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지도자의 자격과 리더십
본 칼럼은 문화일보 8월 10일자 '오피니언 기고'에 게재된 내용임. 편집자 주
북한인권운동가 김영환 씨에 대한 중국 공안 당국의 고문사건이 불거지면서 대중 저자세 외교와 국민의 생명을 소홀히 다루는 정부의 무책임을 질타하는 국민의 목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도 높다.
중국 공안 당국의 고문 등 반(反) 인권적 행위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한국 정부는 지금까지 늘 그래 온 것처럼, 이번에도 중국의 눈치를 보면서 미적미적 끌고 가려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중국 어선이 시도 때도 없이 우리 영해를 침범, 불법조업을 하고 쇠몽둥이를 휘둘러 해경을 살해해도 저자세로 일관해 온 정부의 굴종외교에 국민은 분노하고 있다.
필자가 청와대 파견 근무를 하던 시절, 1979년 1월 초 어느 날의 일이다. ‘이 편지를 모든 특보·수석·장관이 공람하시오’라는 박정희 대통령의 친필 메모가 적힌 두툼한 편지 한 통이 특보실에 공람됐다.
8페이지에 달하는 장문의 편지 상당 부분이 대통령의 눈물로 온통 뒤범벅이 돼 있었다. 대통령이 이 편지를 읽는 순간 격한 감정을 억제할 수 없어 ‘눈물의 홍수’를 이룬 사실을 감지할 수 있었다.
1975년 4월 사이공이 함락되고 월남이 공산화되는 절박한 순간에 대사관 직원과 교민들을 철수시키고 자신은 포로가 되어 4년7개월 간 혹독한 옥고를 치른 이대용 공사가 4년째 되던 새해 첫날에 순국을 각오한 충정을 담아 대통령께 드린 편지 내용은 절절이 감동을 주었다.
‘부족한 저에게 베풀어 주신 각하의 뜨거운 온정과 국민의 깊은 관심은 몽매(夢寐)에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저는 죽어도 여한이 없으며 혼백(魂魄)이라도 각하와 국가를 위해 충성을 다할 것입니다. 삼가 새해 인사를 올립니다.’ 대충 이러한 내용이었다.
박 대통령은 국무회의 석상에서 “내 무슨 일이 있어도 이 공사를 구해 내겠소”라고 절실한 심정을 피력해 회의장 분위기가 숙연했다고 한다. 박 대통령은 이 공사의 송환을 위해 백방으로 힘을 썼고 극비 루트를 통해 편지와 비타민과 의약품을 보내는 세세한 부분까지 직접 챙겼다.
1980년 4월 비록 박 대통령은 고인이 된 뒤였지만 마침내 이 공사가 극적으로 송환돼 김포공항에서 조국의 땅을 밟는 순간 ‘대한민국 만세’를 목메어 외치던 모습이 국민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다.
뒤에 이 공사는, 혹독한 고문과 끈질긴 회유공작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대통령의 온정과 국민의 관심에 대한 감사한 마음이 ‘희망의 끈’이 됐기 때문이라고 술회했다. 국민을 아끼고 사랑하는 지도자의 모습을 느끼게 하는 일화다.
박 대통령은 비전 있는 국가관과 국가 경영철학과 확고한 안보의식으로 국민을 이끌고 국정을 운영했다. 국민의 생명을 자신의 생명처럼 아낀 피와 눈물의 지도자였다. 그렇기 때문에 공무원들은 사명감을 갖고 일했으며, 국민은 경제건설에 기꺼이 동참해 ‘한강의 기적’을 이룩할 수 있었다.
불행하게도 우리 국민은 이후 지도자다운 지도자를 갖지 못했다. 국가 경영철학이 빈곤하거나, 청렴하지 못하거나, 이념적 선명성이 결여되거나, 친인척 관리를 소홀히 했다. 그 결과 오늘날 우리 사회는 부정부패가 만연하고, 공직윤리와 국가기강이 무너지고, ‘한강의 기적’에 대한 자긍심과 역사의식이 박약하고, 북한의 정치공작과 종북세력의 국가전복 음모가 우려된다.
더 큰 문제는 대선 주자들조차 뚜렷한 국가관과 경영철학과 확고한 안보의식을 제시하기보다는 득표 차원의 포퓰리즘에 몰입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 틈을 타 북한은 연말 대선을 통해 종북정권 수립을 위해 혈안이 돼 있다.
올 대선이야말로 남북한의 운명을 판가름하는 일대 분수령이 될 것이다. 지금이야말로 진정한 지도자가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히 요구되는 절박한 상황이다.(Konas)
김명배(호서대 초빙교수, 前駐브라질 대사)
*국보법개정서명바로가기 : http://konas.net/event/signature.a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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