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변(民辯) 출신 박원순의 국보법 폐지·이적단체 비호사(庇護史)
민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출신의 박원순 서울시장은 변호사 시절 《국가보안법 연구》, 《야만시대의 기록》 등의 저서를 통해 국가보안법(국보법) 폐지를 주장했다.
국보법 폐지와 관련된 그동안의 박 씨의 주장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국가보안법이 존재하는 이유는 7조 때문인데 조선일보 주장처럼 광화문 네거리에 ‘김일성 만세’라고 부르면 어떻게 하느냐는 우려는 헌법에 나와 있는 표현의 자유를 스스로 포기하고 이를 억압하겠다는 뜻이다.”(2004년 9월24일 <미디어오늘> 인터뷰)
▲“국가보안법의 존재는 국민생활 전반에 걸친 족쇄였으며 국가의 진취적 발전을 가로막는 쇠사슬이었다.”(《국가보안법 연구》1권, 23페이지)
▲“민주주의는 결코 사회주의 또는 공산주의와 대립되는 개념이 아니며 오히려 이들 이념을 받아들여 그 사회 속에서 하나의 가치체계로서 보장하고 있다는 사실은 서구의 여러 선진적 민주주의 사회에서 금방 확인할 수 있는 일이다.(《국가보안법 연구》 3권, 178페이지)
▲“소위 利敵서적에 대한 압수수색의 바람이 불고 있다…(중략) 통일의 진정한 논의는 상호간의 이해에 바탕하며 그것은 북한의 원전(原典)과 북한연구서에 대한 대폭적인 개방이 전제된다…(중략) 기본적으로 어떠한 내용의 서적이든 이를 금압하는 것은 야만적인 짓이며 역사를 암흑으로 이끌 것이다.”(1989년 4월11일자 동아일보)
▲“48년 12월에 국가보안법이 제정됐다…(중략) 이후 두 차례의 개정을 거쳐 새로운 모습으로 변신한 것은 1958년이다. 흔히 말하는 ‘보안법파동’ 인데 제정 당시의 6개 조항이 40개로 대폭 늘어나면서 훨씬 강화됐다. 이는 이승만 정권이 가중되는 위기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간첩이나 북한의 침략에 대해서보다는 야당이나 언론, 곧 국민의 입에 재갈을 물리기 위해 취한 조치인 것이다.”(1989년 11월28일자 <동아일보>)
▲“지난 72년 7·4남북공동성명 이래 남북관계는 현실적으로는 상호실체를 인정하면서도 법적으로는 상호실체를 인정하지 않는 모순이 심화돼 왔다. 국제사회에서 떳떳이 나설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국가보안법은 폐지되어야 한다.”(1991년 5월31일자 동아일보)
박원순 서울시장은 국보법과 관련된 위와 같은 인식을 바탕으로 ‘한국청년단체협의회’(이하 한청)와 같은 利敵단체를 변호하기도 했다.
박 씨는 2002년 11월25일 <한겨레신문> 기고문에서 利敵단체 한청을 변호하며 “북한이 꼭 같이 주장하는 내용이라고 해서 모든 주장이 利敵행위가 된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 미군범죄가 창궐(猖獗)하고 제대로 처벌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미군철수 주장이 나오지 말라는 법이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국청년단체협의회와 그 간부들이 실질적으로 국가안보를 危害(위해)한 어떤 행동을 한 것은 없다”고 말했다.
한청은 2001년 2월11일 창립선언문에서 “우리는 민족의 자주와 민주를 실현하는 정권을 창출하고 마침내 연방통일조국을 건설하는 데 앞장서 나갈 것”이라고 주장했다.
2004년 서울중앙지법은 한청을 利敵단체로 판시하며 “한청의 강령이나 소식지는 남한 사회를 美제국주의 식민지로 규정하고 있고, 북한의 선군정치를 찬양하면서 주한미군 철수, 인민민주주의 혁명 등을 주장하고 있어 공소사실 모두 유죄로 인정된다”고 판시했다.
대법원도 2009년 2월 “한청은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 남측본부와 마찬가지로 북한 혁명(革命)노선과 궤를 같이해 국가의 존립·안전과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해악을 끼칠 위험성이 있는 이적단체”라고 판시해 박 씨의 주장을 부정했다.
박 씨는 2003년 8월7일 ‘해외민주인사 명예회복과 귀국보장을 위한 범국민추진위원회’(이하 범국민추진위)에 강정구 前 동국대 교수, 오종렬·한상렬 한국진보연대 상임고문(2003년 기준직책) 등의 좌파 활동가들과 함께 공동대표로 참여했다.
당시 범국민추진위는 利敵단체 한통련 의장 출신의 곽동의, 동백림 사건 연루자 이수자(작곡가 윤이상의 부인), 송두율 등 해외 親北인사를 ‘해외 민주인사’로 부르며, 이들의 귀국을 추진했다.
박 씨는 또 2009년 2월9일 ‘희망제작소’ 홈페이지에 게재한 칼럼에서 문익환(文益煥) 목사에 대해 “성경학자, 교수로서 오래 지내다가 인생 후반에 민주화운동에 투신하여 80년대 절망의 시대에 민주화와 인권의 선지자로서의 사명을 다했던 분”으로 평가했다.
문 목사는 1989년 밀입북(密入北)해 평양 도착성명에서 ‘존경하는 김일성 주석’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으며, 대한민국 대표자 자격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김일성과 ‘통일3단계방안 원칙’에 합의했다. 문 목사는 ‘反국가단체잠입죄’ 등 국보법 위반으로 여러 차례에 걸쳐 투옥됐던 인물로 利敵단체인 조국통일범민족연합 남측본부 결성준비위원장을 지내기도 했다.
在野 변호사 시절 국보법 폐지, 利敵단체 등을 옹호했던 박원순 씨는 서울시장 선거를 앞둔 2014년 5월20일 YTN라디오에 출연, 국보법 폐지 여부를 묻는 질문에 “우리나라가 70~80년대 군사 독재에서 벗어나면서 국보법이 개정되는 등 그 기능이 많이 바뀌었다”며 “이 때문에 과거처럼 국가보안법이 반드시 폐지되거나 개정돼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과연 박원순 시장은 자신의 속마음을 있는 그대로 가감(加減) 없이 밝힌 것일까?
김필재(조갑제닷컴)/spooner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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