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로서 지켜 온 NLL, 통일 될 때까지 고수되어야'
7.27휴전 60주년에 ‘NLL 포기발언논쟁’이 웬 말이냐
지난 2007년 10.4남북정상회담에서 행한 노 전대통령의 ‘NLL 포기발언’을 놓고 여야국회의원들이 '10.4정상회담회의록'으로 확인하려하였으나, 원본으로 알려진 기록물이 없다고 확인됨으로서 이제는 새삼스럽게, 우리역사상 볼 수 없었던 ‘사초말소사건(가칭)’이 전개되게 되었다.
그런데 이 사건이야말로 한국적 정쟁의 대표적 산물로서 그렇지 않아도 불편한 국민들의 마음을 피곤하게 만들고 있는데, 그 이유는 상황의 본질이 사초의 검색에 있는 것이 아니고 'NLL포기발언' 바로 그 자체에 있다는 것을 국민들이 잘 알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회는 하루속히 본질문제로 돌아와 국민의 이름으로 ‘NLL의 사수’를 결의하여야할 것이다. 이에 7.27 정전협정 60주년을 맞이하여, 새삼 'NLL의 신성성과 사수의 당위성'을 우리 함께 살펴보면서, 이 사실을 특히 '친북유화와 노예의 평화'를 구걸하려는 이들에게 더욱 강조하고자한다.
너희가 NLL이 무엇인가를 똑바로 알기나 하는가?
1945년 8월 15일, 일제의 무조건항복을 기회로 북한을 무혈점령한 소련군과 그 조종하의 김일성 북로당(공산당)집단은 사회주의혁명이라는 미명으로 무자비한 만행을 자행함으로서 수백만의 애국시민들이 전율과 공포로 정상적인 인간의 삶을 강탈당하거나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잘 알려진바 대로 신의주학생의거사건을 위시하여 해방초기부터 북한 방방곳곳에서 저항(반공)아니면 도피(남한으로)의 물결이 파도쳤다.
그 이후 반공저항활동은 유격활동으로 발전하였는데, 특히 역사적으로 이승만과 안중근 그리고 김구를 비롯한 많은 애국지사를 배출하였고 일찍이 선진문명지대로 알려진 서북지역일대에서, 6.25전쟁을 전후하여, 특히 온율 지방의 구월산(954고지)을 중심으로 지속되었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연풍유격대(현역장교 김종벽대장이 지휘)이었다.
이들은 기다리고 기다렸던 유엔군이 북진하였을 때는 지역별로 치안대를 조직하여 활동하였으나, 유엔군이 후퇴하자, 고립되어 많은 희생을 내면서도 유격전을 계속하였다. 그동안 이들은 중공군과 북괴군의 압박으로 1951년 11월에 일단 웅도로 철수하여 초도 석도 등 서해연안 도서로 철수해 온 많은 유격부대들과 통합하여 2500여명의 군사력을 가진 구월산유격대(현역장교 김종벽대장이 역시 지휘)로 확대개편하고, 지속적으로 육지로 드나들며 유격전을 전개하였다.
그러던 중 1951년 미극동군사령부 정보국이 백령도를 근거지로 '표범기지사령부'를 설치하고 서해5도를 지역 기지로 하여 휴전하는 그날까지, 구월산유격대를 포함하여 서해 5도지역의 각도서 유격대를 '동키(당나귀부대)'라는 이름으로, 제한된 지원에 제한된 지휘로 운영하기 시작(5월경부터)하였다. 이들을 통칭하여 '켈로(KLO)부대' 라고도 하였다.
이들의 작전성과는 물론 피해 또한 아직도 완전하게 종합되지 못하고 있지만, 임시기록을 보면, 1950년 10월 15일부터 2년간에( 구월산 북단의 장련지방을 중심으로)사살 984명, 포로 296명, 아군피해 전사 357명(주민 200명 포함), 실종 480명(주민 400명 포함)이다.
그 기간의 유격전에서 이정도면 치열했던 공방전과 적에게 입힌 피해는 가히 적 후방을 불안하게하고도 남음이 있었을 것이 틀림없다. 이러한 사실은 정말 피로서 얻어진 반공의 역사요, 피로서 지켜진 우리의 영토, 그리고 서해5도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기에 1953년 8월 30일, 유엔군사령관이 휴전협정취지에 따라, 서해 5도민들을 특별히 보호하는 일방 더 이상 본토방향의 아군작전을 억지하기 위하여 서해상에 북방한계선(NLL)―북한은 1959년 발행 (조선중앙연감)에 해상군사분계선으로 표시-를 설정하였다.
그 이후 한국은 피로서 형성된 이 북방한계선을 군사 및 국토경계선으로 정의하고, 이를 서해5도와 함께, 우리의 용감한 해군·해병대가, 북한의 끝없는 도발을 격퇴해가며 오늘에 이르기까지 고수해 왔던 것이다. 그동안 북한이 NLL을 위주로 도발한 사건을 보면,
1970년 6월, 연평도 근해에서 어로지도 중이던 아 해군방송선(승무원 20명)을 납치하였고, 1999년 6월 15일, 그동안 NLL이남으로 침범 중인 북한함정을 선체(船體)로 박치기해가며 저지하던 중 이날은 북한이 선제 실탄공격을 해 옴으로, 아 해군의 ‘참수리’급 고속정과 초계함이 반격하여 반파상태로 퇴각시켰다. 그 결과 아군은 정장이 부상하고, 적은 사망·부상자 다수 발생하였는바 이를 제1연평해전 이라 한다.
2002년 6월 29일, 제2연평해전이 발생하였는데, 때마침 김대중 정권의 “선제공격금지, 신중대응”의 작전지침을 준수하던 아 참수리호가 적의 치밀하게 계획된 기습작전으로 정장이하 6명전사, 19명부상 그리고 함정침몰의 희생과 수모를 당하였다.
2009년 11월 10일에는 대청도 해역에서 상호 교전하여 적 함정 반파, 아 해군은 선체에 15발의 사격을 받았다. 그리고 이어서 2010년 3월에 기억조차 하기싫고 치가 떨리는 천인공노할 '천안함 폭침기습사건'으로 우리장병 46명이 전사하였다.
그리고 같은 해, 이번에는 공공연하게 아 영토인 연평도에 전례 없는 침략적 포격을 감행해 우리의 선량한 섬 주민과 반격하던 해병대용사들이 희생을 당하기도 하였다. 이와 같이 서해5도와 이를 감싸고 있는 NLL은 피로서 생성되고 사수되어 왔음이 분명하며 그러기에 앞으로도 피의 희생이 불가피하더라도 반듯이 지켜져야 할 것이다.
누가, 왜 NLL을 적에게 넘기려하나
박근혜대통령은 63주년 6.25 기념사에서 “우리의 NLL은 수많은 젊은이들이 피로 지키고, 죽음으로 지킨 곳이라는 것을 잊지말아야한다”고 강조하였다. 그런데 바로 다음날, 이에 질세라 또 한 번 차기 대선후보를 꿈꾸는 듯한 야당의 모 의원은 즉각 “더 이상 피와 죽음이 없는 평화를 이뤄야 한다는 것 아닐까요, 수많은 젊은이들의 피와 죽음으로 지켜 온 NLL의 역사를 우리가 끝내야 하지 않겠는가.” 라고 반박하였다.
얼핏 듣거나 보기는 우리 대통령의 기념사에 꼬투리를 다는 정도로 보이는 듯하나, 천만의 말씀이다, 여기에 바로 대한민국의 박근혜대통령과 정부 그리고 보통사람들(일반국민)에 대하여, 유화/친북/종북/좌익분자들의 국가안보전략사상의 차이가 확연히 나타나고 그들의 위선과 사기성이 또한 명백하게 드러나 보이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북한의 침략(도전)에 전쟁조차 불사하며 평화와 NLL을 지켜 내겠다는 진정한 전략사상과 북한이 침략(도전)해도 전쟁이 두려워 목숨만 살려주면 NLL도 주고 노예가 되어도 좋다는 유화/위장평화전략사상 즉, 친북·종북의 노예사상으로 구별되는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오늘날 대한민국에는 앞에서 거명했던 모 의원을 비롯한 상당수 야당 유력정치인들과 사이비학자 그리고 젊은 언론인들의 국가안보전략사상이 이 후자에 속한다고 평가되고 있으며, 그들로 인하여 오늘날 우리 대한민국이 알게 모르게 북한의 대남적화통일공작에 말려들어갈 수도 있다는 우려가 팽배해 있는 것이다.
1973년 12월에 개최된 군사정전위원회에서 북한은 정전협정이후 20년이 다 지난 이때, 처음으로 NLL에 대한 공식적인 이의를 제기하여 말하기를 “황해도와 경기도 도계의 연장선 이북의 수역은 자신들의 해역”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다가 국제공산주의가 멸망해 가던 당시, 1992년의 '남북공동선언' 에서는 NLL을 그대로 인정하기도 하였으나, 1999년 9월에는 다시 일방적으로 소위 '조선 서해 해상군사분계선'을 선포함으로서, NLL과 서해 5도를 직접적으로 위협하였다. 그 이후 이 선언을 기정사실화 하기 위해 유무형의 공작과 무력도발을 계속해 오고 있다.
그런데 위에 적시한 유화/위장평화꾼들이 우리 국민들을 기묘하게 눈 속여 가며, 이러한 북한의 “땅따먹기”제의와 도발에 동조·동감하며 나선 것이다. 그 대표적인 사건이 바로 2007년의 남북정상회담에서 한 '노무현의 NLL포기발언'이요, 이어서 개최된 남북 국방장관화담에서 '서해 평화수역과 등면적 공동어로구역 설정 논의'인 것이다.
이미 공개되어 국민 모두가 잘 알고 있는바와 같이,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오전 회담에 이어 저자세로 오후 연장회담까지 구걸해 가며 '서해 공동어로지역과 평화지대 설치'에 대해서 제안 당사자인 김정일보다 더 열렬히 설명을 시도하였다. 더구나 임기를 얼마 남기지 않았던 그가 이를 이미 눈치 채고 있는 김정일에게 “심심할 때 보시라”고 까지 말하며, 지도까지 넘겨 주면서 왜 끈질기게 설명하려 했을까?
그런데 최근 앞에서 거론했던 모 의원과 그 세력에 의해 공표된 그 지도들, 즉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위치도'와 국방장관 회담시 제의했다는 '우리 측 등면적 안'이란 것을 보면, 4~5개의 등면적·공동어로구역들이 백령도 부근 것 1개만 제외하고 나머지 3개는 형식만 NLL에 걸친(기준)척 하면서 전 면적을 북한이 주장하는 남쪽 경계선 전부를 거의 커버하게끔 그려 놓았다.
이에 대해 최근 국방부는 “서해 북방한계선(NLL) 밑으로 우리가 관할하는 수역에 공동어로 구역을 설정하는 것은 NLL 포기로 해석될 수 있다”고 밝히면서 그 이유로, 북한이 일방적으로 선포한 해상분계선 사이가 중립수역화 되고 그곳에서 해군력을 빼고 경찰력만으로 경비를 서게 된다면 결국 북한 해군만 우리 수역에서 활동하게 되는 것이고, 이렇게 되면 여지없이 NLL은 지켜질 수 없음으로, 이는 군사상 후퇴요 경계선의 포기인 것이 분명한 것이라 하였다.
이와 같이 노무현 전 대통령과 그 추종자들은, 말로는 그럴듯하게 NLL을 지키면서 만들고자 하는 평화수역입네, 등면적입네, 등거리입네로 국민을 속이고 우롱하면서 결과적으로는 북한의 의도에 말려 들어가는 모양새가 되고 만 것이다.
보기에 따라서는 당시 집권자가 국가안보비전이 비뚤어져 있었기에, 북한의 적화전술인 ‘위장민족주의’에 심취하여 ‘전작권환수’에다 ‘미군전방지역철수’, ‘한미연합사 해체’에 이어 이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안’까지 제의하여, 한미동맹군의 방어력을 약화시키고 나아가서는 NLL을 안겨주기까지 하면서 알게 모르게 북한의 적화전략전술에 말려들어 가게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NLL과 서해 5도는 통일의 그날까지 지켜 져야한다
그동안 북한은 소위 미완성 북핵을 가지고, 한국은 물론 미국에게도 사용하겠다는 공갈과 함께 극한의 전쟁용어와 인간관계 갈등용어를 총동원하여 우리와 우리의 존엄 그리고 우리대한민국을 우롱하고 겁박해 왔다. 이에 우리는, 특히 박근혜정부에 들어와서는, 결연한 자세로 일전불사의 각오로 즉각적인 무한보복을 선포하며 대응함으로서 (물론 한편으로는 신뢰 프로세스도 준비하면서) 그들의 야욕을 억제해 오고 있는 중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하거니와 서해5도는 재론의 여지없이 군사전략적 요충지인 동시에, 반공유격대 용사들이 피 흘려 조성하고 현재 정착해 생활하면서 건너편 고향을 바라보고 반공의 보루로 자부하며 일상을 보내고 있는 뜻 깊고 신성한, 우리가 반듯이 지켜야할 우리의 영토다. 그러기에 더욱이 이를 감싸고 있는 NLL 또한 두말 할 여지없이 안보 전략적 가치선임과 동시에 피 흘려 지켜 온 군사경계선인 것이다.
이제, 7.27 휴전협정 60주년을 맞이하여, 북한은 대규모의 군사시위를 통해 다시 한 번 우리를 겁박하고 있다. 정말로 같은 민족이지만 북한은 안타깝게도 우리의 주적이었고, 지금도 주적이거니와 지금의 소행으로 보아 김 씨 왕조가 타도되어 통일이 될 때까지는 우리가 그들을 주적으로 정의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우리국가안보의 현실이다. 때문에 피로서 지켜 온 저 NLL은 통일의 그날까지 신성불가침으로 지켜져야 마땅할 것이다.(konas)
한국국가안보전략사상사학연구회 대표 문영일 (예비역 육군중장)
ikonsstory.com ; moon7677@kornet.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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