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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이승만 망명 조작보도의 ‘6월27일’은 어떻게 창작되었는가?

2년 전 <오마이뉴스> 기사에서, 문제의 ‘6월27일’을 찾을 수 있었다
Written by. 조갑제닷컴   입력 : 2015-07-22 오전 9: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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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간조선> 2015년 8월호 趙甲濟 대표 기사에서 발췌

 2년 전 ‘오마이뉴스’ 기사의 복사판

 ▲ ‘오마이뉴스’에 인용된 무초 대사의 6월 27일자 電文의 영어 原文. ‘오마이뉴스’ 보도와는 상반된 내용이다.

 이승만 정부가 1950년 6월 27일에 일본에 망명 요청을 하였다고 단정한 KBS가 내어놓은 두 가지 자료(《야마구치 현사》와 미 군정 문서)에는 6월 27일이란 날짜가 없는데 기자는 어디서 이 날짜의 근거를 찾았을까? 구글을 검색해 보았다.

 ‘오마이뉴스’ 2013년 8월 29일자 〈김종성의 사극으로 역사읽기〉에는 〈일본 망명 정부 구상한 이승만, 선조와 닮았다〉는 제목의 글이 실렸다. KBS가 지난 6월 24일에 특종이라면서 보도한 내용과 흡사하다. 이 글에 문제의 ‘6월 27일’이 등장한다.

 〈1996년 4월 14일자 연합뉴스를 포함한 국내 언론들이 일본 교도통신을 인용해서 보도한 바와 같이, 북한군이 서울을 점령하기도 전에 이승만은 이미 일본 망명 계획을 세웠다. 교도통신이 제시한 자료는 전 야마구치현 지사이자 전 통산성 장관인 다나카 다쓰오가 쓴 회고록과 미국 국무부가 발행한 ‘미국 외교관계’다. 한·일 양국의 언론을 통해 보도된 이 자료들에 따르면, 6월 27일 새벽에 수원 천도를 결정할 때에 이승만은 존 무치오 주한미국 대사에게 “일본에 망명 정부를 세울 수 있겠느냐?”고 문의했다. 이때 이승만이 심리적 공황 상태였다는 점은 존 무치오 대사가 딘 애치슨 국무장관에게 보낸 보고서에서도 확인된다. ‘미국 외교관계’에 수록된 이 보고서에 따르면, 존 무치오 대사는 “한국 지도부는 절망하고 있으며 대통령과 내각은 망명 정부가 되어 일본으로 이동하는 가능성에 대해 문의해 왔다”고 보고했다.〉

 ‘오마이뉴스’가 인용한 무초 대사의 6월 27일자 전문의 영어 원문을 찾았더니 위의 기사 내용과 전혀 달랐다.

 〈서울, 1950년 6월 27일 오전 8시(미국시각 6월 26일 오후 6시45분에 접수). 국무총리 서리가 오전 7시에 나를 찾아와 대통령은 오전 3시에 진해를 향해, 내각은 오전 7시에 남쪽 지방을 향해 특별 열차를 타고 떠났다는 사실을 확인해 주었다. ‘선장 신’(注: 당시 국방장관 신성모·선장 출신)은 전투가 오늘 오후까지는 모두 종료될 것이라면서 전권(全權)을 채병덕 육군참모총장에게 위임했으며, 북한군 전차(戰車)가 서울에 들어오면 문을 닫고 집에 조용히 있으라고 국민들에게 방송했다고 말했다. 신은 육군 지휘부와 함께 최후까지 서울에 잔류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푸라기라도 잡고자 하는 심정이었고, 대통령과 내각을 일본에 망명 정부로 옮길 수 있는 가능성을 물었으나, 나는 아무 언질도 주지 않았다. 이 정보를 극동군 사령관에게도 보냄.〉

 무초 대사가 정확하게 지적한 대로 신성모는 서울이 함락되기 전의 절박한 심정에서 개인적으로 ‘일본으로 망명 가능성’을 타진하였으며 미국 대사는 이를 묵살하였다. 신성모 장관이, 이승만 대통령의 지시로 그런 타진을 하지 않았다는 것은 무초가 간단하게 무시한 점으로 증명이 된다. 그런 중대사를 논의하려면 이 대통령이 직접 무초 대사를 부르든지 맥아더 극동군 사령관(당시 일본을 통치 중)이나 트루먼 대통령에게 말했어야 했다(이승만은 장면 주미대사를 트루먼 대통령에게 보내 결사항전을 다짐하고 무기원조를 요청하였다). ‘오마이뉴스’는 이 전문을 이렇게 왜곡하였다.

 〈6월 27일 새벽에 수원 천도를 결정할 때에 이승만은 존 무치오 주한미국 대사에게 “일본에 망명 정부를 세울 수 있겠느냐?”고 문의했다.〉

 신성모가 아니라 이 대통령이 직접 망명 타진을 했다고 변조(變造)한 것이다.

  ‘오마이뉴스’의 왜곡

 ▲ ‘오마이뉴스’ 2013년 8월 29일자 ‘일본 망명 정부 구상한 이승만, 선조와 닮았다’ 中.

 ‘오마이뉴스’는 또, 〈‘미국 외교관계’에 수록된 이 보고서에 따르면, 존 무치오 대사는 “한국 지도부는 절망하고 있으며 대통령과 내각은 망명 정부가 되어 일본으로 이동하는 가능성에 대해 문의해 왔다”고 보고했다〉고 왜곡하였다. 절망한 것은 ‘한국 지도부’가 아니라 신성모이며 망명 가능성에 대하여 문의해 온 사람 또한 ‘대통령과 내각’이 아니라 신성모였던 것이다.

 이 짧은 문장속의 거의 모든 정보가 허위이다. 이승만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왜곡된 것이다. 문제는 이 기사가 이번 KBS 조작 기사의 원형(原型)처럼 비슷하다는 점이다.

 KBS 기자는 기사 작성을 위한 자료를 찾다가 2년 전 ‘오마이뉴스’의 왜곡된 기사를 읽고서 일본 외무성의 전보(實在한다면 1950년 8월 작성)를 6월 27일자 신성모의 일본 망명 타진과 연관 지으면서 ‘6월 27일 이승만 정부 일본 망명 요청’을 창작한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오마이뉴스’의 왜곡 보도는 KBS 날조 보도의 ‘어머니’인가?

 KBS의 6월 24일자 보도는 ‘단독 보도’라고 했지만 2년 전 ‘오마이뉴스’ 기사의 사실상 ‘복제판’이다. 그런데 KBS는 다른 언론사가 이미 2년 전에 보도한 내용에다가 ‘단독 보도’라는 월계관을 씌워서 그것도 6·25에 맞춰서 집중적으로 내보냈다. 이승만을 죽이려는 집념 앞에서는 언론의 원칙이나 기자의 명예심은 중요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KBS의 ‘이승만 일본 망명 조작 보도’는 주로 좌파 성향 매체들을 타고 국내외로 순식간에 확산되었다. KBS가 단정하였고, 기사의 진실성을 ‘단독 보도’라고 보증까지 하였으니 안심하고 퍼 날랐을 것이다.

 KBS의 석혜원 기자는 ‘KBS 인터넷뉴스’에 〈전쟁 통에 지도자는 망명 시도… 선조와 이승만〉이란 제목의 수필을 썼다. 날조된 정보에 근거, 상상의 나래를 편 것이다.

 〈1950년 6월 25일. 고요한 한반도의 아침에 포성이 울려 퍼지고 불과 사흘 만에 서울이 점령당했다. 이런 다급한 상황에서 대통령이 망명을 타진하고 있던 것이 확인된 것이다. 이승만 정부의 망명 시도보다 350여 년 앞서 비슷한 일이 있었다. 조선의 14대 왕 선조 역시 ‘파천’하면 빼놓을 수 없다. (중략) 심약한 것은 죄가 아니다. 지도자의 자리를 감당하기에 당사자 역시 버거웠으리라. 하지만 그 결과는 고스란히 백성들이 떠안았다.〉

 대구에서 발행되는 《영남일보》의 사설은 제목이 〈36계 줄행랑과 이승만 망명 정부〉였다. 이 사설은 북진(北進)하는 왜군 앞에서 도성을 버린 선조와 이승만을 동급으로 비교하더니 이런 막말을 했다.

 〈이승만 대통령은 1950년 6·25전쟁 발발 이틀 후인 27일 서울을 버리고 대전으로 피신했다. 이승만은 바로 이날 6만명 규모의 망명 정부를 야마구치현에 세우고 싶다는 뜻을 일본 정부에 타진했다고 한다. ‘서울사수’ ‘북한군 격퇴’ 공언이 메아리로 채 사라지기도 전 어투 느린 노(老)대통령의 놀라우리만치 민첩한 행동이었다. 혼자 살겠다고 하는 리더의 도망은 ‘줄행랑’이란 속어조차 분에 넘치는, 딱히 표현할 길이 없는 망동이다. 도망도 도망 나름이다.〉

 KBS가 망명 주장의 근거가 된 6월 27일자 전보의 날조를 자인(自認)한 지금 《영남일보》는 어디로 36계 줄행랑을 칠 작정인가. 도망도 도망 나름이다.

조갑제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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