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씨조선과 친북좌파의 평등은 노예의 평등
프랑스 혁명(1789) 덕분에 일반 시민들도 누구나 상위 1% 지배계층의 문화적 특권을 향유하기 시작한다. 1793년 8월 10일, 루브르 중앙미술관(Museum Central des Arts)이 일반 시민에게 무료로 개방된 것이다. 선남선녀가 입장하기 쉽도록 폐쇄적 건물 구조는 크게 변경되어 입구가 훤하게 틔어졌다. 그 이전에는 전 세계 어디서나 박물관과 미술관은 귀족과 왕족의 개인 소유물이었고, 금송아지를 아무에게 안 보여 주듯이 그것은 좀처럼 남에게 보여 주지 않고 특별한 사람들에게 최고의 선심으로 살짝 보여 주었다. 대개는 혼자서 바라보며 황홀경에 빠졌다.
19세기 계몽주의에서 구체화된 평등(egalite)은 이때부터 비로소 도도한 역사의 물줄기로 전 세계에 확산되기 시작했다. 그보다 20여년 전에 평등의 낙원이 지상에 도래한다고 대서양 서쪽 끝에서 인간 천사들이 베토벤의 <운명> 동기(motif)처럼 단순하나 힘찬 가락으로 나팔을 불었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창조되었느니라. (All Men are d equal.)'
1776년 7월 4일, 유럽 계몽주의에 가슴이 뜨거워진 아메리카 식민지의 지식인들이 거지 군대의 총을 앞세우고 홀로서기를 선언한(Declaration of Independence) 것이다.
선언적 평등이 법률적 평등이 되기 위해서는 세느의 강물만큼, 미시시피의 강물만큼 피를 흘러야 했다. 남북전쟁은 바로 평등의 신세계로 딱 한 걸음 나아가기 위한 피의 신고식이었다.
1865년, 1868년, 1870년 13조에서 15조에 이르는 일련의 수정헌법에 의해서 미국에서 노예제는 정식으로 폐기되고, 흑인도 법률의 보호를 받고, 흑인 남자도 투표권을 얻는다. 그러나 여자는 백인이든 흑인이든 여전히 법률적 평등(legal equality)에서 제외되었다.
총력전(total war)으로 전개된 세계 1차 대전에서 후방에서 여자들이 군수품 생산과 조달에 혁혁한 공을 세우고 나서야 수정헌법 19조(1920)에 의해서 비로소 신세계의 여자들도 투표권을 갖게 된다. 상황은 다른 선진국에서도 비슷했다.
조선의 <경국대전>에 따르면, 아무리 재산이 많아도 제사를 효심이 뻗치는 대로 지낼 수 없었다. 6품 이상은 3대(증조)까지, 7품에서 9품은 2대까지, 일반 평민은 부모의 제사만 지낼 수 있었다. 조선후기에 주자가례에 따라, 오늘날처럼 아무나 왕족이나 되듯이 무려 4대까지 제사를 지내게 이르렀다. 어쨌거나 조선후기에는 평등의식이 광범위하게 퍼졌음을 알 수 있다. 제사 지내느라 살림이 거덜 나거나 말거나 신분에 따른 불평등은 그런 식으로 한풀이한 셈이다.
만인평등에 가장 어긋나는 것은 노예제였는데, 그것은 기계가 인간의 근육을 대신하는 산업화 시대에 접어들어서야 비로소 사라졌다. 노예제도가 사라졌다고 평등의 핵심인 법 앞의 평등(equality before the law)이 곧바로 실현되는 건 아니다. 전술한 것처럼 지도자를 선택할 투표권도 중요하고, 무엇보다 최소한의 인간적 존엄성을 스스로 지킬 정도의 사유재산이 있어야 한다. 노예도 노예끼리는 평등했다. 그러나 그 자신은 숟가락 몽뎅이 하나 없이 달랑 몸뚱이가 전 재산이었기 때문에, 인간이 아니라 농기구나 가축처럼 재산의 일부였기 때문에, 노예끼리의 평등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그들의 숫자가 인구의 절반이 넘더라도 노예의 평등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그런데 1848년 <공산당 선언>에 의해서 산업화와 더불어 당연히 역사의 발전 단계에 따라 사라져야 할 노예제가, 농업시대보다 비참한 노예제가 이상화되고 이념화되고 제도화되었다. 공유 또는 무소유란 허울 아래 노동자농민 또는 공산권력에 고분고분하지 않는 자는 모조리 공산당의 관노(官奴)로 전락할 수밖에 없었다. 전체 인구의 90% 이상이 공산당의 노예로 전락할 수밖에 없었다.
마르크스의 아름다운 공산주의를 스탈린과 모택동이 악용해서 그렇다고 우기는 바보들이 지금도 숱하게 많지만, 먼저 그런 자들로부터 나뭇잎만한 속옷 외에는 일체의 재산을 빼앗은 다음, <자본론>을 새로 읽어 보라고 하면, 첫 장도 안 읽고 사유재산이야말로 자유와 평등의 초석임을 바로 이해할 것이다.
공동재산이란 것은 먼저 본 자가 임자임을 바로 이해할 것이다. 수만 년 동안 소작농 또는 노예가 원한 것은 ‘내 땅, 우리 가족 땅’이었지 협동농장이 아니었다. 만인평등이란 이름 아래 지주는 무자비하게 죽여 버리거나 강제수용소에 보내고 모든 토지를 빼앗아 공산당이 공유재산의 거룩한 이름으로 가로채 버렸다. 그것은 <공산당 선언>의 필연적 과정이요 결과였다.
공산귀족은 농업시대의 귀족보다 도리어 높아지고 세지고 부유해지고 사악해졌다. 그들은 이기심의 원천을 없앤다는 미명하에 강가의 모래 한 알갱이까지 일체의 재산을 공산당의 재산으로 만든 후에 분배권을 틀어쥐고 권력에 따라 나눠가졌다.
이 분배권이야말로 공산당의 조폭식 재산 갈라먹기(lion's share)였다. 그렇게 토지, 자원, 공장 등 일체의 자본을 권력의 서열에 따라, 공익의 이름으로 사실상 사유화했다. 그들에게는 모든 게 공짜거나, 공짜나 마찬가지여서 공산권에서도 자연발생적으로 형성되는 시장가격에 비하면 100분의 1, 1000분의 1의 터무니없이 싼 국정 가격으로 공산귀족은 국영 상점에 나오기 전에 상품을 입도선매했다.
제국주의라 날마다 욕하는 나라에서 몰래 수입한 고급 사치품도 권력의 순으로 아래위로 바치거나 선심 쓰고 사이좋게 갈라먹었다. 공산당이 자본주의보다 못하다는 봉건시대에도 소유가 일부 귀족에게 집중되어 있었지만, 왕도 귀족의 일부였고, 농민도 자작농이 만만치 않게 많았다.
어느 누가 독점권을 휘두를 수가 없었다. 그만큼 자유와 자율이 상대적으로 공산국보다는 월등히 많았다. 심지어 소작농도 지주에게 소작료만 바치면 간섭받을 일이 없었다. 그러나 인구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공산노예는 재산도 전혀 없었을 뿐만 아니라 자유도 자율도 다 빼앗기고 웃고 울 감정도 다 빼앗기고, 고작 밥 한 그릇 사탕 한 알 얻어먹기 위해 끝없이 감옥의 죄수처럼 감시 받으며 끝없이 충성 맹세를 고해야 한다.
김씨왕조는 알코올중독자 로드먼의 말이 아니더라도 전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땅에서 전 세계에서 가장 부유하게 산다. 생산성이 갈수록 떨어지는 협동농장의 농산물만이 아니라, 노동자들이 개성공단에서 또는 해외에서, 금강산 가족상봉에서 번 피 묻은 돈도 공유재산의 이름으로 김씨왕조가 90% 이상 갈취한다.
뿐만 아니라 김일성 일족은 권력도 법 위의 절대 권력이라, 옛날에 주인이 눈 한 번 치켜떴다고 노예를 현장에서 때려죽이듯이 김씨왕조는 지금도 아무나 때려죽인다. 일반 주민들로 봐서는 백두산 위의 구름보다 높은 권력서열 2위와 그 추종자들도 여차하면 잔인하게 죽여 버린다.
공산당 내에서도 철저히 신분이 서열화되어 있는데, 그들조차 재산권이 법률로 보장되어 있지는 않다. 김일성의 귀염둥이 임수경이 감옥에 잡혀가도 그 가족은 1000원짜리 하나 빼앗기지 않지만, 공산당원은 권력의 끈에서 떨어지는 순간, 모든 게 끝이다. 그 가족도 끝이다. 재산은 원칙적으로 공유재산이므로 그 순간 모두 공산당에 귀속된다. (개혁개방 덕분에 세계 2대 강국으로 올라섰다고 하지만, 여전히 공산당 일당 독재체제인 중국에서도 권력투쟁에서 밀려나면 지금도 그렇게 된다. 공산체제에서는 분배권 제도에 의해 구조적으로 비리는 누구나 저지르는 것이므로, 죄는 얼마든지 승리자가 입맛대로 골라잡을 수 있다. 최근의 본보기식 숙청 과정을 눈여겨보라.)
북한에서 직수입하여 한국에서 널리 쓰이는 진보적 민주주의는 1차 산업에서 3차 산업까지 모든 것을 국유화하는 것이다. 공산화가 곧 그들이 말하는 진보적 민주주의의 실체다. 진보적 민주주의 직전 단계의 인민민주주의는 일정 규모 이상의 토지와 대자본가의 재산을 국유화(공산당의 재산으로 만들기)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진보를 내세우고 평등에 목을 매는 자들일수록 밤낮 재벌 해체를 주장하고 공익을 앞세워 민영화에 결사반대하는 것은 그들이 언젠가는 권력의 정상에 서서 분배권을 독점하려는 수작이다. 노예의 평등을 한반도 전체에 실현하면, 그들이 김씨왕조와 더불어 주인으로서 법의 지배에서 벗어나 일반 노동자를 한껏 착취하여 마음대로 잘 먹고 즐기려는 수작이다.
한국에서 공기업은 공산주의 체제와 가장 비슷하다. 국가가 주인인 곳에서는 권력을 잡은 자들, 현재는 노조가 공산귀족이나 마찬가지다. 세상에 그보다 좋을 수 없다. 거룩한 말을 입에 게의 거품처럼 내뿜으며 분배권을 틀어쥐고서 그들이 특히 노조 지도자가 정치판을 24시간 기웃거리며, 역시 노조가 장악한 언론의 비호를 받으며 노른자위를 독차지한다.
다행히 한국은 사유재산을 법으로 광범위하게 보호하고, 공기업도 일정 정도 시장에서 경쟁하기 때문에, 무엇보다 곳곳에서 감시하기 때문에 그런 대로 잘해 온 편이지만, 이제는 더 이상 공기업 개혁을 미룰 수 없다.
평등, 좋다. 그러나 그것은 자유인의 평등이어야 하지, 노예의 평등이 되어서는 안 된다. 최근 그리스나 스페인, 이태리 등에서 보듯이 선진국의 말석을 차지한 국가들에서도 평등이 자칫하면 노예의 평등이 되어 국가가 부도 위기에 처하고 일반 서민은 실업의 늪에서 더욱 비참해질 수 있다.
로마의 귀족이 표를 매수하거나 가난한 시민을 현혹시키기 위해서 빵과 서커스(panem et circenses)로 선심 쓰듯이, 또는 사지 멀쩡한 게으른 거지에게 값싼 동정을 베풀 듯이 경제의 기초를 흔들면서 후손을 미리 착취하는 복지정책을 남발하면, 한국도 얼마든지 자유인의 평등이 아니라 노예의 평등을 외치는 자들의 위선과 독선에 의해 위기에 처해질 수 있다.
광복 후 지금까지 우리나라는 지도자와 국민이 함께 노력하여 아프리카보다 어려운 상황에서 미국의 후원 아래 풍요의 경제 금메달만이 아니라 자유와 평등의 정치 금메달, 스포츠와 예술의 문화 금메달도 줄줄이 땄다.
그러나 많은 자들은, 먹물 든 자들일수록 이것을 전혀 자랑할 줄 모르고 온갖 단물은 뒤에서 다 빨아먹으면서 도리어 정체불명의 평등을 절대선으로 내세워 제 나라를 밤낮 비난하고 우정 외국에 나가서까지 비방하면서, 2천만 노예의 평등에 대해서는 병아리 눈물만큼의 동정도 안 보이고, 2천만 노예 주인에게는 침묵으로 일관하거나 은근히 또는 노골적으로 자주니 화해니 햇볕이니 암구호를 주고받으면서, 충성의 추파를 던지고 있다.
노예의 평등이 그렇게 그립나 보다.(조갑제닷컴)
최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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