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일본은 왜 그리 호전적인가?"
“일본은 왜 그리 호전적이었을까? 멀리 하야시 시헤이에서 발원해 요시다 쇼인을 거쳐 사이고 다카모리와 이토 히로부미로 이어져 내려온 대륙론자들의 정한론(征韓論)은 일본 무사들의 전형적인 불만의 배출구였으며 생존의 활로였다. 스승 요시다 쇼인이 국사범으로 목이 잘려 죽었을 때 모든 선배들은 몸을 피해 도주했지만 열여덟 살의 막내 이토 히로부미는 목 잘린 스승의 시체를 껴안고 ‘제가 스승님의 뜻을 이루겠습니다’라고 맹세했다. 그들에게 명분이나 도덕은 중요하지 않았다”
27일 전쟁기념관이 개관 20주년 기념으로 개최한 ‘청일․러일 전쟁과 위기에 선 대한제국’제하 학술회의에서 신복룡 前 건국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석좌교수는 기조연설을 통해 이같이 일본의 호전적 기질을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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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복룡 석좌교수는 1894년 청일전쟁, 1904~105년 러일전쟁, 1914년 제 1차 세계대전, 1927년 산동출병, 1931년 만주사변, 1937년 중일전쟁, 1941~1945년 제 2차 세계대전을 언급하면서 “일본은 과거 60년 동안에 크고 작은 전쟁을 7번 치렀다”며 “다른 민족으로서는 단 한 번도 감당하기 어려웠던 참혹한 전쟁을 매 10년마다 치렀으면서도 일본은 재기하고 부흥했다”고 일본의 호전적인 면을 지적했다.
특히, 신복룡 교수는 “일본이 왜 그토록 호전적인가에 대해 일찍부터 고민한 사람은 의외로 프랑스의 계몽주의자 몽테스키외였다”면서 그의 저서『법의 정신』에서 일본을 거론하며 ‣일본인에게는 종교적 죄의식이 없어 가혹하다 ‣해상의 패권을 장악한 민족은 오만하다 ‣그러므로 해양민족은 이웃한 국가에게 고통을 준다고 기술한 내용을 제시했다.
그러면서 신 교수는 “결국 말을 정리하자면, 일본은 도서민족이 가지고 있는 집단적 폐쇄공포증을 가슴에 담고 있으며, 국경은 그들이 부수고 넘어야 할 우리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점”이라고 덧붙였다.
청일전쟁의 개전 이유에 대해서 신 교수는 “구미 열강에 고무된 일본의 대륙론자들의 야망이 청한종속론과 중화질서의 천하관에 안주하면서 국제 사조를 외면한 중국과 충돌한 사건이었다”고 정리했다.
따라서, 신 교수는 “피하지 말았어야 할 전쟁을 피하는 것은 피했어야 할 전쟁을 피하지 않은 결과보다 더 참혹했다”면서 “우리는 대한제국의 멸망에서 그런 아픔을 겪었다”고 말했다.
아울러 신 교수는 “우리는 한일관계사에서 일본에 대한 일정한 체념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세상에 바꿀 수 없는 것이 있고 바뀌지 않는 것이 있다. 일본의 대외관은 바뀌지 않는 것 가운데 하나이다. 그 갈등은 앞으로도 천년을 더 지속될 것”이라며 일본의 호전성에 대해 경각심을 불러 일으켰다.
또한, 신 교수는 “조국으로부터 보호받지 못한 무리들에게 조국의 수호를 요구할 수는 없다. 자기의 땅에서 버림받은 가난한 사람들은 더 이상 조국의 수호에 열의를 보이지 않는다”면서 “건강한 국가 경영만이 전쟁을 막고 이길 수 있다”고 일본의 호전성에 철저히 대비할 것을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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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학술회의는 신복룡 교수의 기조강연에 이어 ‘러일전쟁에 대한 대한제국 각 정치세력의 인식과 대응’, ‘청일·러일 전쟁과 동아시아 영토문제’, ‘청일·러일 전쟁에 대한 동아시아의 기억과 재현’, ‘근대 동아시아에서의 전쟁을 통해 본 21세기 지역 질서의 구축과 분단극복’ 등 6개의 주제 발표와 종합토론으로 진행됐다.(Konas)
코나스 강치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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