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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의 빛 국어를 살리다

Written by. 민현식   입력 : 2014-08-04 오전 9: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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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대 국경일 중에 대한민국의 건국과 관련한 기념일은 제헌절과 광복절이다. 제헌절은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탄생 근거인 헌법을 제정 선포한 날이다. 헌법 제정을 위해 1948년 5월 10일 단군 이래 처음 이 땅에서 전 국민 직접 비밀투표가 유엔 감시하에 치러졌다. 제헌국회의원으로 200석은 남쪽에서 뽑고 북한 몫으로 100석을 남겼다.

 남한의 총선거는 남로당의 선거방해 책동 속에서도 95.5%의 높은 투표율로 198명의 제헌의원을 뽑아 국민 절대 다수가 대한민국 탄생을 지지했다. 2명을 뽑지 못함은 제주에서 4월 3일부터 남로당이 5·10 총선 반대 폭동을 일으켜 5월 10일에 선거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5월 31일은 제헌국회가 개원해 이승만을 임시의장으로 뽑고 헌법 제정에 착수해 7월 17일 공포하고 20일에는 초대 대통령을 의회에서 선출하는데 180표의 압도적 득표로 이승만이 당선됐다. 24일에 대통령 취임식을 하고 전원 독립투사 출신으로 구성된 건국 내각을 구성해 8월 15일 중앙청에서 대한민국 정부수립을 선포한다.

 따라서 광복절은 일제로부터의 해방을 기억하는 의미와 대한민국 건국 정부의 수립을 기념하는 두 가지 의미를 갖는다. 그런데 요즘은 남의 손으로 이뤄진 해방의 의미만 되새기고 제 손으로 세운 대한민국 정부의 수립을 기념하는 의미는 퇴색했다.

 세상 어느 나라에서 제 손으로 건국한 의미보다 남에 의해 해방된 의미를 더 기념하는 경우가 있는가. 아울러 광복에 잊지 말아야 할 의미가 더 있다. 우리말과 글이 빛을 다시 찾아 건국 후 의무교육이 시행되고 공교육으로서의 국어교육이 부활한 의미이다.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어가 국어로 강요돼 조선어교육은 부차적이었다. 당시 문맹률이 80%라 문맹퇴치운동을 벌인 모습을 이광수의 ‘흙’, 심훈의 ‘상록수’에서도 그리고 있다. 총독부는 1938년부터 민족말살정책을 본격적으로 펼쳐 학교의 조선어 교육을 금했고 조선어를 쓰면 벌을 받게 했다. 1929년 말부터 조선어대사전 편찬을 추진해 오던 조선어학회에 대해 총독부는 1942년 10월 1일 임시정부 내통죄로 회원 30여 명을 종로경찰서로 체포, 고문하는 조선어학회 사건도 벌인다.

 이때 사전 원고도 압수당하는데 이희승 선생의 회고록을 보면 육전(매질), 해전(물고문), 공전(공중 매달기)이라는 고문을 회원들이 피투성이가 되도록 당했다. 8·15 광복으로 옥중에서 풀려난 최현배·이희승·정인승 같은 분들과 정부가 힘을 합해 우리의 국어교육을 다시 일으키고 원고를 찾아 사전도 편찬하니 이분들의 항일문화운동을 영원히 잊을 수 없다. 의무교육이 시작되자 문맹률은 10%대로 떨어져, 배우기 쉬운 한글의 기적 덕분에 오늘날 10대 무역대국에 드는 한강의 기적도 가능했다.

 선열들이 피로써 지켜온 말과 글을 바르고 곱게 지켜갈 사명이 우리 국민에게 있다.

민현식 (국립국어원장)

* 출처 : 국방일보 8월4일 16면 '오피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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