징되는 보수 진영의 대북정책이 도마에 오를 것이 예상됩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고지가 바로 눈앞에 보이기 때문입니다. 무엇이 진정으로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도모할 수 있는 길인지에 대한 국민 모두의 슬기로운 선택이 필요한 때입니다.(konas)
* 이 글은 월간 '자유' 2월호에도 게재된 내용입니다.
하두철 (국방대학교 군 전임교수)









![[안보칼럼] 강한 국군이 곧 평화의 조건이다](/img_data/article/260930/260930_63035.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