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역병 롤 모델 수기집〕Soaring Air Force Makes Me Soar
2006년 10월, 공군에 지원하기위해 대학교 성적표를 제출했다. 군대에 가는데 성적표 제출이라니? 그렇다. 공군에 입대하기 위해서는 성적표가 필요하다. 체력 시험도 필요하다(지금은 체력시험이 폐지되었다 한다). 아니, 모든 지원 입영이 그렇듯 아무나 지원 입영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당시 나는 3년제 대학의 방사선과 1학년에 재학 중이었는데, 전공에 대한 확실함과 불확실함 사이의 갈등을 풀어낼 수 있으면서도 국방의 의무를 다할 수 있는 ‘항공의무’ 특기에 지원하여 2007년 2월에 공군 병 649기로 입대하였고 훈련소 성적대로 자대를 배치 받는 공군 특유의 시스템 덕분에 집과 한 시간 거리인 평택의 모 부대로 배속되었다.
내가 복무했던 부대의 의무대는 총 인원이 약 10명 남짓으로 작은 규모였지만 약 2년 동안 그들과 함께 생활하며 너무나 소중한 경험을 얻었다. 1학년을 갓 마치고 입대했던 나는 실제 환자의 X선 영상을 직접 촬영해 볼 기회가 없었다. 방사선과를 졸업하여 국가고시에 합격하면 병원에서 방사선사로 근무할 수 있게 되는데, 빠른 취직을 위해 방사선과를 선택했던 내게 환자의 X선 영상을 찍어볼 수 있었던 것은 너무나 좋은 경험이 되었다.
또한 같이 팀워크를 이루어 근무해야하는 의사 및 간호사와의 군대 생활을 통해 어떻게 환자를 대해야 하는지와 전문 의학 지식들도 몸소 체험할 수 있었다. 이렇듯 내 전공이나 미래에 대한 걱정들은 의무병 복무를 통해 많이 해소되었다.
군대 특기와 관련되어 재미있는 경험이 있다. 입대 전에 자신의 세부 보직을 선택하는 육군 의무병과는 달리 공군의 항공의무병은 입대 후에 약제, 간호, X선 영상 촬영, 임상 병리 등 다양한 업무 분야 중에서 해당 부대에서 필요한 보직을 부여받게 되는데 내가 받은 보직은 약제병이었다. 따라서 특기 교육을 받기 위해 대전에 위치한 국군 군의학교에서 약 5주 동안 육군들과 생활했다. 육군들은 대다수가 약학대학 학부생 출신들이었고 거의 지원 입영자들이었다.
약제에 대한 교육을 받으며 나는 약에 아주 큰 흥미를 느꼈을 뿐만 아니라 약대 출신 약제병 교육 동기들과 친하게 지내며 자연스럽게 약학대학이나 약사, 제약회사 등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고 나는 곧 스스로에게 미래에 대한 매력적인 제안을 하게 이르렀다.
약학대학교에 편입을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던 것이다. 약학대학교 편입을 준비하던 중 마음을 바꾸어 본래의 전공인 방사선학과로 편입을 하긴 했지만 자신의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그러한 결단을 나는 군 복무, 그것도 특기 교육 중에 내렸던 것이다.
특기 교육을 마치고 자대로 배속 되었을 때 나는 선임들이 각자 사회에서 이루어 놓은 것들에 대해서 들어볼 기회가 많았다. 의무대 뿐만 아니라 내무반을 함께 썼던 본부 병사들도 내 선임이었는데 그들 중에는 공부를 아주 잘했던 사람도 있었고 축구 선수 출신도 있었고 부자도 있었으며 가난하고 어려운 삶을 살아온 사람도 있었다.
군대가 아니라면 이렇게 다른 사람들이 서로 한 지붕 아래 모여서 살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그들은 말 그대로 다양했다. 모든 선임과 후임들의 이야기를 할 수는 없지만 분명한 것은 나는 그들과 생활하며 스스로의 가치에 대해 되돌아보게 되고, 나는 과연 그들만큼 치열하게 살아왔는가 하는 고민을 수도 없이 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고민들을 통해 나는 나무가 아닌 숲을 보는 사람이 되거나 ‘Aut caesar, Autnihil(황제가 아니면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말에서와 같이 시저가 되겠다고 스스로 굳은 다짐을 하게 되었다.
당시 공군 참모총장이 사용하셨던 슬로건 중 하나가 ‘솟아오르는 공군’이라는 뜻의 ‘Soaring Air Force’였는데, 이 문구가 너무 좋아서 ‘Soaring Air Force makes me soar’라고 노트에 적어두고 자주 보았다.
2009년 4월 17일 전역하던 날 나는 내 스스로에게 아주 유익한 군 생활이었다며 100점 만점에 95점 A+라고 점수를 주었다. 오늘의 내가 있기까지 군대 생활은 어떠한 영향을 주었을까? 앞서 말했듯이 나는 군대에 입대한지 얼마 되지 않아 특기 교육을 받았을 때 약학대학교 편입을 결심했다. 하지만 그 결심은 2년여의 의무대 생활동안 바뀌게 되었다.
경험적인 업무 말고도 실제 병원에서 레지던트까지 마치고 온 군의관님들과의 상담을 통해 나는 내 전공인 방사선과에 대한 매력을 느끼게 되었고, 약학대학교 편입보다는 방사선학이라는 학문을 공부해야겠다고 결심했다.
복무를 하며 두 번씩이나 큰 결단을 내렸지만 그 결심들은 결코 쉽게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으며, 내게 모든 상황과 사람들을 제공해준 군대 복무의 도움이 없었다면 이루어지기 힘든 결정들이었다.
두 번째 큰 결심은 이후에도 단 한 번도 변하지 않았다. 같이 복무했던 약제장교님의 추천으로 해외 어학연수를 다녀온 나는 2학년으로 복학함과 동시에 방사선 학문을 위한 4년제 방사선학과로 편입을 준비하기 시작했고, 당당히 2012학년도 편입학에 합격하여 현재 고려대학교 보건과학대학 방사선학과에 재학 중이다.
편입학 후 이미 한 학기를 마쳤고 이제 두 학기 째 접어드는 지금 내 결심에 추호도 후회가 없으며, 이 모든 것이 하나의 목표를 통해 이루어졌고 하나의 목표가 만들어지는 데에는 군 복무, 그것도 내 스스로 선택한 지원 입영이 매우 큰 도움을 주었다고 생각한다.
대한민국 군대에 지원하여 입영한다는 것은 국방의 의무를 다한다는 것에 자랑스러움을 느끼고 대한민국의 건아로서 새롭게 태어날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에게 부여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홍정욱 씨의 ‘7막 7장’에서, 제1막 1장의 맨 앞장에 나오는 말이 있다. ‘갈라진 두 길이 있었지, 그리고 나는 사람들이 덜 다닌 길을 택했고, 그것이 모든 것을 바꾸어놓았네.’ -로버트 프로스트
과거와 현재의 내상황과 너무 잘 맞는 말이다. 그러므로 입대를 앞둔 사람들의 상황과 너무 잘 맞는 말일 것이다. 내 인생을 바꾸는 선택은 내 스스로가 결정해야만 한다. 대한민국 남자로서 국방의 의무는 선택이 아닌 의무이다.
하지만 그 의무를 선택으로 바꿀 수 있는 용기와 그를 통해 우리의 삶의 소중한 자산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은 바로 자신이다. 자신의 미래에 대한 고민이 많다면, 아니 많을 수밖에 없는 입대를 앞둔 청춘들에게,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나갈 수 있는 몇 안 되는 방법 중 하나가 바로 지원 입영이라는 것을 전하고 싶다.(Konas)
장재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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