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과 주한미군은 영원한 평행선인가…? ①
1. 서 언
한반도 문제의 직접 당사자는 남,북한이지만 남,북한 간의 어떠한 중요한 문제도 남,북한 간의 합의만으로는 해결이 불가능한 두 가지 구조적 제약이 있다. 하나는 남,북한이 ‘제로 섬 게임’ (zero-sum game)을 벌이는 적대관계에 있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한반도 문제는 4강, 특히 동북아의 양 강대국인 미,중의 국익과 전략을 떠나서 생각할 수 없는 현실적 제약을 안고 있는 점이다. 남북한 관계에서 한국은 북한과의 ‘평화공존’을 지향하지만, 북한은 ‘남조선 적화통일’을 집요하게 추진하면서 통일전선전략 차원에서 ‘위장평화공세’를 구사하고 있다. 한편, 미,중 간에는 동북아에서의 패권경쟁을 의식한 암투가 이면에서 소리 없이 진행되고 있다.
한반도는 4강의 국익과 전략이 첨예하게 대립되는 전략적 요충이다. 동서 냉전기에는 미,소 간 냉전의 전초기지 (frontline state)였고, 전통적으로 해양세력인 미,일과 대륙세력인 중,러의 교두보 (bridgehead)적 성격을 띠고 있고, 탈 냉전기에 들어와서는 남,북한 공히 미,중 패권경쟁의 완충국가 (buffer state)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따라서 미,중 양국은 한반도 전체가 상대방의 배타적 영향권에 속하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에 유일한 대안이라 할 수 있는 현상유지 (status quo) 즉 ‘한반도 평화공존’을 선호한다.
크게 봐서 남,북한, 미,중 네 나라 중 한,미,중 세 나라가 현상유지 즉 한반도 평화공존을 원하고, 북한 한 나라만 현상타파 즉 남조선 적화통일을 원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를수록 대내외적 여건이 변하고 남조선 적화통일이 점차 ‘형해화’되면서 북한의 후계체제가 한반도 평화공존을 새로운 생존전략으로 추진할 가능성을 상정해 볼 수 있다.
2. 남조선 적화통일의 ‘명분화’
남조선 적화통일은 북한 정권의 혁명목표 이자 존재사유이다. 따라서 북한이 수령독재체제를 폐기하지 않는 한 남조선 적화통일 역시 결코 포기할 수 없다 할 것이다. 남조선 적화통일은 대남 군사우위를 전제로 하고, 군사력은 경제력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수령독재체제로부터 야기되는 만성적 경제침체로 인해 세월이 갈수록 남,북한 간 경제격차가 더욱 크게 벌어지면서 남조선 적화통일은 점차 실현가능성을 잃게 되고 한갓 통치수단으로 ‘명분화’ 되고 있다.
남조선 적화통일은 한반도에서 북한의 재침 도발을 전제로 하는바, 남북한 간의 현격한 경제격차, 주한미군의 전쟁 억지력, 경제대국화를 지향하는 중국의 한반도 평화유지 선호 등 제반 여건에 비추어 실현가능성이 희박하다. 결국 남조선 적화통일은 전쟁위협을 통해 수령독재체제를 유지코자 하는 통치수단 내지 한국과 4강으로부터 원조를 울거내기 위한 원조탈취 수단으로 쓰이면서 실현 가능성이 없는 한갓 명분으로 전락하고 있다.
3. 한반도 평화공존의 ‘실질화’
조중 군사동맹조약에 의하면 한반도에 북한의 도발에 의하지 않는 전쟁 (unprovoked war)에 한해서 중국이 지원하게 되어 있다. 북한이 전쟁을 도발하는 경우 중국의 지원 없이 단독으로 전쟁을 수행할 경제력이 없으므로 한국의 승리로 끝날 것이다. 그러나 누가 이기고 지고가 아무런 의미도 없다. 한반도 전체가 잿더미로 변한 채 공멸의 위기를 맞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남,북한의 살 길은 ‘평화공존’밖에 달리 방법이 있을 수가 없다. 또한 미,중 양국은 장차 동북아에서 첨예한 패권경쟁을 벌이게 되어 있고, 6자회담 에서의 북핵 협상을 둘러싸고 물밑에서 패권경쟁이 이미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오늘날 세계경제 에서 동북아가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면서 미국의 대외교역의 1/4이 동북아에서 이루어 지고 있고 앞으로 그 비중이 더욱 커질 전망이다. 미국이 아시아 대륙진출의 교두보인 한국을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이유이자 동북아 에서의 지도적 위치를 중국에 결코 양보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중국의 입장에서도 북한은 해양진출의 교두보이자 미국과의 직접 충돌을 막아주는 완충국으로서 중대한 전략적 가치를 갖고 있다. 중국은 동북아와 동아시아를 한데 묶어 ‘중화경제권’을 형성할 구상을 갖고 있다. 중국이 해양진출의 교두보인 북한을 결코 포기할 수 없으며 이 지역에서 미국과의 패권경쟁이 불가피한 이유라 할 것이다. 한반도 전체가 미국이든 중국이든 한 나라의 배타적 영향권에 속하게 되는 경우 다른 나라는 전략적 요충을 잃게 되면서 동북아의 평화, 안정이 크게 흔들리게 될 것이다. 따라서 미,중 양국 공히 한반도 현상유지 (status quo)를 원하며 그것이 곧 한반도 평화공존 (peaceful co-existence)인 것이다.
이처럼 남,북한이 살 길도, 미,중이 한반도 현상유지를 확보하는 길도 한반도 평화공존에 있으므로 한반도 평화공존은 결코 명분이 아닌 ‘실질적’의미를 띠게 된다.
4. 주한미군과 북핵의 상관관계
한반도 및 동북아 안보의 핵심적 요소인 주한미군과 북핵은 상극관계에 있다. 북핵이 남조선 적화통일의 전제인 주한미군철수를 실현하기 위한 유일한 협상수단임에 반해, 주한미군은 남조선 적화통일을 위한 북한의 재침을 막는 것이 주요한 역할이기 때문이다.
북핵이 수령독재체제의 생존수단이므로 체제유지를 최 우선시하는 김정은 정권도 북핵을 폐기할 가능성은 전무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주한미군이 한반도 전쟁방지는 물론 동북아 에서의 미국의 교역 이익을 수호하고, 중국의 경제대국화와 일본의 정치대국화의 균형을 유지하고 중,일 간 군비경쟁을 제어하고, 동북아 현상유지를 도모하는 등 미국의 국익과 전략에 비추어 볼 때 북한이 주한미군철수를 주장하는 것이나, 미국이 북핵 폐기를 주장하는 것이나, 상대방에게 필수불가결한 요소를 제거할 것을 요구하는 점에서 오랜 세월 접점 없는 평행선을 긋고 있을 뿐이다.
북핵문제와 주한미군 문제의 직접 이해당사국은 남,북한과 미,중 네 나라라고 할 수 있다. 북핵에 대해서는,미,중 양 강대국이 겉으로는 폐기를 주장하지만 이는 국제정치를 의식한 외교적 수사 (diplomatic euphemism)의 성격이 짙고, 내심으로는 북핵폐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인식 하에 안정관리 쪽으로 선회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중국은 이미 오래 전부터 안정관리 쪽으로 입장을 정리했고 최근 들어 북한문제와 북핵문제를 분리 대응하는 방향으로 정책 전환을 시도하는 점이 이를 말해 주고 있다. 미국도 6자회담의 오랜 협상과정을 통해 북핵폐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인식이 조야에 확산되면서 부시 행정부 말기부터 사실상 안정관리 쪽으로 선회하기 시작했으며 미,북 간의 2.13 합의 (2007년)및 동 이행과정에서 보여준 미국의 신축적이고 유연한 협상 자세에서 미국의 변화를 감지할 수 있다.
동 합의 이행과정에서 미국이 겉으로는 완전무결한 폐기(‘CVID’원칙)를 강조하면서도 막상 협상에 들어가서는 매우 유연하고 양보적인 입장을 취했던 것은 주지된 사실이다. 한국은 좌경정부 시절 사실상 북핵을 용인하는 입장을 취했음에 반해, 이명박 정부는 북핵 폐기를 남북협력의 전제조건으로 제시하는 원칙론을 견지하고 있다.
북한은 미,중이 사실상 안정관리 쪽으로 선회하는 움직임을 감지하고 ‘통미봉남, ‘통중봉남’ 전술을 구사하면서 한국을 미,중으로부터 고립시키는 정치공작을 시도하고 있다. 북한의 ‘남조선 배제정책’과 한국의 ‘4강 속의 1약’이라는 태생적 한계에 비추어 한국이 미,중의 안정관리로의 선회 움직임에 보다 유연하게 대응하지 못하면 자칫 미,중, 북한, 3국 간의 유화 분위기로부터 고립될 수가 있다. 이는 결과적으로 그간 김정일이 집요하게 추구해 온 ‘통미봉남’ ‘통중봉남’ 전술을 한국 스스로가 도와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주한미군에 대해서는 북한과 중국이 겉으로는 철수를 주장하지만 속 사정은 꼭 그렇지 않다. 북한의 경우 경제위기심화, 김정은 체제 조기구축 문제 등이 보다 시급한 문제로 떠오르면서 주한미군 철수 주장은 우선순위에서 밀리고 실현가능성이 점차 줄어 들면서 사실상 ‘명분화’되어 가고 있다. 어쩌면 오히려 북핵을 고수하는 방편으로 주한미군철수를 보다 극렬하게 주장하고 있지 않나 하는 느낌도 든다.
중국은 경제대국화를 국가 제1목표로 추구하기 때문에 한반도 평화를 유지하는 것이 관건적 요소이므로, 주한미군이 상당 기간 한반도 평화를 지켜주기를 내심 바라고 있을 가능성이 적지 않다. 또한 중국은 주한미군철수가 미,일동맹강화와 일본의 군사대국화로 이어질 것을 결코 원치 않을 것이다. 따라서 중국의 주한미군 철수주장은 외교적 수사의 성격이 짙다고 볼 수 있다. 혹시 북한에 대한 우호적인 제스쳐 일 수도 있고, 아니면 후일 경제대국화가 상당부분 진전된 후 미,중 패권경쟁에 대비한 ‘명분 쌓기’일 수도 있다.
이처럼 북핵이든 주한미군이든 남,북한,미,중 네 나라가 겉으로 표방하는 바와 실제 속 사정은 상당 부분 괴리가 있을 수 있으며, 바로 이러한 점 때문에 네 나라가 북핵과 주한미군을 상호 인정하는 선에서 타협점을 모색해 볼 여지가 있다 할 것이다.(2부에 계속 )(konas)
김명배(호서대학교 초빙교수, 전 주 브라질 대사, 평화통일국민포럼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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