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산 안창호 선생 75주기 추모식
일제시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지도자였던 도산 안창호 선생 75주기 추모식이 9일 오전 11서울 강남구 도산공원에서 거행된다.
도산안창호선생기념사업회(회장 백낙환)와 흥사단(이사장 반재철) 주관으로 열리는 추모식에는 박승춘 보훈처장, 광복회원, 흥사단원, 시민 등 300여명이 참석해 약전봉독, 추모식사, 보훈처장·광복회장·흥사단이사장의 추모사로 진행될 예정이다.
안창호 선생은 독립운동가이자 교육자로 민족교육운동을 통해서만 자주독립이 가능하다고 믿고 청년들의 의식전환에 힘써왔다.
생전에는 “흔히 사람들은 기회를 기다리고 있지만 기회는 기다리는 사람에게 잡히지 않는 법이다. 우리는 기회를 기다리는 사람이 되기 전에 기회를 얻을 수 있는 실력을 갖추어야 한다”며 강조한 ‘무실역행(務實力行)’ 정신은 오늘날에도 큰 영향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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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창호 선생(1878.11. 9~1938. 3.10)은 평남 강서에서 출생했다. 청년시절부터 웅변가이자 조직가로서의 자질을 보였으며 1898년 독립협회에 가입해 만민공동회를 개최하며 자주독립과 국민의 자각을 호소했다.
1902년에는 미국으로 건너가 로스앤젤레스에서 한인친목회를 조직하고 회장에 선출됐다.
1905년에는 상부상조와 조국광복을 목적으로 한인친목회를 공립협회로 재창립하고 초대회장을 맡으면서 공립신보를 발행했다.
귀국 후에는 1907년 비밀결사 조직인 ‘신민회’를 결성해 구국 운동을 전개했고, 1909년에는 ‘청년학우회’를 조직하여 청년운동을 전개했다.
1910년에는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 1912년에 샌프란시스코에서 ‘대한인국민회’(Korean National Association)를 조직해 초대 회장에 취임했다. 1913년에는 ‘흥사단’을 조직해 민족계몽운동과 국권회복 활동을 펼쳤다.
1919년에는 샌프란시스코에서 국민대회를 개최하고 파리강화회의에 국민회 대표 파견 계획을 추진하다가 국내에서 3·1독립운동이 일어난 후 상해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가 들어서자 임시정부 내무총장 겸 국무총리 서리에 취임하여 연통제 실시, 독립신문 발간 등 독립운동의 방략을 지도했다.
1923년에는 ‘대독립당’을 결성하고, 1924년에는 남경에서 동명학원을 설립해 실력배양운동의 기초를 다졌다.
1930년 ‘동인호조사’(同人互助社)를 조직한 뒤 한인들의 합심 협력을 기획했고, 1931년 1월에 흥사단 제17회 원동대회를 주재해 청년 인재양성에 주력했다.
1937년 6월 수양동우회 사건으로 피체되어 옥고를 치르던 중 병을 얻어 그해 12월 보석으로 출옥하였으나 건강이 악화되어 1938년 3월 순국했다.
순국 후 처음에는 망우리에 안장되었다가 1973년 현 도산공원으로 이장하였으며, 정부에서는 선생의 공훈을 기리어 1962년에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하였다.(Konas)
코나스 이영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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