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군의 영웅들을 생각한다
영관급 장교들과의 만남에서 이런 화제가 올랐다. “왜 북한군 장성(將星)들의 신상, 동태는 우리 언론에 사소한 것까지 일일이 보도되는데 우리는 그렇지 못한가!” 듣고 보니 과연 그렇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성했다.
기자가 올 4월부터 100회를 채우고 그만둔 TV조선 ‘문갑식의 신통방통’을 돌이켜봤다. 정확한 집계는 아니지만 1주일에 한 번은 북한군 장성이 아이템으로 오른 것 같다. 주 5회 방송이니 스무 차례 남짓 등장한 셈이다. 김영철, 그의 현직은 북한군 정찰총국장이다. 그는 2012년 대장에서 중장으로 2계급 강등됐다. 올 2월 대장으로 복귀했는데 강등될 때, 승진할 때 모두 주요 뉴스가 됐다. 기사를 쓰기 며칠 전 이런 기사도 나왔다.
‘김정은의 시찰을 수행하던 북한군 장성의 계급이 강등된 것으로 10월10일 확인됐다’는 내용이다. 보도 근거는 김정은이 노동당 창건기념일에 김일성·김정일의 시신이 안치된 금수산 태양궁전을 찾은 한 장의 사진이다. 사진을 보면 인민군 중장(별 2개)이던 윤동현, 렴철성, 김수실이 소장(별 1개) 계급장을 단 모습이 나온다. 보도를 보면서 기자가 만났던 장교들은 “국군의 중장 이름을 아는 이가 몇이나 될까”라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김격식, 2010년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사건의 주범이다. 김격식 역시 김영철을 능가할 만큼 한국 언론의 단골 등장인물이다. 김격식은 북한 인민무력부장, 4군단장, 총참모장으로 부침(浮沈)을 거듭해온 풍운아다. 그는 대한민국과의 긴장을 고조시키다 개성공단이 정상화되면서 리영길에게 참모총장 자리를 물려주고 2선으로 후퇴했다. 이 뉴스도 우리 언론을 통해 자세히 보도됐으니 이런 사실을 알고 있을 김격식의 심정이 어떨까.
김일성의 빨치산 동료출신으로 ‘혁명 원로세대’(북한식 표현)의 2세인 최룡해 인민군 총정치국장의 일거수일투족도 우리에겐 화제다. 그가 ‘김정은의 영원한 그림자’라는 해설기사가 나오더니 엉뚱한 기사도 등장했다. ‘김정은 제거 후 북한 접수할 운명’이라는 평이다. 그 배경이 흥미롭다. 한 중국인 역술가가 그의 한자 이름을 분석해보니 앞으로 개운(開運)해 황제가 될 운이며 김정은의 처 리설주까지 접수할(?) 예정이라는 것이다.
아마 평양에서 이런 보도를 접했을 최룡해가 분개하면서 김정은에게 ‘황송한’ 나머지 또 엉뚱한 흉계를 꾸미지 않을까 걱정된다. 나는 왜 우리 장군들의 훌륭한 모습이 국민에게 알려지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잘 알다시피 우리 5000년 역사에서 무인(武人)들을 빼면 자랑할 만한 인물이 별로 없는 실정이다. 성웅(聖雄) 이순신 장군을 비롯해 을지문덕, 김유신, 강감찬, 윤관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장군들이 민족을 지킨 것이다.
그렇다면 최근세에는 어떤가. 우리는 1900년대 들어 두 차례 큰 전쟁을 치렀다. 6·25와 월남전이다. 하나는 동족끼리 상잔(相殘), 하나는 파병(派兵)이다. 20세기에 벌어진 4대 전쟁 가운데 우리는 두 번을 치른 것이다. 이 과정에는 눈물 없이 들을 수 없는 비화가 많다. 일례로 6·25는 김일성의 비겁한 기습에 의한 것이다. 전력 차도 컸다. 옛 소련과 중공의 전폭적인 협조를 받은 북한의 남침에 우리가 버틴 것은 사실 기적 같은 일이다.
따지고 보면 기적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 운(運)이 아니었다. 일례로 백선엽 장군. 지금도 미군들이 ‘한국전의 영웅’으로 추앙하는 그의 참전사(參戰史)를 보면 외세의 수천 번 침략에 버틴 한국인의 원형을 보는 듯하다. 그가 1사단장에서 후퇴할 때의 일화(행주산성 부근에서 도하하면서 설탕 한줌으로 버틴)와 낙동강 전선에서 악전고투할 때의 상황, 그리고 평양에 진군했을 때의 이야기들을 들으면 그야말로 위인전에 등장할 감이다.
그런데 한때 원수(元帥)추대설까지 돌던 그에겐 좌파들이 찍은 ‘일본군 출신’이라는 낙인이 지금도 꺼멓게 남아있다. 나라를 구해도 과거에 일본군에 몸담았으면 잘못인가? 그럼 일본군 출신은 나라를 지키면 안 되는가?
채명신장군. 그는 6·25때 백골병단을 이끌며 김일성의 간담을 서늘케 한 용장(勇將)이다. 김일성의 측근 길원팔을 사살할 때의 일화가 왜 지금까지 그 수많은 감독들에 의해 영화로 만들어지지 않았을까 궁금할 정도다. 그는 월남전 초대 파월한국군 사령관이었다. 이런 혁혁한 공을 세운 그는 구순(九旬)을 바라보고 있는데 군 관계자들 외에는 별로 기억하는 사람들이 없다. 그것도 안타까운데 일각에서는 별의별 핑계로 그를 폄하한다.
김백일 장군. 그는 6·25때 전선을 시찰하다 불의의 추락사고로 아까운 생을 마감했다. 그런데 김 장군을 기억하는 이는 유족을 제외하면 국방부나 국가보훈처 정도일 것이다. 어디 그런 군인들이 한두 명이란 말인가.
공정식 전 해병대사령관. 6·25개전 전 김일성이 파견한 특수부대가 인천에 정박한 주한미군군사고문단장의 요트를 탈취해간 적이 있다. 그 전후로 한국군 2개 대대가 전방에서 집단 월북했다. 이승만 대통령이 대로했다. 이에 공 전 사령관과 함명수 전 해군참모총장은 우리 전사(戰史)에 남을 기습작전을 구상한다. 손원일 해군참모총장이 허락한 ‘몽금포 기습작전’이 바로 그것이다.
우리 해군특공대는 북한 해주항 인근의 몽금포항에 돌진해 적 함정을 깨고 문제의 요트를 탈환해왔다. 일부 좌파가 ‘6·25 북침설’의 한 근거로 제시하는 몽금포작전에 가장 큰 충격을 받은 것은 김일성이었다고 한다. 나는 공 전 사령관과 최근 만난 자리에서 “용장들의 위인전을 쓰는 것이 시급하다”고 진언한 바 있다. 고령의 장군들이 스러지기 전에, 육성(肉聲)으로 후세에 남기는 그들만의 이야기를 전해야한다는 절박감이 들었다.
이것은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서너 달 안에 할 수 있는 일이라고 확신한다. 자금도 그리 들지 않는 일이며 종북좌파들의 획책에 가장 효과적으로 대비할 수 있는 길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누가 과연 그 일을 할 것인가? 기자는 국방일보에 장기간 연재된 장군들의 스토리만 누군가 알기 쉽게 정리하면 우리 군의 자랑스러운 면을 후대에게 보여줄 위인전기가 100권 이상 발간될 수 있다고 본다. 그렇지만 이런 생각을 하는 이는 별로 없다.
대한민국 국민은 이중성을 가지고 있다. 미국을 존경하면서도 싫어한다. 젊은 층일수록 근거 없는 이유를 대며 본능적으로 기피한다. 싫어하는 이유를 여기서 나열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그렇다면 존경하는 것은 왜일까? 기자는 그것이 ‘정의에 대한 신념’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미국의, 미국에 의한, 미국을 위해 싸운 이들을 향해 어디 출신이니, 과거에 어떤 잘못을 했느니 어떤 성격이니 하는 식의 생트집을 절대 잡지 않는다.
그러기에 군인들은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국가는 그런 그들을 위해 최상의 예우를 바친다. 60년 전에 휴전한 6·25때의 시신을 찾기 위해 미군이 아직도 정성을 바치는 것은 그 일례일 뿐이다. 우리가 맥아더 원수, 워커 장군, 밴플리트 장군 등을 기억하는 것은 정의에 대한 신념을 믿기 때문이며 우리를 구해준 은인(恩人)이라는 기억을 가진 연세 든 분들 때문일 것이다. 문제는 그 기억이 한정됐다는 점이다.
기자는 알레이버크 미 해군제독의 흉상이 진해 해군사관학교 교정에 건립될 때 칼럼을 쓴 적이 있다. 그는 백선엽 장군이 북한군·중공군과 사투를 벌일 때 함대로 화력지원을 했던 숨은 영웅이었다. 미국이 제1호 이지스함에 그의 이름을 헌정했을 정도로 전설적 군인이다.
그런데 오십 넘어 군 관련 기사에 천착해온 기자에게도 그의 일화는 생소한 것이었다. 자, 나는 이글을 읽을 독자들의 의견을 듣고자 한다. 당신들이 기억하는 우리의 장군은 누구냐고. 만일 그들을 기억해야한다면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느냐고! (konas) 출처: 월간자유
문 갑 식(조선일보 선임기자)









![[안보칼럼] 북한의 드론 전력 위협에 대비한 민·관·군 입체적 대응 방안](/img_data/article/260923/260923_63007.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