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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를 원한다면...

북한의 전쟁위협을 분쇄하고 한반도에 평화를 정착시키는 방법은 군인들은 위국헌신의 내공으로,국민들은 나라사랑의 내공으로 두려움을 떨쳐버릴 때,
Written by. 이권헌   입력 : 2013-08-25 오전 8:5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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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년 상반기 우리 한반도는 1976년 8월 18일 북한의 도끼만행 사건 이후 최고도의 전쟁 위험에 직면하여 전 세계가 불안해하고 있었다. 김정은은 “핵 공갈”로 점차 위협의 수위를 높여 가면서 우리가 예상했던 것 이상으로 막나갔다. 여기까지일 것이라는 예상이 빗나가고 있었다. 미국도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우리 사회는 북한의 핵에 대해서 우리도 핵을 보유해야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었다. 그러나 소총이 있다고 소총을 억제하고, 탱크가 있다고 탱크를 억제하는 것이 아니듯이 핵이 있다고 전쟁을 억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너 죽고 나 죽자는 “패배적 패러다임”에서 주도권을 갖는 쪽은 같이 죽더라도 잃을 것이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다 죽어가는 중환자실 환자와 건강한 사람이 “너 죽고 나 죽자”라는 치킨게임을 한다면 중환자실 환자가 주도권을 갖는다. 거지와 부자가 “다 같이 발가벗는다.” 는 치킨게임이라면 거지가 주도권을 잡는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가미가제 특공대가 유효했던 것은 비행기 몇 대를 가지고 거대한 함대와 맞바꿀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에게 핵이 있다고 하자. 북한이 “너 죽고 나죽자”고 덤벼들 때 우리는 전 국민이 똘똘 뭉쳐 “그러자” 고 할 수 있는가? 그렇지 못하다면 우리가 핵을 가지고 있어도 북한의 도발 억제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국민은 전쟁의 위험을 슬기롭게 극복하고 평화가 정착되기를 바란다. 우리가 바라는 평화! 어떻게 얻어질 수 있을까? 세상도 우주도 인간관계도 국제관계도 상호의존적이다. 눈에 보이는 문제의 현상에서 답을 찾는 것은 근본적인 해결이 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자극을 맞받아치는 반사적 반응은 최선이 아닌 경우가 많다. 상호의존적 관계에서의 근원적인 답은 엉뚱한데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잘 알려진 예를 상기해 보자. 미국의 워싱턴에 위치한 토머스 제퍼슨 박물관의 외벽이 심하게 부식되었다. 대대적인 수리로 막대한 예산이 필요했다. 그런데 부식의 원인을 조사해 보니 비둘기 똥 속의 산성 물질 때문이었다. 그리고 원인을 더 추적해보니 박물관에 비둘기가 많은 것은 비둘기의 먹이인 거미가 많아서이고, 거미가 많은 것은 나방들이 많아서이며, 나방이 많이 모이는 것은 박물관의 밝은 조명 때문인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박물관 측은 조명등을 조금 이격설치하고 2시간 늦게 점등함으로써 “외벽부식”이라는 문제의 근원을 해결할 수 있었다.

 다시 우리의 평화문제로 돌아 가보자. 평화는 어떻게 얻어지는가? 선각자들의 이야기부터 들어보자.

 “틱탓한”의「힘」이라는 책에서는 평화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진정한 힘은 권력이나 돈 또는 무기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내면의 평화에서 나온다. 우리의 나날의 삶, 곧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방식을 변화시킨다면 우리는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 마음의 평화를 통해 세상의 평화를 가져오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그것이 유일한 길이다. 평화는 무엇보다 먼저 한 개인 속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세상 전체가 평화로운 한 사람에 의해 달라질 수 있다”

 또 잘 알려진 이야기로 웨스트민스트 사원의 어떤 주교는 죽음을 앞두고 이렇게 고백했다. “이제 죽음을 맞기 위해 자리에 누워 나는 문득 깨닫는다. 만약 내가 내 자신을 먼저 변화시켰더라면, 그것을 보고 내 가족이 변화되었을 것을, 또한 그것에 용기를 내어 내 나라를 더 좋은 곳으로 바꿀 수도 있었을 것을, 혹시 누가 아는가? 세상까지도 변화되었을지…”

 스티븐 코비도 강연에서 2가지 종류의 자유에 대하여 말했다. 첫째는  환경의 조건, 외면의 조건에서 오는 Liberty자유이고(Liberty is a condition of the environment), 둘째는 개인의 조건, 내면의 조건에서 오는 Freedom 자유이다(Freedom is a condition of the person). 그런데 이 둘은 상호작용한다. 즉 내면의 조건인 Freedom을 컨트롤 하면 환경의 조건인 Liberty에 영향을 주게 된다. (The more you control your freedom, eventually you will influence the liberty of your life). 그러므로 내면의 자유인 Freedom을 확대시켜 나간다면 외면의 자유인 Liberty도 확대되어 간다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자유는 평화로 바꾸어 설명할 수도 있을 것이다. 즉 내면의 평화를 확대해 나간다면 외면(환경)의 평화도 확대되어 간다는 것이다.

 이들의 이야기는 한결같이 한 국가의 평화도 개인의 평화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이다. 즉 개인의 평화가 가정의 평화로, 가정의 평화가 사회의 평화로, 사회의 평화가 한 국가의 평화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반도의 평화는 나 개인으로부터 출발한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우리들 각자 내면의 평화이다. 평화란 갈등이나 두려움이 없는 평온한 상태를 말한다. 우리들의 내면은 지금 평화로운가? 아니면 두렵고 공포스러은가? 우리 각자의 내면이 평화롭지 못하고 두렵다면 우리 국가는 평화로울 수 없다. 우리가 지금 당장 북한이나 김정은 이를 어떻게 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외적인 환경이나 상태가 주는 평화가 아니라 환경과 상태를 초월(transcendence)한 내적인 평화로부터 출발해야한다.

 성서에서도 “두려움에는 형벌이 따른다.”고 한다. 두려움의 형벌중 하나는 상대방의 밥이 되는 것이다. 동물 생태계에서 천적들의 심리상태를 보라! 먹는 강자가 포효(咆哮)하면 먹히는 약자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옴짝달싹하지 못한다. 멧돼지는 호랑이의 똥만 봐도 두려워서 도망간다. 밥이 될 수밖에 없다.

 폭력배들도 싸우기 전에 자해(自害)를 해서 상대방에게 공포와 두려움을 준다. 조폭이 된 어린 시절 친구가 있다. 그의 말에 의하면 조폭 간에 승부를 가림에 있어서 꼭 주먹다짐이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고 한다. 마주하여 기싸움을 할 때 면도칼을 손아귀에 꽉 쥐어 피를 뚝뚝 흘리는 자해를 하면 상대방은 공포감에 무릎을 꿇었다고 한다.  지금 북한의 전쟁위협이 이와 같지 않은가?

 군대도 적을 두려워하면 밥이 될 수밖에 없다. 알렉산더 대왕이 세계를 정복할 때의 일이다. 알렉산더 대왕은 소규모의 군대를 이끌고 견고하게 축성된 한 도시에 도착해 항복을 권유했다. 그러나 그 도시의 왕은 “그 작은 규모의 군대로 어떻게 우리를 정복할 수 있겠느냐”고 비웃으며 거부했다.

 그러자 알렉산더는 자신의 군대가 얼마나 강한지를 보여주겠다며 군대를 일렬로 세운 후 낭떠러지를 향해 행진하도록 명령했다. 병사들은 거침없이 행진해 한 명씩 한 명씩 떨어져 죽었다. 열 명의 병사가 죽은 후 알렉산더 대왕은 행군을 멈추게 하고 다시 항복을 권유했다. 도시의 왕과 군사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알렉산더 군대에 겁을 먹고 두려움에 전의를 상실하고 항복했다.

 북한군에게는 전쟁을 불사하는 이판사판 자포자기식 용기가 있다. 전쟁 없이 평화롭게 굶어 죽으나 전쟁하다가  피 흘리며 죽으나 별반 차이가 없다고 생각한다. 혹 남침하여 이긴다면 전리품으로 남한의 모든 물질적 풍요를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하니 전쟁은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북한 주민들도 북한군과 생각이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월급은 5천원도 안되는데 계란 한 줄은 만원이 넘고, 치약 한통은 2만원이 넘는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는 그들이 더 이상 무엇이 두렵겠는가? 이판사판 자포자기적 체념 때문에 전쟁이 두렵지 않을 것이다.

 우리 군대는 어떠한가? 우리 군대에게도 두려움 없는 용기로 인한 내적 평화, 즉 내공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 내공은 위국헌신 군인본분의 군인정신에 근거해야한다.

 위국헌신이란 나라를 위해 몸(생명)을 바친다는 의미다. 몸을 바쳤으니 내 몸에 대한 소유권과 사용권은 국가에 있다. 사적인 몸은 이미 존재하지 않는다. 국가는 헌신한 몸을 필요에 따라 사용할 수 있다. 팔이 필요할 때는 팔을, 다리가 필요할 때는 다리를 사용할 수 있다. 온몸이 필요하면 전신의 산화를 요구할 수도 있다. 이와 같은 신념과 용기가 전쟁의 공포를 밀어내는 반작용의 힘이 되어야한다. 군인의 가장 명예로운 죽음은 전장에서 전우들과 함께 싸우다가 죽는 것이라고 확신함으로써 오히려 평안해지는 부동심(내적 평화)을 유지해야 한다.

 우리 국민들은 어떠한가? 한때 우리는 경제적 절대 우위가 전쟁을 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돈으로 평화를 사려고한 적은 없는가? 과거 송나라는 요(거란)에 비해 인구 20배, 상비군 2배 이상의 부국이었으나 패배했고, 아테네는 스파르타에 비해 2배 이상의 군사력을 가졌으나 패배하였으며, 페르시아는 마케도니아에 비해 10배 이상의 전력을 가지고도 패배하였다는 역사의 교훈은 애써 외면하려하지는 않았는가?

 부모는 자기 자녀를 위하여 어떤 희생도 감수한다. 값을 치룰 만큼 사랑하고 값을 치룰 만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국민들도 마찬가지이다. 나라를 사랑하고 위하여 값을 치르겠다는 내공으로 충만할 때, 국민들의 마음은 내적 평화로 채워진다. 그리고 국민들의 내적 평화는 우리나라의 평화, 한반도의 평화로 전이된다. 그래서 국민들이 나라를 사랑할 수 있도록 깨끗하고 공정한 정치, 풍요롭고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어야 하며, 자신이 누리는 자유와 평화의 중요성을 확신하도록 해주어야한다.

 군인들의 내공이 되어야 하는 “爲國獻身”의 용기와 국민들의 내공이 되어야 하는 “나라사랑” 정신은 지위(position)가 아니라 상태(status)이다. 그러므로 한번 충전시켰다고 하여 지속적으로 유지되는 것이 아니다. 시간이 지나면 공이나 풍선의 바람이 빠지듯이 자동적으로 조금씩 누출된다. 자동 누출을 방지하려면 자동 주입이 있어야 한다. 이것은 마치 화생방 양압장치의 원리와 같다. 화생방 양압장치란 내부의 공기압력을 높여서 외부로부터 오염된 공기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는 방호장치이다. 그러므로 마음속에 “위국헌신과 나라사랑”의 압력도 지속적으로 자동 주입하여 항상 양압상태를 유지토록 해야 한다.

 지금 국방부에서 추진하는 “국방정신교육원의 창설”은 바로 양압(내공)충전소가 될 것이고 보훈처가 추진하는 “나라사랑 교육”은 양압(내공)충전 활동으로써의 의미를 가질 것임으로 시의(時宜) 적절하다고 하겠다.

 결론적으로 북한의 전쟁위협을 분쇄하고 한반도에 평화를 정착시키는 방법은 우리 국민 모두가 두려움 없는 평화의 내공으로 충만하는 것이다. 군인들은 위국헌신의 내공으로, 국민들은 나라사랑의 내공으로 두려움을 떨쳐버릴 때, 그래서 내적으로 평화의 부동심을 가질 때,  그 평화는 한반도에 가득할 것이다.

 나의 제언이 나비효과가 되길 바란다. 이 글을 읽은 독자들의 마음속 평화의 날갯짓이 한반도는 물론, 세계평화로의 토네이도(tornado)가 되기를 소원한다. 공감하는 분은 퍼 날라주길 바라며 조동화 시인의 “나하나 꽃피어”라는 시로 마무리 인사를 대신한다.

나 하나 꽃피어
풀밭이 달라지겠냐고 말하지 말아라
네가 꽃피고 나도 꽃피면
결국 풀밭이 온통 꽃밭이 되는 것 아니겠느냐
나 하나 물들어
산이 달라지겠냐고도 말하지 말아라
내가 물들고 너도 물들면
결국 온 산이 활활 타오르는 것 아니겠느냐 (konas) 출처:월간자유


이 권 헌( 예. 준장,  전 육군화학학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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