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의 감격은 어디로 가고
주권을 빼앗기고 40년 가까이 일본의 종살이를 하였습니다. ‘일제 하 36년’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1905년의 을사보호조약으로 국격을 상실하고 나라 구실을 못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1945년 8월 15일까지 40년의 긴 세월이 흘렀습니다.
‘조국을 찾겠노라 말 달리던 선구자’들에게는 피 눈물 나는 세월이었고 인격을 짓밟힌 민초들에게는 어둡고 괴로운 세월이었습니다. 일제가 힘에 겨운 침략전쟁을 일으켜 막판에는 조선인의 노동력이 절대 필요하게 되자 엉뚱하게 ‘내선일체(內鮮一體)’를 부르짖으며 한국의 젊은이들을 징용으로 또는 징병으로 강제동원하기도 하였습니다.
당시의 한국인들에게는 아무런 희망이 없었습니다. 쌀이나 대두박도 배급 받아 겨우 입에 풀칠이나 하였고 바지나 양말은 늘 기워서 입고 신고 다녔습니다. 먹지 못해 얼굴이 누렇게 뜬 사람이 많았습니다. 장정들은 스무 살만 되면 일본군에 끌려가 만주 벌판이나 중국 본토에서, 또는 동남아나 태평양의 어느 섬에서 ‘옥쇄(玉碎)’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앞이 캄캄하기만 하였습니다.
바로 그런 절망의 계절에 ‘해방’의 종이 울렸습니다. 이 날, 일본은 항복하고 한국인에게는 주권 회복의 새로운 희망이 생겼습니다. 아마도 그 때 나이가 열다섯은 됐어야 그 감격을 되새길 수 있을 터이니 그들은 나이가 80은 다 넘었을 것입니다. 우리 세대가 다 떠나면 그 감격을 간직한 한국인도 모두 사라질 것입니다.
해방이 되고 얼마 뒤에 시인 김기림이 “우리들의 8월로 돌아가자”고 읊은 적이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우리들의 8월’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나라의 정치고 결코 이 꼴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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